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루 드래곤' 이청용이 돌아왔다. 볼턴 원더러스 유니폼을 입은 지 11년 만에 한국프로축구 K리그로 복귀했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이청용(32)이 돌아왔다. 커리어 마무리를 위한 공간으로 울산을 택했다.

꿈을 품고 영국 런던에 발 들인 지 11년. 이청용은 어떤 선수였을까. 도봉중 졸업 3개월을 앞두고 프로 생활을 시작한 '블루 드래곤' 지난 16년을 되돌아봤다.

◆한국에 등장한 18살 테크니션…"삼박자 갖춘 재능"

난놈이었다. 도봉중 시절 '컴퓨터 링커' 눈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조광래(66) 당시 FC서울 감독 시선을 잡아챘다.

이때 서울은 실험장이었다. 유망주 발굴 프로젝트로 분주했다.

"어린 선수가 나쁜 습관이 배기 전"에 프로 클럽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쌓아 성장하는 게 "한국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조 전 감독 의중이 반영됐다.

서울은 2001년부터 약 2년간 전국 중고교 유망주를 싹 훑었다. 그렇게 총 12명을 품에 들였다. 파격(破格). 거금을 10대 소년에게 안겼다. 많게는 계약금 1억원 이상씩. 공들인 프로젝트였다.

한동원, 고명진, 고요한, 배해민 등이 수혜를 입었다. 이들은 서울 전성기 밑거름이 됐다. 이청용도 함께였다. 개중에서도 단연 빛났다.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 받았다. 또래보다 빠르게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소년등과했다.

이 기간 이청용은 연령별 대표 팀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U-15, U-17, U-20, U-23에 차례로 호출됐다.

호평이 줄을 이었다. 조영증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위원은 "개인 기량과 체력, 전술 이해가 두루 빼어난 탁월한 재능"이라며 열일곱 살 이청용 잠재성을 높이 평가했다.

이장수 전 FC서울 감독도 "미드필드에서 영리성이 돋보인다. (반박자) 빠른 패스와 안정적인 볼터치, 몸놀림을 지녔다. 성격도 침착하다. 어린 선수가 (프로 무대에서도) 제 몫을 다한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2006년 K리그 개막전에서 스타팅 멤버로 나섰다. 그의 나이 18살. 대선배인 '캐논 슈터' 이기형(46) 대신 오른쪽 풀백으로 뛰었다. 만족스럽진 못했다. 풀타임을 뛰었지만 슈팅 한번 날리지 못했다. 파울 5개 경고 1개를 받았다.

사흘 뒤 전북 현대와 홈 경기서도 선발 기회를 잡았다. 하나 부족했다. 상대 공격수에 번번이 뚫렸다. 크로스도 미진했다. 전반 29분. 교체 아웃됐다.

다시 2군에 내려갔다. 이청용은 이후 컵대회 2경기를 더 뛰는 데 그쳤다. 이것도 독일 월드컵 때 주전이 대거 빠져나간 틈을 타 밟은 피치였다. 1군 무대 경험을 쌓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럼에도 언론은 이 어린 풀백에 주목했다. 라이트백 이청용 잠재력을 인정했다. 신영록(수원 삼성) 이현승(전북 현대)과 묶어 그라운드 10대 돌풍을 조명했다.

전기를 마련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데뷔 2년째 팬들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2007년 서울 지휘봉을 잡은 세뇰 귀네슈(68, 터키) 감독 몫이 컸다. 귀네슈는 이청용을 풀백이 아닌 2선 자원으로 못박았다.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새 옷을 입혔다.

귀네슈 선택은 이청용 성장에 날개를 달아줬다. 펄펄 날았다. 개막 5경기 가운데 4경기에서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1골 4도움). 백미는 이 해 3월 21일 수원 삼성 전. 원정 라이벌전에서 해트트릭을 거둔 박주영에게 이청용은 완벽한 'A패스' 2개를 배달했다.

"서울 혁신 동력은 (박주영, 정조국, 아디가 아닌) 이청용" "귀네슈 황태자"라는 칭찬이 쏟아졌다. 2년생 징크스는 없었다.

팬들도 열광했다. 공을 잡으면 일단 문전으로 돌진하는 이청용 공격성에 매료됐다. 횡패스 백패스보다 과감한 전진 패스와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는 그에게 눈길을 줬다.

삼박자가 맞아떨어졌다. 보직 변경과 개막전에서 귀네슈 호 첫 골을 터트린 좋은 흐름, 프로 맛을 본 뒤 청소년 대표 팀에서 착실히 쌓은 경험이 조화를 이뤘다. 수장 믿음에 경험이 더해지고 자신감까지 덧대지니 훨훨 날았다.

이청용은 2군행을 통보 받았을 때 U-20 청소년 대표 팀에 뽑혔다. 대표 팀 주전으로 SBS컵, 부산컵, 아시아선수권대회 등 꾸준히 실전 경험을 쌓았다. 환골탈태 배경이다.

2007년 U-20 월드컵은 이름 석 자를 제대로 알린 대회였다. 한국은 조별리그 탈락 쓴맛을 봤다. 그러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신영록-심영성-하태균을 앞세운 공격진과 이상호-이청용이 주축을 이룬 미드필더진 빠른 공격 전개는 축구 팬들을 속시원하게 했다. 경기력에 박수가 쏟아졌다. '황금 세대'라는 평가가 흘렀다.

이청용과 빼어난 호흡을 보여 준 이상호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조별리그) 미국 전이 끝나고 아스날 스카우트가 내게 다가와 묻더라. 한국 14번(이청용)이 누구냐고"라며 동료 기량을 칭찬했다.

청소년 대표를 거쳐 올림픽 대표, 국가 대표에까지 승선한 이청용은 승승장구했다. 2008년 9월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요르단과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다.

A매치 4경기 만에 마수걸이 골. 이청용은 이때, 대표 팀 붙박이 윙어로 올라섰다. 감독과 언론, 동료와 팬이 모두 공감하는 주전으로 성장했다. 허정무(65) 감독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 이청용(오른쪽)은 특별했다. 힘과 체력이 우수한 '적토마 스타일'이 아닌 테크닉을 갖춘 윙어였다.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 축구에서 보기 드문 유형 날개였다.
낭보를 전했다. 이청용은 프로 데뷔 4년 만에 꿈의 무대를 밟았다. 2009년 7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 볼턴 원더러스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토트넘 홋스퍼) 설기현(풀럼) 이동국(미들스브러) 김두현(웨스트브로미치) 조원희(위건)에 이어 역대 7번째로 PL에 진출한 한국인이 됐다. 최연소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영예는 덤이었다.

같은 해 9월 26일. 이청용은 PL 데뷔골을 수확했다. 버밍엄 시티와 원정 경기에서 후반 9분 이반 클라스니치와 교체 투입된 뒤 팀 2-1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을 책임졌다.

발군의 테크닉이 빛났다. 세트피스 기회에서 매튜 테일러 프리킥이 골대를 맞고 나오자 이청용은 골지역 왼쪽에서 공을 쥐었다. 이어 수비수 한 명을 감각적으로 제친 뒤 왼발 슈팅을 때렸다. 이청용 발을 떠난 공은 상대 골문 왼쪽 모서리에 정확히 꽂혔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이청용이 환상적인 기술로 결승골을 넣었다"며 팀 동료 게리 케이힐과 함께 팀 내 최고 평점인 8점을 부여했다. 영입에 적극적이었던 게리 맥슨 감독은 "(볼턴 출신 나이지리아 축구 영웅) 제이제이 오코차만큼 침착했다"며 흡족해 했다.

이청용이 K리그 연착륙을 이룬 배경에는 입단 초기 눈부신 어시스트가 크게 한몫했다. 수비수 한둘을 따돌리고 낮고 빠르게 제공한 'A패스'는 필드를 함께 누비는 선배로부터 신뢰를 얻은 동력이 됐다.

PL 5경기 출전 만에 터진 '버밍엄 전 결승골'도 그랬다. 이청용 연착륙 가능성을 키웠다. 이청용은 직전 경기였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칼링컵 3라운드에서도 어시스트를 챙겼다. 합류한 지 얼마 안 돼 챙긴 2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는 팀 내 입지를 단단히 구축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데뷔 첫해 이청용은 5골 8도움을 거뒀다. 빠르게 팀 중심으로 올라섰다. 상이 쏟아졌다. 볼턴 구단 선정 최우수선수상, 볼턴 동료가 꼽은 최우수선수상과 올해의 이적선수상, 볼턴 서포터스가 뽑은 올해의 선수(2위),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가 꼽은 성공적인 영입 사례 16위 등에 이름을 올렸다. 리버풀, 아스날 이적설이 유력하게 보도되기도 했다.

활약은 이어졌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눈부신 테크닉을 자랑했다.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해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박지성-기성용-김정우와 함께 대표 팀 부동의 주전 미드필더로 맹활약했다.

리오넬 메시, 앙헬 디 마리아, 가브리엘 에인세가 버틴 아르헨티나아와 조별리그 2차전에서 월드컵 첫 골 기쁨을 맛봤다. 번개 같은 가로채기로 만회골을 뽑았다.

0-2로 끌려가던 전반 종료 직전. 이청용은 바이에른 뮌헨 주전 센터백 마르틴 데미첼리스 트래핑 실수를 놓치지 않고 아웃프론트 킥으로 연결했다. 골키퍼 세르히오 로메로가 분통을 터뜨렸다. 감각적인 득점. 세계 언론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미국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떠오른 스타 10인'으로 이청용을 선정했다. SI는 "스피드가 좋고 창의성이 뛰어난 측면 윙어"라며 메수트 외질, 혼다 게이스케, 제르비노와 함께 이청용 이름을 적었다. ESPN, 더 타임스도 대열에 합류했다. 최전성기 서막이 열렸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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