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이선균, 장혜진, 양진모 편집감독, 박소담, 송강호, 곽신애 대표, 봉준호 감독, 조여정, 이정은, 한진원 작가, 박명훈, 이하준 미술감독,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오스카 '로컬' 도발부터 봉준호 생가까지, '기생충' 미드부터 흑백판까지, '기생충'의 출격부터 마무리까지.

오스카 4관왕의 새 역사를 쓴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그 주역들이 드디어 아카데미의 영광을 돌이키며 여러 궁금증에 답했다.

19일 오전 11시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영화 '기생충'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박명훈과 곽신애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한진원 작가,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은 "이제 현실로 돌아갈 떄"라고 입을 모으며 '기생충'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소감을 고백했다.

외신 40곳을 비롯해 250여 매체와 500여 명의 기자들이 몰린 이날 기자회견은 지난 10일(현지시간 9일)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감독 봉준호, 제작 바른손이앤에이)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 등 4개 부문을 휩쓸며 전세계에 반향을 일으킨 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공식 행사. 지상파와 케이블, 종편 등 무려 9개 채널이 기자회견을 생중계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침 기자회견이 열린 장소는 지난해 4월 '기생충'이 칸영화제로 향하기 전 제작보고회를 열고 출사표를 던졌던 바로 그 곳이기도 했다. 칸의 황금종려상으로 시작해 아카데미의 4관왕까지, 1년 가까이가 흐른 뒤 출발을 알린 그 곳에서 '기생충'의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 '기생충'의 주역들의 소회는 저마다 남달랐다.

"여기서 제작발표회 한지 1년이 되어간다. 그만큼 영화가 긴 생명력을 가지고 전세계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와서 기쁘다. 참 기분이 묘하다"는 봉준호 감독의 인사로 시작된 약 1시간의 기자회견. 주 주요한 대목들을 소개한다.

◆'기생충'과 아카데미 레이스.

지난해 8월부터 2월의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반년에 이르는 '기생충'의 여정은 국내에 아카데미 레이스를 소개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기생충'은 본격적인 오스카 레이스를 처음 펼친 한국 최초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참여해보니 어땠을까.

"후보에 오른 영화들이 모두 오스카 캠페인을 열심히 한다. 저희가 처한 상황은, 톰 퀸 대표가 저와 오래 함께했지만 북미배급사 NEON이 중소배급사고 생긴 지 얼마 안 되기도 했다. 거대 배급사에 비해 적은 예산으로 열정으로 뛰었다. 그 말인즉슨 저와 강호 선배가 코피를 흘일 일이 많았다는 거다. 실제로 (송강호가)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 열정이 필요했다. 인터뷰가 600개 이상, 관객과의 대화도 100개 이상 했다"면서 "다른 곳이 물량공세라면 저희는 아이디어와 팀워크로 물량의 열세를 커버하며 열심히 했다.

한때는 그런 생각도 했다. 저뿐 아니라 노아 바움벡, 토드 필립스, 타란티노 감독 등을 보며 바쁜 창작자들이 왜이렇게 시간을 들여 캠페인을 하고 스튜디오는 예산을 쓰나 낯설고 이상하게 보기도 했다"며 "반대로는 이 정도로 밀도있고 깊이있게 작품들을 검증하는구나 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 참여했고 어떻게 만들었고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진지하게 검증해보는 과정일 수 있겠더라. 그 5~6개월의 과정이. 그것이 아카데미라는 피날레로 장식하게 되는 셈이다"(봉준호 감독)

▲ ⓒ한희재 기자
"저는 미국에 처음 갈 때, 어떻게 보면 처음 경험하는 과정이라 아무 생각 없이 갔다고 해도 무방하다. 6개월을 최고의 예술가들과 함께 호흡하고 만나 이야기하고 작품도 보고 하다보니까"라며 "미국에서도 얘기한 적 있지만 내가 아니라 그분들, 타인들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아가는 과정이지 않았나 한다. 상을 받기 위해 이 과정을 한다기보다 세계 영화인과 호흡하고 소통과 공감을 할 수 있나,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6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서 제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다"(송강호)

◆아카데미 '로컬' 발언은 계획적 도발? 봉준호 감독의 '해명'

할리우드 최고의 이벤트인 아카데미 시상식은 '기생충'을 작품상으로 선택하며 할리우드 외부, 비 영어의 영화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렸다. 봉준호 감독은 오스카 레이스에 동참하면서도 '아카데미는 로컬 아닌가요'라는 도발적 발언으로 회자됐던 바. 이것 또한 다 '계획이 있는' 봉준호 감독의 작전이었을까.

"제가 처음 캠페인 하는 와중에 도발씩이나 하겠나.(웃음) 영화제 성격에 대한 질문이었다. 칸과 베니스는 국제영화제고 아카데미는 미국 중심 아니겠나 하다가 쓱 나온 말이다. 미국 젊은 분들이 트위터에 많이 쓰셨나보다. 전락을 갖고 한 말은 아니고 대화 중에 나온 것이다."(봉준호 감독)

▲ ⓒ한희재 기자
◆마틴 스코세이지의 편지 "조금만 쉬라"

봉준호 감독의 센스 만점의 수상소감은 오스카 캠페인 내내 화제였다. 한국뿐 아니라 할리우드의 영화인, 영화팬들도 그를 사랑한 데는 멋진 영화 못잖은 그의 여유와 유머가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목을 집중시킨 수상소감에 대해 묻는 질문에 봉준호 감독은 슬며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그가 가장 먼저 경의를 표했던 할리우드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의 편지.

"(유세윤 문세윤의 수상소감 패러디 영상을 언급하며) 유세윤씨 참 천재적인 것 같아요. 존경합니다. 문세윤씨도. 최고의 엔터테이너신 것 같다. 오늘 아침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편지를 보내오셨다. 몇 시간 전에 편지를 읽었는데 저로서 영광이었다. 개인적 편지라 내용을 밝히는 건 실례인 것 같지만 수고했고 이제 잘 쉬라고, 대신 조금만 쉬고 빨리 일하라고 해주셨다. 감사드리고 싶었다.

제가 2017년 '옥자' 찍고 이미 번아웃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기생충'을 찍고 싶어 없는 기세를 다 긁어모아 찍었고, 촬영보다 더 긴 오스카 캠페인을 했다. 오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이제 끝이 나는구나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긴 세월인데 행복하게 마무리돼 다행이다. 제가 노동을 많이 한 사람인 건 사실이다. 일을 많이 했다. 쉬어볼까 생각도 있는데 스코세이지 감독님이 쉬지 말라고 하셔서….

(오스카 수상 이후 생각을 정리해보겠다고 했는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육체적 정신적 체력적으로 방전이 돼서 간신히 기내식을 먹고 계속 잤다. 착륙을 알리는 기내 방송에 눈을 떴다. 생각을 정리하며 시적 문구도 남겨봐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었다. "(봉준호 감독)

◆봉준호 동상에 생가까지 "제가 죽은 다음에"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르자 일부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동상을 세우겠다거나, 생가터를 복원하겠다는 등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떠오르게 하는 여러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봉 감독에게 이런 이야기를 접했냐는 질문이 나왔다. 달변가 봉준호 감독이 이날 기자회견을 통틀어 가장 띄엄띄엄 해 나갔던 답변은 이랬다.

"저도 기사로 봤다. 동상이랑… 생가…. 그런 이야기는 제가 죽은 뒤에 해주셨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것이 다 지나라리라… 하는 마음으로 기사들을 넘겼다. 그걸 가지고… 제가 어떤 뭐, 딱히 할 말이…."(봉준호 감독)

▲ ▲오스카 4관왕을 이룬 '기생충'의 주역들. 왼쪽부터 이선균, 장혜진, 양진모 편집감독, 박소담, 송강호, 곽신애 대표, 봉준호 감독, 조여정, 이정은, 한진원 작가, 박명훈, 이하준 미술감독. ⓒ한희재 기자
◆또다른 최초의 오스카 후보…이하준 미술감독과 양진모 편집감독

4관왕에 가려졌지만 '기생충'은 아카데미 미술상과 편집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한국영화이기도 했다. 한국영화계, 최고의 스태프의 저력을 전 세계가 알아봤다. 아카데미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이하준 미술감독은 미국 미술감독조합상(ADG)에서 현대극 부문 미술상을 수상했으며, 양진모 편집감독은 미국 영화편집자협회 시상식(ACE Eddie Awards)에서 장편영화 드라마 부문상을 받았다. 둘 모두 아시아 영화 최초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이하준 미술감독과 양진모 편집감독은 늘 스포트라이트 너머에서 일하는 스태프를 대표하는 마음을 고백하며 새롭게 각오를 다졌다.

"저희 스태프는 이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일 자체가 없다. 항상 뒤편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있는 것도 항상 고생해주시는 아티스트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ADG 상을 받으면서도 거장들 앞에서 손을 떨며 수상소감을 이야기했다. 속으로 다짐한 게 있었다. 이 상이 '기생충'을 잘해서 주는 게 아니라 네가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도록 주는 상이다. 큰 의미를 받을 수 있었고 한국 돌아오는 내내 저만의 숙제를 안고 돌아온 것 같아 뿌듯했다. 정말 더 열심히 해보려 한다."(이하준 미술감독)

"스태프로서 이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신기하다. (사회자인) 박경림씨가 처음 제가 영화를 시작할 때 같이 작업을 했던 분이기도 하다. 십몇년이 흘러 이 자리에서 만난 게 비현실적이다. 이날이 올 줄 상상도 못했다"고 밝혀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저희는 영화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스태프다. 여러 스태프의 노력이 이 자리를 만들어준 것 같아 너무 감사하다"(양진모 편집감독)

◆송강호 충격고백! 할리우드 진출? 한국에서 일이 없다!

'기생충' 신드롬 이후 봉준호 감독은 물론 출연진과 스태프에게도 세계의 관심이 쏟아졌다. 이들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건 당연지사. 그러나 봉준호 감독과 오스카 레이스 6개월을 함께한 송강호는 할리우드가 아니라 한국에서 일이 없다고 너스레를 떨며, 오스카 수상 순간 리액션은 많이 자제했던 것이라고 웃음지었다.

"저는 마지막 촬영 작년 1월말(기생충)이었다. 13개월째 아무 일이 없다. 할리우드가 아니라 국내에서라도 일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송강호, 송강호는 오는 3월 다음 영화 '비상선언'에 참여한다.)

"(아카데미 수상장면을) 자세히 보시면 굉장히 자제하는 걸 볼 수 있으실 거다. 칸에서 제가 너무 과도하게 하는 바람에 봉준호 감독님 갈비뼈에 실금이 갔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이번에는 얼굴 위주로 했다. 뺨을 때리기도 하고 뒷목을 잡기도 하고 갈비뼈만 피해갔다. 굉장히 자제한 기억이 난다. 물론 너무나 놀라운 경험이었다."(배우 송강호)

▲ ⓒ한희재 기자
◆왜 세계는 '기생충'에 빠졌을까

수많은 상을 받았지만, '기생충'의 힘을 트로피의 무게나 갯수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한국과 세계를, 관객과 평단을, 칸과 아카데미를 동시에 사로잡은 전에 없던 사건이다. 1000만의 관객을 넘어선 한국에서 아직까지도 상영중이며,, 북미에서도 비영어영화 흥행의 새 역사를 쓰는 중이다. 자본주의의 그늘, 빈부격차를 통렬하게 꼬집은 이 영화에 세계는 왜 빠져든 걸까.

"빈부격차를 다룬 것이 처음은 아닌데 왜 이번에 폭발력이 있었나. '괴물'에선 괴물이 한강변을 뛰어다녔고 '설국열차'는 SF 요소가 많다. 이번 영화는 동시대 이아기고 우리 이웃에서 볼 수 있을법한 이야기를 뛰어난 앙상블이 표현한, 현실에 기반한 톤의 영화이기 때문에 그것이 더 폭발력을 가지게 된 게 아닌가 짐작해 봤다."(봉준호 감독)

"제가 도발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만드는 스토리 본질을 외면하는 건 싫었다. 이 스토리가 가진 우스꽝스럽고 코미디스러운 점도 있지만 빈부격차 현대사회가 들어나는 씁쓸하고 쓰라린 면이 있다.. 1cm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그런 영화다. 처음부터 엔딩까지 그런 부분을 정면돌파해야 했고, 그러려고 만드는 영화이기도 했다. 어쩌면 관객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지만 그것에 대한 불편함으로, 당의정을 입혀서 달콤한 데코레이션을 입혀 영화를 끌고가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솔직하게 그리려 했다. 비록 대중적 측면에서 위험해 보일 수 있어도 이게 이 영화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당연히 그래야 했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1000만 명 이상 관객분들이 호응해 주셨고,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프랑스 베트남 일본 영국에서도 오스카 후광과 상관없이. 그 부분이 기뻤다. 이런저런 수상여부를 떠나 동시대 많은 관객이 호응해 줬다는 게 되짚어 보면 가장 큰 의미고 기쁨이다.

왜 그렇게 여러 나라에서 관객들이 호응해줬는지는 시간을 두고 분석해봐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저의 업무는 아닌 것 같다. 저는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기에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나가야 한다. 왜 세계적 호응을 얻은 것일까 관객과 여러분들이 평가해 주실 것 같다. 저는 다음 작품 시나리오를 한 줄 한 줄 써나가는 게, 영화산업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 생각한다."(봉준호 감독)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알면 좋겠다. 제 생각에는, 우리 영화에는 아주 잔혹한 악당이 없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대립으로 흘러가지 않고 각자 10명의 드라마와 각자 욕망과 이유가 있다. 모두에게 연민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플롯을 따라갈 때 느끼는 색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서민 가정에서 자라 기우에 가까웠다. 박사장 집은 판타지에 가까웠다. 그래서 취재가 중요했고, 보고드리고 나누고 하면서 디테일을 쫓아나갔다…. 시나리오가 어떻게 사람 머리 속에서 나오겠나.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수상소감 때 말씀 못 드린 게 있다.. 취재할 때 많이 도와주신 가사도우미 어머님들, 수행기사님들, 아동학자님들 도움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한진원 작가)

"칸에 갔을 때, 제 생각이지만 과거에 대한 회상 대신 현 시대를 짚는 영화들이 제 생각에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이나 사실 젊은이들의 실업 등 경제적 문제를 겪고 있다. 동시대적인 문제를 굉장히 재미있게 그렇지만 심도있게 표현한 작품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고, 선과 악이 없는데 가해자 피해자가 되는 게 우리 인간 군상과 흡사해 놀랍고, 예상할 수 없는 스토리다. 감독님이 더 인기가 있는 건, 아카데미 캠페인이 경쟁구도 같지만 동지적 모습을 많이 보인다. 거기서 유머를 항상 잃지 않은 것이 소감에도 늘 묻어나 인기가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했다."(배우 이정은)

▲ '기생충:흑백판. 제공|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흑백판', 무엇이 다른가

'기생충'이 재관람 열풍 속에 다시 흥행 열기를 불지핀 가운데 오는 26일 개봉하는 '기생충:흑백판'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이미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해 호평받은 '기생충:흑백판'은 과연 무엇이 다를까. 봉준호 감독의 답은 이랬다.

"'마더'(2009) 때도 흑백판을 만들었다. 고전 영화나 클래식에 대한 동경, 로망이 있다. 세상 모든 영화가 흑백인 시절도 있었지 않나. 내가 1930년대를 살았고 흑백으로 영화를 찍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호기심이 있다. 영화팬이라면 또한 그러실 것이다. 홍경표 촬영감독님과 흑백판을 만들었고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상영했다. 묘하다. 컬러가 사라진 것 외에 똑같은데 이런저런 느낌이 있다. 보시는 분마다 느낌이 다를 수 있다. 선입견이 있을 수 있어 강요하고 싶지 않다. 로테르담의 어떤 관객이 '흑백으로 보니 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하셨다. 무슨 소리지 했지만 그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 디테일과 늬앙스를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알록달록한 컬러가 사라지니까 눈빛과 표정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 외에도 있지만 미리 나열하기보다는 보시며 느끼시면 재미있을 것 같다."(봉준호 감독)

◆한국영화계를 향해

한국영화 100년의 해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사건을 만든 '기생충'은 새로운 100년을 여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이란 새 역사를 썼다. '기생충' 덕에 한국영화계를 들여다보고, 또 한국영화를 다시 보게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이 바라보는 한국 영화계는 어떨까. 한국 영화산업 특유의 활기, 그 뒷편의 위기에 대해선 해외에서도 궁금증이 쏟아진다 했다.

"저도 '플란다스의 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요즘 젊은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를 들고왔을 때, '기생충'과 같은 시나리오를 들고 왔을 때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까. 냉정하게 질문해 본다. 제가 1999년 데뷔했다. 20여년 간 눈부신 발전이 있었다. 동시에 젊은 감독들이 이상한 작품, 모험적 시도를 하기에 뭔가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재능있는 친구들이 산업으로 흡수되기보다 그냥 독립영화를 만드는, 독립영화와 산업이 평행선을 이루는 부분이 안타깝다 했다. 2000년대 초,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을 찍는 시절엔 독립영화와 메인스트림의 상호침투, 좋은 의미의 다이내믹함이 있었다. 그런 활력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되는 지점이다. 가까운 8090년대 홍콩영화 인더스트리가 어떻게 쇠퇴해 갔는지 저희가 기억을 명확히 갖고 있다. 산업이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더 도전적인 영화들을 산업이 껴안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나오는 여러 훌륭한 독립영화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워낙 많은 재능들이 이곳저곳에서 꽃피고 있기에 산업과 좋은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 희망적으로 본다."(봉준호 감독)

▲ ⓒ한희재 기자
◆봉준호 감독의 다음 계획. 그리고 '기생충' 미드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은 알려진 대로 2편이다. 한국에서 찍는 한 편과 할리우드에서 찍을 한 편. '기생충'의 영광이 혹여 그의 다음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일지만 봉준호 감독은 "관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봉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하는 HBO의 미드 '기생충'에 대해서도 그의 언급을 들어볼 수 있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2편의 작품은 몇년 전부터 준비하던 것이다. '기생충'이 어떤 반응을 얻었나와는 관련이 없다. 평소 하던대로 준비하던 것이니까. '기생충'도 저나 배우, 제작사 모두 평소대로 평상심을 유지하며 찍은 것인데 예기치 않은 결과가 온 것이다. 목표를 두고 찍은 게 아니라 평소대로 완성도 있는 영화를 정성스레 만들어보자 했던 것이고 그 기조가 유지된다. 접근 방식이 다르다거나 특별한 건 없다. 이전부터 준비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봉준호 감독)

"(미드 '기생충'은) 제가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연출하실 감독님들은 이후에 찾게 된다. 아담 맥케이 '빅쇼트' 감독님도 참여하신다. '기생충'이 애초에 가신 주제의식, 동시대의 빈부격차 이야기를 오리지널 영화와 마찬가지로 블랙코미디, 범죄드라마 형식으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가게 될 것 같다. 리미티드 시리즈라는 말을 쓰더라. 시즌1,2로 가는 게 아니라 5~6게 애피소드로 밀도있는 TV시리즈로 만들려 한다. 이른 기사로 틸다 스윈튼과 마크 러팔로 언급이 나왔는데 공식적 사안이 아니다. 저와 아담 맥케이, 작가분이 초기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다. 방향과 구조를 이야기하는 시작 단계다. 오는 5월에 '설국열차'TV시리즈가 나온다. 2014~2015년부터 준비했는데 5년 여가 걸리는 것을 보면 '기생충'도 그만큼 걸리지 않을까 한다. 순조롭게 첫 발을 디디고 있는 상황이다."(봉준호 감독)

▲ ⓒ한희재 기자
◆'기생충'이란 여행의 마무리 "본업으로"

이날의 기자회견을 마지막으로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 스태프는 다음 프로젝트로, 일상으로 본업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영광의 순간들, 꿈같은 역사를 함께 한 배우와 스태프는 가만가만 지난 시간을 돌이키며 '기생충' 이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든든히 관객을 만나겠노라 다짐했다.

"작년 5월 칸부터 이번 오스카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건과 이벤트가 있었다. 물론 경사다. 영화사적 사건처럼 기억될 수밖에 없 그런 면이 있지만 사실은 영화 자체가 기억됐으면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렇게 되겠지 한다. 배우들의 멋진, 아름다운 한순간의 연기. 모든 스태프가 장인정신으로 만든 장면 하나하나, 거기에 들어간 저의 고민 하나하나. 영화 자체로 기억되길 바라는 바람이 있다."(봉준호 감독)

"개인적으로 감독님이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말씀을 이용하면서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가장 창의적인 것이 가장 대중적일 수 있도록 정진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이게 마지막 자리라고 하는데, 작년에 이거(4월 제작보고회) 끝나고 칸에 갔다. 끝나고 칸에 가야 할 것 같은 착각이 이어지는 기분좋은 날이다."(배우 송강호)

▲ ⓒ한희재 기자
"(당시) 너무 벅참을 느꼈다. 살면서 이런 벅참을 느낄 수 있구나 이렇게 눈물이 날 수 있구나 했다. 4개 받으니까 아카데미가 선을 넘은 것 같더라. 편견 없이 좋아해주신 아카데미 회원분꼐 감사를 드린다…. 재작년 감독님 만나고 약 2년이 지났다.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 패키지 여행이 오늘로 마무리되는 것 같다. 작년이 한국영화 100주년이었다. 황금종려상 이후 아카데미로 마무리돼 시의적절하다 생각했다. 그 순간 함께해 영광이었다. 일시적 관심이 아니라 한국영화에 큰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배우 이선균)

"아직 한국말로 하는 연기도 어려워서 글쎄요, 할리우드 진출은 고민을 더 해봐야 할 것 같다. 한국에서 일단 좋은 작품으로 더 많이 하고픈 바람이 크다…. 저도 훨씬 더 많이 고민하면서 연기를 잘 하는 게 우리 팀과 관객들에게 보답하는 게 아닌가 했다. 더 열심히 연기하겠다."(배우 조여정)

"촬영기간보다 길었던 캠페인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기생충'이란 영화, 모든 팀이 가슴 속에 오래오래 자리할 것 같다. 모든 분들에게 그랬으면 좋겠다. 저도 열심히 살아가겠다."(배우 박소담)

"제가 이만한 몸매, 이만한 외모 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했는데 감독님도 이만한 몸매, 이만한 외모 되시기까지 시간이 걸렸다.(웃음) 세계가 역시 이런 아티스트를 알아보는구나 했다.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질때 많은 인원이 참여하고 수고가 많은데 그분들을 대신해 인사드릴 수 있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배우 이정은)

▲ 조여정. ⓒ한희재 기자
"저라는 낯선 배우를 흔쾌히 써주신 감독님, 거부하지 않았던 곽신애 대표에게 감사드리고 낯선 배우를 낯설지 않게 받아준 관객께도 감사드린다. 꿈같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가늘고 길게 가는 게 꿈이었는데 사실 어떻게 가야 할지 걱정이다. 예쁘게 앉아있지만 본연의 저는 이렇지 않다.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이 하고 싶어 주저리주저리 하게 된다. 꿈같은 일이 선물이라 생각하고 한번이라 족하니 감사하게 받고 내일은 내일을 살겠다."(배우 장혜진)

"(스포일러 탓에 프로모션에 나서지 못하다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했는데) 아카데미 반응은 아무도 못 알아봤다. 보고도 스태프 중 한명이구나. 영화처럼 살아서 너무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웃음) 한국영화 100주년에 칸 황금종려상이란 큰 선물을 받고 또다른 100년을 여는 시대에 아카데미상을 받게 돼 참여한 배우로서 큰 영광이다. 본업으로 돌아가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 감사드린다."(배우 박명훈)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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