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름이 부활 청신호를 켰다. 우리가 알던 매스스타트 강자로 돌아왔다. ⓒ 태릉, 조영준 기자
[스포티비뉴스=태릉, 박대현 기자 / 송승민 영상 기자] 대들보가 물러났다. 기둥은 내려앉았다.

올 시즌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은 부침이 예상됐다. 날씨로 치면 흐림. 여제 이상화(30)가 은퇴했고 이승훈(31)까지 징계를 받았다. 남녀 기둥이 한꺼번에 이탈했다. 부드러운 세대교체는 요원해 보였다.

실제 그랬다. 지난해 11월 이후 한국은 월드컵에서 단 한 개 메달도 수확하지 못했다. 2~5차 월드컵에서 전멸했다. 우려 목소리가 커졌다.

절치부심. 한국은 올림픽 다음으로 권위 있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반등을 꾀했다. 목표는 명료했다. 깔끔한 시즌 마무리와 차기 구도 청사진 남기기. 커리어 로우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자는 분위기가 선수단 안에 퍼졌다.

성과를 냈다. 노(No) 메달 흐름을 끊었다. 김보름(27, 강원도청)이 총대를 멨다.

지난 17일(이하 한국 시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19-2020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매스스타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8분14초220 기록으로 시상대 둘째 칸에 발을 디뎠다.

경기력이 눈부셨다. 16바퀴(6400m)를 도는 레이스 초반. 김보름은 후미로 처졌다. 세 바퀴를 남길 때까지 하위권이었다.

하나 뒷심이 매서웠다. 두 바퀴를 남기고 김보름은 4위로 치고 나갔다.

이어 마지막 바퀴에서 2위까지 올라섰다. 흠 잡을 데 없는 막판 스퍼트로 약 3년 만에 세계선수권대회 시상대에 복귀했다.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이바니 블론딘(30, 캐나다)과는 0.2초 차.

값진 메달이었다. 의미가 적잖았다. 우선 슬럼프 탈출 계기를 마련했다. 김보름은 지난해 월드컵 랭킹 1위에 오르고도 세계선수권대회 경기 중 넘어지면서 기권했다. 허탈한 결과. 분한 마음이 한 켠에 자리했다.

슬럼프가 왔다. 올 시즌 초반 김보름은 ISU 월드컵 대회에서 부진했다. 지난 시즌까지 세계 1위였던 최강자가 좀체 메달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평창 올림픽이 끝난 뒤 지난 시즌까지 세계 랭킹 1위였다. 그런데 올 시즌 세 번 출전한 월드컵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많았다. 이번만큼은 꼭 메달권에 진입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뜻대로 이뤄져 기쁘다."

마음이 신나니 몸도 가벼워진 걸까. 김보름은 '솔트레이크시티 은메달' 이후 또 한 번 괴력을 발휘했다.

세계선수권대회 종료 날짜가 지난 17일. 김보름은 대회 끝나고 곧장 귀국 길에 올랐다. 그리고 18일 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쉬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귀국 하루도 안 돼 다시 스케이트끈을 조여맸다.

다음 날인 19일. 김보름은 제101회 전국동계체육대회에 출전했다. 살인적인 스케줄임에도 개의치 않았다. 여유 있게 여자 매스스타트 동계체전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친 뒤 어제저녁 귀국했다. 오늘 곧바로 경기에 나섰는데 피로감도 있고 시차 적응도 안 돼 살짝 피곤하긴 하다. 그래도 경기를 잘 마쳐서 기분이 좋다(웃음)."

"솔트레이크시티로 가기 전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왜 경기력이 떨어졌는지, 훈련법에 문제는 없었는지.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되짚었다. 코치님과 충분히 대화를 나눴다.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가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아 만족스럽다."

최종목표는 당연히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다. 2017년 강원도 강릉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다시 한 번 매스스타트 메달을 추가한 김보름은 이제 자신감을 회복했다. 익숙한 그곳을 되찾겠다는 열망이 크다. 그곳은 시상대 맨 위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일등이 목표이지 않을까. 최고 자리에 오르고 싶은 건 똑같다고 생각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만큼 훈련하고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선수로서 당연한 일이다."

"가장 중요한 올림픽은 2년 뒤 열린다. 내년에도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올림픽을 비롯한 모든 대회에서) 늘 좋은 성적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번에는 은메달을 땄지만 다음에는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 (노력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올 거라 믿는다."

스포티비뉴스=태릉, 박대현 기자 / 송승민 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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