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남자 농구 '레전드' 양동근이 은퇴를 선언했다. ⓒ 논현동,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논현동, 박대현 기자] 전설이 떠났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정든 유니폼을 벗었다.

한국 남자 농구 '레전드' 양동근(39, 현대모비스 피버스)이 은퇴했다.

양동근은 1일 서울 논현동 KBL 센터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늘 은퇴를 염두에 두고 (28년 동안) 농구를 했다. 군대 있을 때부터, 발목 다쳤을 때부터 항상 이날을 유념하며 뛰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선수로서 보낸 세월 동안) 후회없이 농구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물러남을 알렸다.

현대모비스 박병훈 단장과 유재학 감독, 한양대 후배 조성민, 팀 동료 함지훈이 꽃다발을 증정하며 시작한 기자회견은 시종 차분했다. 들뜨거나 슬프지 않았다.

이어 양동근이 마이크를 잡았다. 양동근은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운 상황인데 많은 분이 와주셔서 감사드린다. KBL에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운을 뗐다.

준비한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좋은 환경에서 농구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주신 현대모비스에 감사드린다. 그간 여러 단장님과 (팀을 거쳐간) 모든 임직원 분께 감사하다. 17년 동안 많은 분이 도와주셨다. 일일이 이름을 언급하진 못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지도해주신 여러 은사님께도 감사드린다. 

"팬분들이 많이 아쉬워하셨을 것 같다. (고 크리스 윌리엄스가 달았던) 33번 등번호를 달고 한 번 뛰어보고 싶었는데 시즌이 조기 종료돼 그러지 못한 점도 맘에 걸린다. 홈 구장인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멋지게 은퇴하고 싶었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모든 팬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 말씀을 드린다."

▲ 이제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응시하는 양동근은 볼 수 없다. ⓒ 한희재 기자

"난 정말 운이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감독님과 선후배, 임직원 분들과 행복하게 농구했다. 우승도 많이 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런 일(은퇴 기자회견)도 없었을 거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정말 33번을 달지 못한 게 아쉽다. 윌리엄스는 내게 잊지 못할 친구다. 땡큐 소 머치, 마이 브라더(Thank you so much, my brother)."

"지독히도 말을 안 들었다. 학원도 안 가고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다. 부모님 희생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못했을 거다. 사랑하고 감사드린다."

계속 울먹거렸다. 쉽게 말을 못 이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장모님께도 감사하다. 미국에 있는 누나도 생각난다. 철없던 시절에 만나서 예쁜 가정을 함께 꾸려준 아내에게도 고맙다. 시즌 중이면 아내가 아빠 역할까지 한다. 은퇴 뒤에는 그동안 잘 못했던 걸 만회하고 싶다. 내 아들은 (아빠 은퇴에) 박수를 쳐줬다. 정말 힘이 많이 된다. 딸은 '집에 언제 오냐'며 아빠 오는 날만 기다린다. 그 힘으로 마흔 살까지 버틴 게 아니었을까. 가족이 늦게까지 농구할 수 있던 버팀목이었다고 생각한다."

"농구를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쏘리'와 '땡큐'였다. 외국인 선수한테는 패스를 잘 못 넣어줬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내 슛이 빗나갔을 때 풋백 득점해줬을 때 고맙다고 말하고. 국내 선수도 마찬가지다. 난 패스 못하는 가드이기 때문에 많이 양해해 달라. 그간 내 뒷바라지를 해준 모든 동료들한테 정말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는 못하겠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지만. 은퇴를 늘 염두하고 뛰었다. 군대 있을 때도 그랬다. 은퇴한 형들을 볼 때마다 (내가 은퇴했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하기 전에 '오늘 열심히 하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연습하고 경기했다. 그래서 오늘(1일) 이 자리도 후회가 적다."

"선수로서 코트에 설 수는 없겠지만 내게 주셨던 응원과 사랑. 그간 내가 많이 보고 느꼈던 부분을 다시 잘 공부해서 코트에 (지도자로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겠다. (17년 선수생활은) 정말 '꿀잠' 잔 것 같은, 너무나 꿈같은 시간이 지나간 것 같다. 어딜 가든 주셨던 사랑, 잊지 않고 보답할 수 있는 길을 꾸준히 찾도록 하겠다."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본인 결정에 후회하지 말기를.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사람이 되기를. 앞으로 부상없이, 올 시즌은 코로나 탓에 아쉽게 마감했지만 차기 시즌에는 10개 구단 모든 선수가 몸 다치지 말고 좋은 결실 맺었으면 좋겠다."

양동근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유 감독도 그렇다. '양동근 없는' 유재학호는 상상하기 어렵다.

양동근은 유 감독을 향해 하고픈 말이 있는지 묻자 "처음에는 냉정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니구나. 감독님이 정이 많으시구나' 생각이 바뀌었다. 워낙 준비를 철저히 하시니까. 미팅 때마다 늘 (우리가) 준비 못한 걸 날카롭게 물어보신다. 그래서 항상 (농구를) 다시 보게 됐다. 지금도 배우고 있는 상황이다. 감독님은 내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날 만들어주신 분"이라고 답했다.

돌이켜봤을 때 다시 한 번 함께 농구하고 싶은 선수가 있는지 질문에는 "초등학교 때 함께 농구를 시작한 (김)도수와 (조)성민이, 윌리엄스, (이)종현이를 꼽고 싶다. (함)지훈이는 너무 오래 같이 뛰어서 빼겠다(웃음)"고 말했다.

커리어 통틀어 가장 까다로운 상대를 꼽아달라는 말에는 "신인 때 맞상대했던 가드 형들 다 까다로웠다. 비디오를 그렇게 봤는데도 그러더라. 다들 정말 다양한 플레이스타일을 지니셔서(웃음). 그 과정에서 나 역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양동근
KBL 역대 최고 포인트가드 아니냐는 질문에는 "난 최고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댓글 보니까 욕을 많이 하시던데(웃음). 선수들도 내색은 안하지만 상처를 많이 입는다. 남들보다 한 발 더 뛰고 열심히 플레이했던 선수일 뿐"이라며 웃었다.

현대모비스에서만 17년 뛰었다. 2004년 한국농구연맹(KBL)에 데뷔한 양동근은 그 해 신인상을 거머쥐며 커리어 첫 발을 성공적으로 뗐다.

이후 발자취가 눈부시다. 통산 665경기에 나서 7875득점 3344도움 980스틸을 거뒀다. 득점은 역대 8위, 도움과 스틸은 각각 3위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안정된 슛 릴리스가 돋보였다. 통산 야투, 외곽슛 성공 수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란히 역대 8위다. 2936개 슛을 림 안에 집어넣었고 외곽 라인 밖에서도 990개를 꽂았다.

우승 반지가 6개에 이른다. 한 손이 모자란다.

소속 팀이 정규리그 우승 5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를 차지하는 데 크게 한몫했다. 이 과정에서 정규리그 MVP 4차례, 플레이오프 MVP에 3차례 선정됐다. 명실상부 한국 농구 역대 최고 포인트가드 가운데 한 명이었다.

스포티비뉴스=논현동, 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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