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야구연맹은 19일 신임 회장 선임으로 새출발한다. 숙제가 많다. ⓒ 신원철 기자
대학야구의 위기는 야구계 모두가 공감하는 오랜 문제다. 지난해 KBO 드래프트에서는 대졸 선수를 1명 이상 지명해야 한다는 강제 규정까지 생겼다. 일부 구단은 대졸 선수 공개 트라이아웃을 열어 공생을 모색했다. 그러나 대학야구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면 공염불이다. 대학야구는 어떻게 위기에 빠졌고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스포티비뉴스가 대학야구 관계자, 그리고 학부모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276분의 18. 지난해 8월 26일 열린 2020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대졸 예정 선수 276명 가운데 18명이 프로팀의 지명을 받았다.

이에 앞서 2018년 9월 KBO 이사회는 '대졸 신인 지명 의무화'를 결정했다. 일부 대학 감독도 "꼭 필요한 제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지명 의무화로 대학 야구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많은 야구인이 지적한 일이었다. 불과 1년 전 2019년 드래프트에서는 20명의 대졸 예정 선수가 지명됐다. 의무 지명 제도 도입 후 오히려 숫자가 줄었다.

대학야구에 대한 기대도 그만큼 줄었다. 3라운드 안에 이름이 불린 상위권 유망주는 전체 12번 kt 천성호(단국대 내야수), 전체 30번 SK 최지훈(동국대 외야수) 둘뿐이다. NC는 10라운드에, 두산은 8라운드에 유일한 대졸 선수를 선택했다. 각자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니 대졸 선수를 늦게 호명했다고 탓할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대학야구의 현실을 더 분명히 나타내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 대표팀은 대학 선수들 위주로 이뤄졌다. 이들은 중국에 연패하면서 4위에 그쳤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최종예선 진출권을 잡지 못한 채 귀국했다. 대학야구의 현주소를 만천하에 알린 사태였다.

대학야구를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구도 섣불리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지난 몇 년간 수면 위로 떠오른 대학야구연맹의 리더십 문제는 대학야구 부실화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물론 그들이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 대학야구연맹. ⓒ 신원철 기자
◆ "경쟁력 없다" vs "외면이 부른 결과"

드래프트에서 대졸 예정자들이 외면받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스포티비뉴스는 지난 10일 올해 4학년인 대학 야구 선수의 학부모 A씨를 만났다. 그는 프로 구단이 대학리그에 관심을 주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관중도, 스카우트도 없는 구장에서 선수들이 무슨 의욕을 갖고 경기에 나서겠느냐고 반문했다.

A씨는 "대학야구가 주말리그로 진행되면서 고교야구와 일정이 겹치는 문제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프로 구단 스카우트들이 소위 '특급 선수'가 아니면 대학 경기를 보러 오지 않는다. 그런 일부 선수를 보러 올 때 잘 보이지 못하면 아예 기회가 안 간다"며 안타까워했다.

선수 수준이 낮으니 스카우트가 외면한다고 반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야구 관계자들은 "스카우트들이 지켜본다는 것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된다. 지금 대학 선수들은 작은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의욕까지 잃고 있다"고 말한다. 경쟁력을 잃었다는 낙인이 스카우트의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이 무관심이 다시 선수들의 의욕을 꺾는 악순환이다.

A씨는 "대입 과정부터 부실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평균자책점이나 승수, 타율로 '커트라인'을 만드는 것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악용의 소지가 있다. A씨는 "주전 아닌 선수도 약팀 상대로 경기에 내보내면 타석 수와 타율을 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선수 선발을 지도자가 아닌 학교가 맡으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야구인들이 저질렀던 입시 비리 때문에 바뀐 제도인데, 이마저도 악용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 역시 악순환이다.

▲ 대학야구연맹 사무실은 굳게 닫혀있다. ⓒ 신원철 기자
◆ "경기인(야구인)들이 무관심하다"

올해는 그 적은 기회마저 언제 올지 모른다. A씨는 "리그 일정 발표가 계속 늦춰지고 있다. 작년에는 일주일 전에 불쑥 일정이 나왔다. 올해는 회장이 사임하고 연맹 업무가 정지상태라고 하던데, 당장 일정이 언제 나올지 전혀 알 수 없어 걱정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대학야구 U리그는 4월 12일 첫 경기가 열렸다. 대회 일정은 8일에 공지됐다.

올해는 자칫 리그 운영마저 어려울 뻔했다. 지난 6일 열린 비상 대의원 임시총회에서는 "이사회의 무관심이 이 사태를 불러왔다. 이런 식이라면 1년 못 해도 할 말이 없는 것 아닌가"하는 냉소적인 의견까지 나왔다. 새 회장 선출로 다시 시작하자는 데 의견이 모였고, 덕분에 리그 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했다.

그렇지만 학부모, 선수들이 안고 있는 불안감은 리그 정상화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6일 대의원 총회에서 나온 학교 관계자들의 이야기에서 학부모들이 왜 이렇게 절박하게 목소리를 내는지를 알 수 있다.

"연맹에서 작년에 갑자기 선수 등록비를 20만 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하더라. 돈 낼 수 있다. 그런데 그 돈이 왜 5만5000원에서 20만 원으로 갑자기 올랐는지 설명을 못 한다. 그러더니 다시 10만 원으로 내리겠다고 하더라." (ㄱ학교 대의원)

"지난해 연맹 이사 가운데 7명이 감독이었다. 그 7명이 제 몫을 했는지 모르겠다. 김대일 회장이 오고 3년 동안 이사회 다녀온 감독들이 뭔가 했다는 걸 느껴보지 못했다. 경기인(야구인)들이 무관심한데 독립된 연맹으로 갈 이유가 있나 싶다." (ㄴ학교 대의원)

학부모 A, B씨만의 고민이 아니다. B씨가 올린 글에는 같은 처지에 있는 학부모들이 동조하는 댓글이 여럿 달렸다. '유령홈피'가 된 대학야구연맹 홈페이지에도 학부모들의 원성이 가득하다. 연맹은 연맹대로, 지도자들은 지도자들대로 제 몫을 못한 가운데 학생들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진다. 

▲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학부모의 글.
# 대학야구연맹은 19일 신임 회장을 선출하고 정상화를 향한 첫발을 내디딘다. 스포티비뉴스는 회장 선출 이후 대학야구연맹이 쇄신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 그리고 대학야구의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지 계속 지켜볼 계획이다.

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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