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은 2021년 제5회 WBC 대회를 유치했지만 다시 내부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한국이 WBC를 유치한 지난 2017년 고척스카이돔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 대만 대표팀 선수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김윤석 대만 통신원] 대만의 미디어들은 지난달 25일에 일제히 2021년 제5회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지역 예선 A조 주최권을 대만이 획득했다고 보도했다. 대회는 2021년 3월에 대만 타이중과 타오위안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러나 지난 2013년(타이중) 이후 8년 만에 다시 WBC 대회를 유치하게 된 대만은 벌써부터 갈등 조짐에 내분까지 예상되고 있다.

◆WBC 주최권, 대만 스포츠마케팅 회사가 획득해 파장

대만의 연합보(聯合報)는 2일 흥미로운 심층 보도를 했다. A조 지역 예선 주최권을 대만야구협회(CTBA)나 대만프로야구연맹(CPBL)이 아닌 대만의 한 스포츠 마케팅 회사에서 획득했다는 내용이었다. WBC를 주최하는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지난 대회보다 50% 인상된 최소 300만 달러(약 35억 원)의 비용을 주최권 판매금으로 책정했는데, 이를 스포츠 마케팅 회사가 따냈다는 설명이었다.

보도 내용 중에는 한국의 사례도 설명돼 있었다. 한국은 지난 2017년 200만 달러 비용으로 제 4회 WBC 1라운드(A조) 주최권을 획득했으나 고척돔에서 열린 대회 흥행 실패로 큰 손실을 안고 이번 대회 유치를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지역예선 주최권을 획득해 서울의 고척돔에서 대회를 진행했으나 대표팀의 성적과 관중 흥행 부진으로 전체적인 수익 면에서 손실이 커 실패라는 평가를 받았다.

연합보는 "MLB사무국은 이번에도 한국에 먼저 대회 유치 의사를 물어봤지만 한국이 주최권을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MLB사무국은 대만의 아마추어야구를 관장하는 CTBA와 프로야구 기구인 CPBL에게 주최권 획득 의사를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CTBA나 CPBL도 지난 대회 한국의 실패 사례가 있기에 곧바로 결정하지 못했다. 협상을 위해 차일피일 답변을 미루며 시간을 끌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만의 한 스포츠 마케팅 회사가 최소 300만 달러의 돈을 들여 WBC 지역예선 A조 주최권을 획득했다고 보도하니 두 단체로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WBC 대회는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가 아닌 MLB사무국이 주관해 진행하는 대회로, MLB사무국이 결정하면 그만인 대회다. MLB사무국은 대만의 두 야구 단체가 시간을 끌며 대답을 미루자 주최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다른 경쟁자를 찾아 그 주최권을 내준 것이라고 한다.

▲ 대만은 2013년 WBC 대회를 유치한 바 있다. 한국의 정근우가 1라운드 예선 대만전에서 5회 홈으로 뛰어들고 있다.
◆주최권 재판매 두고 CPBL과 CTBA 갈등 조짐

대만에서는 아마추어 야구를 관장하는 CTBA와 프로야구 기구인 CPBL이 늘 앙숙 관계에 놓여 있다. 그동안 수많은 갈등으로 최강 전력의 대표팀을 꾸리지 못했다. 그러면서 각종 국제 대회에서 부진해 대만 야구팬들의 원성을 샀다.

결국 두 단체는 2년 전에 체육서(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의 중재 속에 대표팀 구성과 관련해 합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국제 대회 등급을 나누고 1급 경기(올림픽, WBC, 프리미어12 등)는 프로야구 연맹(CPBL)이 주도권을 쥐고 국가대표의 선발과 소집, 훈련 및 각종 주최자의 권리를 가지기로 했다. 그 외 등급의 국가대표 경기는 야구협회(CTBA)가 갖기로 서로 합의된 상태였다.

당연히 CPBL도 이를 염두에 두고 이번 WBC 대회를 준비했다. 지난 대회를 유치한 한국의 실패 사례와 더 커진 주최권 금액으로 인해 고민에 빠져 곧바로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두 단체가 아닌 스포츠마케팅 회사라는 제3자가 나서서 권리를 획득하자 파장이 커지고 있다. 살얼음판 위에서 손을 맞잡고 있던 두 야구 단체가 다시 갈등 양상으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MLB사무국은 대만의 체육서, CTBA, CPBL 삼자가 합의한 내용에 대해선 알지도 못하고, 알아도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주최권만 제대로 팔고, 순조롭게 대회만 잘 치러진다면 누가 주최권을 가져가도 상관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 대만은 야구의 나라다. 그러나 2021년 WBC 대회를 유치했지만 스포츠마케팅 회사가 주최권을 획득해 입장권 가격 상승은 불 보듯 뻔하다.
◆입장권 가격 상승 불보듯…대만 팬들만 속앓이

WBC 주최권을 획득한 스포츠마케팅 회사가 직접 나서서 대회를 주최하기보다는 두 단체에 재판매할 가능성이 더 크다. 대만은 야구의 나라여서 국제대회 유치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려 왔고, 이를 통해 기구를 지탱해왔다. 스포츠마케팅 회사가 WBC 유치권을 재판매한다면 살 수도, 안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 두 단체가 이를 두고 책임론을 펼치며 다시 주도권 잡기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재판매 협상 금액을 놓고 두 야구 단체 사이에 더 큰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혹은 두 단체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한쪽이 더 많은 권리를 가져가기 위해 움직인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2년 전 체육서의 중재 하에 합의했던 그 이전으로 돌아가 대회 운영과 대표팀 구성과 훈련, 그리고 대회 방송 중계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울 가능성이 크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이번 2021년 WBC 대회 주최권 획득으로 오히려 대만 야구계에 뿌리 깊은 갈등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는 대만 야구팬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지난 2013년 WBC 대회를 유치했을 때에도 엄청나게 비싼 입장권료로 팬들의 원성이 자자했는데, 이번 대회는 주최권 금액이 크기 때문에 지난 대회보다 입장권 가격이 훨씬 더 비싸게 책정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만 팬들에겐 슬픈 일이다. 팬들만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다.

스포티비뉴스=김윤석 대만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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