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 때부터 NBA를 뒤흔들었던 매직 존슨.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1980년 NBA 파이널. 이제 막 프로세계에 발을 디딘 신인이 포효했다.

파이널 대진표는 LA 레이커스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카림 압둘-자바가 이끌던 레이커스는 1979-80시즌, 구단 역사를 바꿀 신인이 가세하며 파이널에 올랐다. 주인공은 바로 매직 존슨(61, 206cm)이었다.

매직은 에버렛 고등학교시절부터 미국 전역에 이름을 떨친 대형 농구 유망주였다. 큰 키에도 포인트가드를 보며 화려한 패스, 매끄러운 경기 운영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특히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창의적인 플레이가 매직의 주가를 높였다.

미국 지역 매체 '랜싱스테이트저널' 프레드 스테블리 기자는 매직의 고교시절 플레이를 본 후 "충격적이다. 농구하는 게 마치 마법같다"며 '매직'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본명이 어빈 존슨이었던 매직은 이후 매직 존슨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미시간 주립대 진학 후에도 승승장구였다. 2년 동안 62경기에 나서 평균 17.1점 7.6리바운드 7.9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m 6cm의 포인트가드는 코트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위력적이었다. 1학년 때 팀을 NCAA(미국대학체육협회) 8강에 이끌었고 2학년 땐 래리 버드가 버틴 인디애나 주립대를 꺾고 대학농구 정상에 올랐다.

매직에게 대학 무대는 좁았다. 2학년을 마친 후 NBA에 진출했다. 레이커스는 매직을 1979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했다.

NBA에 와서도 곧바로 실력 발휘했다. 신인임에도 레이커스의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꿰찼다. 데뷔 시즌에 평균 18득점 7.7리바운드 7.3어시스트 2.4스틸 야투성공률 53%로 전천후 활약을 펼쳤다. 시즌 중 올스타에도 선정됐다.

매직의 포지션 가리지 않는 다재다능함과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패스는 레이커스를 한 단계 더 나은 팀으로 성장시켰다. 레이커스는 플레이오프 서부 콘퍼런스 관문을 뚫고 파이널에 진출했다.

파이널에서 매직은 '닥터 J' 줄리어스 어빙, 모리스 칙스, 대릴 도킨스 등이 있는 필라델피아를 만났다. 어빙은 미국프로농구가 NBA와 ABA로 양분되던 시절부터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꼽혔다. 

커다란 손과 엄청난 운동능력, 우아한 플레이는 어빙의 트레이드 마크. 특히 덩크슛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빙은 ABA에서 우승과 MVP, 득점왕을 휩쓸었고 NBA로 통합된 1976-77시즌부터는 필라델피아로 이적해 활약을 이어갔다.

서부와 동부 강호들이 붙은 진검승부. 1980년 파이널은 5차전까지 3승 2패로 레이커스가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레이커스는 우승을 코앞에 두고 큰 악재를 맞는다. 팀 에이스인 압둘-자바가 심각한 발목 부상으로 6차전 결장이 확정된 것이다. 더군다나 6차전은 필라델피아의 홈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폴 웨스트헤드 레이커스 감독은 승부수를 띄웠다. 매직을 선발 센터로 내보낸 것. 매직은 이날 센터를 비롯해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며 필라델피아에 맞섰다.

결과는 123-107로 레이커스의 승리. 레이커스 통산 5번째 파이널 우승이었다.

매직은 파이널 6차전에서 42득점 15리바운드 6어시스트로 펄펄 날았다. 미국 언론은들은 "NBA 역대 파이널 최고의 퍼포먼스"라며 매직의 플레이에 감탄했다. 

경기 직후 파이널 MVP엔 매직의 이름이 불렸다. NBA 역사상 유일한 '신인 파이널 MVP'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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