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지난 10일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후 객석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A.M.P.A.S.®,
[스포티비뉴스=연예 에디터]'봉테일' 봉준호 감독은 전세계가 인정한 영상의 마술사일 뿐만 아니라 언어의 마술사였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10일(한국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무려 4관왕에 올랐다. 한국영화 101년 역사에서, 경천동지할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영화로 전세계를 놀라게 한 봉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보여준 '말의 품격'으로 잔잔한 감동을 줬다. 감독상을 수상한 뒤 경쟁자를 먼저 언급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을 가슴에 새겨왔다며 스포트라이트를 그에게 돌렸고, 자신이 미국에 알려지지 않았을 때 자신의 영화를 리스트에 꼽아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쿠엔틴 형님"이라고 부르며 영광을 돌렸다. 이어 '텍사스 전기톱'이 있다면 트로피를 다섯 개로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공포 영화의 고전을 인용해 '영화 덕후'들을 미소짓게 한 유머, 경쟁자들을 높여주는 겸손함이 버무려진 표현이었다.

봉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 현장에서 처음으로 후보로 꼽힌 나라의 감독이라는 점에서 갑자기 나타난 루키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봉 감독은 경쟁자들을 먼저 배려하는 여유로 품격을 드러냈다. "I am ready to drink tonight, until next morning"(오늘 밤은 술 마실 준비가 돼 있다. 내일 아침까지 말이다)이라고, 통역을 거치지 않고 영어로 직접 해 전세계 팬들에게 수상의 기쁨도 숨기지 않았다.

사실 봉 감독의 '언어 유희'는 아카데미 시상에 앞선 여러 시상식에서 약 200개의 트로피를 받은 사실로 이미 감지되었던 터. 그의 소감은 의례적인 감사나 영혼없는 축하와는 거리가 멀었다. 골든글러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1인치의 자막 장벽을 넘으면 훨씬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라며 "우리는 오직 한 가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영화입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영화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가 그동안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생각해보면 별일 아니다. 오스카는 로컬 영화제이기 때문"이라는 '사이다 발언'을 내놓았다.

어쩌면 아카데미는 봉 감독의 '도발'에 로컬이 아닌 글로벌 영화제라는 걸 보여줄 용기와 계기를 마련했는지도 모른다. 작품성이나 흥행 면에서 손색이 없는 '기생충'을 외면한다는 건 스스로 로컬 영화제임을 자임하는 모양새가 될 터였기에. 

봉 감독은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소감으로 "이 상의 이름이 바뀐 뒤 첫번째 수상자가 되어 의미가 깊다"며 "오스카가 추구하는 방향에 지지와 박수를 보낸다"고 화답했다. 이쯤되면 '밀당의 고수' 같다.

봉 감독은 아카데미 수상 뒤 국내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마침 스코세이지 감독과 눈이 딱 마주쳤다고 말하며 아카데미 캠페인 동안 스피치를 거의 20~30회 하며 수상소감 밑천이 바닥나 술 이야기까지 했다고 겸손해했다. 적확한 통역으로 '라이징 스타'가 된 자신의 통역사(최성재)까지 언급하며 "통역을 해 주는 동안 다음 발언을 구상한다"고도 했다. 과연 이 모든 장면들이 애드리브일까? 어쩌면 봉테일은 영화 뿐 아니라, 그동안 세계영화계에 하고 싶던 말을 디테일하게 준비했다 내놓은 것은 아닐까.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 봉준호 감독이 국제장편영화상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오른쪽은 통역을 맡은 최성재. ©A.M.P.A.S.®,
스포티비뉴스=연예 에디터 gyumm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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