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니 카슨의 더 투나잇 쇼'에서 풍자 위주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이며 스타덤에 오른 쟈니 윤. 유튜브 영상화면 캡처

[스포티비뉴스=정유진 기자] 젠틀한 미소, 센스있는 입담, 토크쇼의 전설. '코미디계의 대부' 쟈니 윤(윤종승)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 버렸다. 누리꾼들은 쟈니 윤의 화려했던 방송 자취를 회고하는 한편, 외롭고 적적했던 인생사도 되돌아보면서 애통한 마음으로 추모하고 있다.

자니 윤은 8일(현지시간) 새벽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뇌출혈을 앓고 있었던 그는 별세 나흘 전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입원했다가 일어나지 못하고 안타깝게 눈을 감았다.

1936년생인 고인은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서울 성동고를 졸업한 뒤, 1962년에 해군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건너가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서 영화배우,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했다.

▲ '자니 카슨의 더 투나잇 쇼'에서 풍자 위주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이며 스타덤에 오른 쟈니 윤. 유튜브 영상화면 캡처

그는 1977년 '자니 카슨의 더 투나잇 쇼'에서 풍자 위주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이며 스타덤에 올랐다. 무엇보다 해당 쇼에 쟈니 윤은 동양인 최초로 발탁된 것. 그 후에도 34번이나 출연하며 젠틀한 미소와 센스있는 입담으로 미국 전역을 사로잡았다. 또한 NBC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자니 윤 스페셜쇼'를 진행하며 미국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1989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자니윤쇼' 진행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대한민국 토크쇼의 한 획을 그었다. 조영남이 보조 MC로 활약한 '자니윤쇼'는 한국 지상파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미국식 대담형 토크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자니윤쇼'는 이후 '주병진 쇼', '서세원 쇼', '이홍렬 쇼' 등 코미디언 개인의 이름을 딴 토크쇼들이 탄생하는 데 씨앗이 됐다. 

▲ KBS '쟈니윤쇼' 진행으로 큰 사랑을 받은 쟈니 윤. 유튜브 영상화면 캡처

이처럼 자니윤은 미국과 한국 토크쇼에서 큰 족적을 남긴 전설적 방송인이다. 자니 윤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투병 생활을 돕는 등 마지막까지 고인과 함께했던 미국 현지의 지인 임태랑 씨는 스포티비뉴스와 국제전화에서 "한국과 미국 방송계 모두에서 큰 족적을 남긴 대단한 방송인이자 인기인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미국에서 외국인이 이름을 날리기가 쉽지 않고, 예전에는 더더욱 그랬다. 한국 K팝이 지금 큰 인기지만 자니윤은 그 시절 K 컬처의 선두주자, 전설이나 다름없다"고 돌이켰다.

그러면서 지인 임 씨는 "뇌출혈로 오랜 시간 투병했고, 동생 외엔 가족과 왕래가 없다시피 해 외롭게 떠난 것이 안타깝다.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셨다”고 전해, 쟈니 윤의 쓸쓸한 인생사를 짐작 가게 했다.

▲  과거 '승승장구'에 출연했던 자니 윤. 출처| KBS2 방송 캡처

실제로 고인은 1990년 SBS 개국과 함께 진행한 '쟈니 윤 이야기 쇼'를 마지막으로 방송가를 떠났다. 이후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한국 등을 오가며 노후를 보내다 1999년 64세의 나이로 18세 연하 줄리아 리와 결혼했다.

그러나 4년 뒤인 2010년 줄리아 리와 이혼한 쟈니 윤은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는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임명돼 활동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임기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은 2016년 뇌출혈로 입원, 이후 미국에서 돌아와 투병해 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쟈니 윤이 백발의 치매 노인이 되어 요양병원에서 생활하는 근황이 공개돼 충격을 안겼다. 특히 줄리아 리가 쟈니 윤이 치매에 걸려 이혼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나 줄리아 리는 쟈니 윤이 치매가 걸리자 이혼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하면서, 쟈니 윤과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줄리아 리 아들과 불화를 꼽으며 "이혼 뒤에도 대외적으로 부부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고 밝힌 바 있다.

▲  '코미디계 대부' 자니윤이 뇌출혈 투병 4년 만에 LA에서 별세했다. 제공|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아들과 불화로 아내와도 이혼하게 된 쟈니 윤은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결국 뇌출혈 투병 4년 만에 눈을 감고 말았다. 최근 말도 어눌해지고 휠체어 신세를 지는 등 건강이 악화된 쟈니 윤은 지난 4일에는 갑자기 호흡곤란에 혈압도 낮아져 입원했지만, 나흘 만인 지난 8일 새벽에 별세했다.

투병 중에도 고인은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며, 수년 전부터 대학에 기증 의사를 밝혀왔다. 이에 대해 쟈니 윤 지인 임 씨는 스포티비뉴스에 "마지막까지 좋은 뜻이었는데, 친지나 가족, 팬들 입장에서는 바로 장례를 치르고 위로하거나 할 수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다"고 털어왔다.

미국 방송계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한국인. 그의 마지막은 고독했을지 몰라도, 마음만큼은 풍요로웠다. 누리꾼들 역시, 쟈니 윤을 되돌아보며 추모 물결을 이어가고 있다.

쟈니 윤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러진다. 시신은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UC 어바인에 기증됐다.

스포티비뉴스=정유진 기자 u_z@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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