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들의 사인 요청에 응하고 있는 김광현 ⓒ배정호 기자
[스포티비뉴스=주피터(미 플로리다주), 김태우 기자] 자신의 이름을 ‘에릭’이라고 밝힌 한 팬은 미 플로리다주에 캠프를 차린 국내 구단에 유명한(?) 사람이다. 뉴욕 시티필드 근처에 사는 에릭은 KBO리그의 광팬으로 오랜 기간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의 팬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는 “프리미어12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당시에도 한국을 응원했다”고 웃었다. 이미 그는 KIA의 스프링캠프가 있는 포트마이어스에 이어 SK의 캠프지인 베로비치도 방문해 선수 및 코치들의 사인을 받았다. 대충 받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사진을 인화하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선수들도 한 미국인이 자신의 사진까지 가져와 사인을 요청하는 것에 대해 신기한 기색이었다.

에릭의 사인 요청은 12일(한국시간) 미 플로리다주 주피터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에릭은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플로리다행 비행기를 탈 때부터 구상했던 것이었다. 바로 올해 세인트루이스에 입단한 김광현(32)의 사인을 받는 것이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이날은 KBO리그 캠프와 달리 기약이 없었다. 아직 공식 훈련이 시작되기 전이라 팬들은 훈련장 내로 들어갈 수 없다. 퇴근하는 선수를 마냥 기다려야 했다. 에릭과 비슷한 목표를 가진 세인트루이스 팬 10여명이 펜스 너머의 입구에서 지루하게 서 있었다. 

심지어 몇 시간을 기다려도 사인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선수들은 차를 타고 입구를 나갈 때 구단 직원으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사인을 하겠느냐”, 하겠다면 “몇 명이나 해주겠느냐”다. 차량에서 내리지는 않고 공만 받아 사인을 한 뒤 다시 건네준다. 대다수 세인트루이스 선수들은 그냥 지나쳤고, 일부는 1~2명 정도만 해주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사실 이는 사인을 해야 할 의무 상황이 아니다. 사인을 받은 팬은 다시 맨 뒤로 가 기다린다. 

그때 세인트루이스 팬들의 사인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 선수가 김광현이었다. 이날 불펜피칭을 마친 김광현은 그 뒤로도 바쁜 일정을 보냈다. 1시간 정도 웨이트트레이닝을 했고, 취재진이 모두 빠진 뒤로는 지역 라디오와 역시 1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다. 끝까지 기다린 나머지 언론과 인터뷰까지 다 마쳤으니 퇴근 시간은 선수들 중 가장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까지 기다린 팬들은 ‘KK’(김광현의 애칭)를 부르며 사인을 요청했다. 조수석에 앉아 있었던 김광현은 간절한 요청을 외면하지 못하고 10여명의 팬들에게 모두 사인을 한 뒤 경기장을 떠났다. 한국 취재진에게 “Thank You의 한국어 표현이 무엇이냐”고 묻던 팬들은 “감사합니다”고 말하며 화답했다. 입구를 지키던 관계자들은 “어제도 김광현이 요청을 다 받아줬다”고 미소 지었다. 

김광현의 국가대표팀 유니폼 사진을 인화해온 에릭도 원했던 것을 이뤘다. 오승환이 주피터에 왔을 당시에도 사인을 받았다던 에릭은 “김광현이 세인트루이스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그렇게 될 것 같다. 이런 정성이라면 많은 팬들이 김광현을 알아갈 것”이라고 웃으면서 “오승환처럼 김광현도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나가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김광현의 사인은 큰 틀에서 같다. 굳이 영어로 바꾸지 않고 원래 사인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다만 숫자만 종전 등번호 29에서 33으로 바뀌었다. 어쨌든 작년까지의 사인과 조금 달라진 것. 이날 3시간 이상을 기다린 팬들은 김광현의 바뀐 사인을 받은 첫 팬들이 된 셈이다. 에릭도 그중 하나가 됐다. 

스포티비뉴스=주피터(미 플로리다주), 김태우 기자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