▲ 하뉴 유즈루가 2020년 ISU 피겨스케이팅 4대륙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을 마친 뒤 관중들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 목동 아이스링크,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목동, 조영준 기자] 7일 저녁,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의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은 일본 취재진의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뉴 유즈루(25, 일본)가 남자 싱글 역대 최고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죠. 믹스트 존에서 하뉴가 나오길 기다렸던 일본 취재진들은 모니터 화면으로 그의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하뉴에 앞서 경기를 펼친 차준환(19, 고려대)를 기다리던 국내 취재진도 마찬가지였죠.

이날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9~2020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4대륙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 출전한 하뉴는 111.82점을 받았습니다. 그는 2018년 ISU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자신이 세운 종전 쇼트프로그램 역대 최고 점수인 110.38점을 받았습니다. 하뉴가 111점을 넘자 일본 취재진들은 일제히 큰 탄성을 내질렀고 링크장 안에서는 큰 환호성이 터졌습니다.

이날 하뉴는 쿼드러플 살코와 쿼드러플 토루프 + 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시도해 모두 성공했습니다. 그는 쿼드러플 살코에서 무려 4.43점이라는 엄청난 수행점수(GOE)를 받았습니다. 쿼드러플 토루프 + 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도 4점이 넘는(4.21점) 수행점수가 매겨졌습니다.

기술 점수는 물론 프로그램 구성 요소에서도 장점을 보이는 그의 PCS 점수는 48.4점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또 다른 역사가 목동에서 일어났습니다.

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한 하뉴는 일본 최고 인기 스포츠 스타 가운데 한 명입니다. 매년 스포츠 선수 인기 순위를 정할 때 그는 오타니 쇼헤이(야구)와 니시코리 게이(테니스)와 1위 경쟁을 펼칩니다. 이번 대회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은 일찌감치 표가 매진됐습니다.

▲ 7일 정오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남자 싱글 공식 훈련에 참여한 하뉴를 보기 위해 몰려든 일본 팬들 ⓒ 목동 아이스링크, 조영준 기자

일본에서 수많은 하뉴의 팬들이 목동을 찾았기 때문이죠. 이번 4대륙선수권대회는 엄연히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입니다. 그러나 현장 분위기는 일본의 홈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의 입장으로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일본 피겨스케이팅의 인기와 선수 저변이 대단하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4대륙선수권대회를 보기 위해 일본에서 건너온 팬들은 대략 20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최고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목동 아이스링크를 꽉 채웠습니다. 이날 정오에 열린 남자 싱글 공식 연습 때도 목동 아이스링크는 많은 이들이 운집했습니다. 하뉴의 팬들은 그의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고 점프를 뛸 때마다 환호성을 내질렀습니다.

취재진들이 모이는 프레스 센터도 일본 취재진으로 가득 찼습니다. 대회 첫 날부터 자리를 잡아 국내 취재진이 앉을 자리조차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이 점에 대한 ISU의 운영은 분명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하뉴가 일본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엄청났습니다.

일본 매체는 종합지는 물론 피겨스케이팅 전문 매체도 있었습니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흔치 않게 피겨스케이팅 잡지가 잘 팔리는 나라입니다. 도서와 잡지 등을 직접 구매해서 보는 문화가 여전히 익숙한 일본의 환경은 피겨스케이팅을 비롯한 비인기 종목의 부흥에 밑거름이 됐습니다.

일본의 아이스링크의 수와 스케이트를 즐기는 인구도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나고야시는 아사다 마오(30)와 안도 미키(32) 등을 배출하면서 일본 피겨스케이팅의 메카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일본은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가 아닌 중소 도시에서도 링크장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과 관심이 하뉴 유즈루 같은 역대급 선수를 배출하게 된 터전이 됐죠.

▲ 하뉴 유즈루가 ISU 4대륙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경기를 마친 뒤 곰돌이 푸우 인형을 직접 줍고 있다. ⓒ 목동 아이스링크, 곽혜미 기자

이날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은 저녁 6시가 넘어서 시작됐습니다. 신종 코로나 예방 방침으로 목동 아이스링크에 들어가는 과정은 좀 복잡합니다. 자신의 건강 상태와 한국 체류 기간 등을 묻는 문진표를 반드시 작성해야 입장이 가능합니다. 또한 열 검진을 받고 필수적으로 마스크도 착용해야 합니다. 경기장에 들어설 때 안내 요원은 관중 한 명 한 명의 열 상태를 체크하고 37도가 넘을 경우 입장 불허가 내려집니다.

공항과 비슷할 정도로 절차가 철저하지만 입장은 큰 문제가 없이 진행됐습니다. 저녁 7시가 넘어서자 일본 팬 대부분은 하뉴가 좋아하는 곰돌이 푸우 인형을 들고 목동 아이스링크를 찾았습니다.

국내 관중들도 차준환(19, 고려대)과 유영(16, 수리고 입학 예정) 등을 응원하기 위해 목동 아이스링크를 찾았습니다. 차준환이 경기에 나설 때 일장기로 물든 목동 아이스링크가 태극기 물결로 넘쳤습니다. 

반가운 장면이지만 김연아(30)가 은퇴한 뒤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관심도는 한층 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일본은 하뉴 같은 '슈퍼스타'가 등장하며 피겨스케이팅의 열기가 정점에 올라섰습니다.

프레스 센터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습니다. 프랑스의 피겨스케이팅 기자 폴 파렛은 이번 대회 ISU 프레스 오피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12년 전인 2008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ISU 그랑프리 파이널 때도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 2008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ISU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세헤라자데'를 연기하고 있는 김연아 ⓒ Gettyimages

파렛 기자는 당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30, 일본)의 대결로 뜨거웠던 현장을 생생하게 기억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김연아가 경기를 마치자 수많은 인형이 빙판에 쏟아졌습니다.

파렛 기자는 "그런 장면은 한국에서 처음 봤다"라며 회고했습니다. 그는 한국 여자 싱글 간판인 유영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파렛 기자는 "이번 대회 여자 싱글에서 트리플 악셀을 뛰는 선수는 유영과 키히라 리카 두 명뿐이다. 그 점만으로 대단하다. 유영은 우승 후보로 충분하다"라고 칭찬했죠.

현재 일본 팬들이 하뉴에 열광하는 것처럼 한국도 김연아의 활약에 뜨거운 지지를 보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현재 하뉴에 열광하는 일본 피겨스케이팅의 열기가 부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도 하뉴 못지 않게 김연아에게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죠. 

아직 세계 정상급은 아니지만 차준환과 유영 같은 기대주들이 꾸준하게 등장하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하뉴가 아닌 국내 선수의 활약으로 뜨거워질 날이 언제쯤 다시 찾아올까요.

스포티비뉴스=목동, 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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