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란 루를 상대하는 앨런 아이버슨
[스포티비뉴스=이민재 기자] NBA 역사상 작은 1순위 출신, 183㎝ 앨런 아이버슨은 1996년 NBA 드래프트에서 필라델피아 76ers에 뽑혔다. 데뷔전에서 30점 6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공격력은 신인 선수임에도 폭발적이었다. 평균 23.5점 4.1리바운드 7.5어시스트 2.1스틸로 올해의 신인상 주인공이 됐다.

이듬해 필라델피아는 래리 브라운 감독을 영입했다. 브라운 감독은 철저한 수비 마인드와 선수들을 이끄는 화끈한 리더십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명장이었다. 

브라운 감독의 아이버슨 활용법은 달랐다. 포인트가드가 아닌 슈팅가드로 나서도록 변화를 준 것이었다.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아이버슨 장점을 극대화하자는 생각이었다. 데뷔 세 번째 시즌 만에 득점왕(26.8점)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였다.

필라델피아는 브라운 감독과 아이버슨 체제로 점점 경기력을 끌어올렸다. 아이버슨 데뷔 시즌 22승에 그친 필라델피아는 31승→28승(직장폐쇄로 단축 시즌)→49승에 이어 2000-01시즌 56승 26패로 동부 콘퍼런스 1위에 올랐다.

아이버슨은 평균 31.1점 3.8리바운드 4.6어시스트 2.5스틸 FG 42.0%로 펄펄 날았다. 키는 팀에서 가장 작았지만 영향력은 가장 컸다. 리그 내 위상도 마찬가지였다. 데뷔 5년 차에 2000-01시즌 MVP에 선정됐다.

아이버슨의 무기는 상당히 많았다. 작은 키에도 돌파가 가능했고, 미드레인지와 3점슛, 공이 없을 때 활발한 움직임으로 상대를 무너뜨렸다. 그를 막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거친 몸싸움으로 막아 세우는 일이 잦았다. 부상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퇴근, 발목, 고관절, 어깨, 무릎, 팔꿈치 등까지 온몸이 온전치 않은 상황에서 파이널에 올랐다. 당시 경기 중계진 케빈 할란은 "경기당 아이버슨이 코트에 10~15번 정도 쓰러졌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필라델피아는 아이버슨뿐만 아니라 스노우, 맥키, 디켐베 무톰보, 조지 린치까지 모두 부상 병동이었다. 파이널에 오르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이유다. 플레이오프 2라운드와 동부 콘퍼런스 파이널에서 토론토 랩터스와 밀워키 벅스를 모두 7차전 접전 끝에 꺾을 수 있었다.

정상에서 만난 상대는 LA 레이커스. 레이커스는 디펜딩 챔피언으로 2001 NBA 파이널 진출까지 단 1패도 허용하지 않은 강력한 팀이었다. 

1차전 시작도 화끈했다. 레이커스는 초반부터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샤킬 오닐을 중심으로 1쿼터 종료 3분여를 남기고 21-9로 앞섰다.

필라델피아도 부지런하게 쫓아갔다. 아이버슨과 무톰보의 연속 득점으로 1쿼터 22-23까지 간격을 좁혔다. 이후 아이버슨은 코트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득점포를 가동했다. 자신에게 모든 수비가 쏠렸지만 2쿼터에만 무려 18점을 올리면서 역전을 이끌었다.

레이커스는 오닐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갔으나 쉽지 않았다. 아이버슨으로부터 파생되는 옵션을 막지 못한 탓이었다. 필 잭슨 감독은 반전 카드를 꺼내 들었다. 3쿼터 5분여를 남기고 데릭 피셔 대신 터란 루를 투입했다. 14점 차로 뒤처진 상황에서 분위기 변화가 필요했다.

당시 루는 존재감이 없는 선수였다. 2000-01시즌 38경기 출전, 평균 12.3분을 소화했다. 2001 플레이오프에서도 파이널에 오르기 전까지 10경기서 평균 5.9분만 소화했다. 그야말로 벤치를 지키는 그저 그런 선수였다.

그러나 루도 아이버슨 못지않게 스피드가 빠른 선수였다. 잭슨 감독은 루로 아이버슨을 지치게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이는 효과적이었다. 3쿼터까지 38점을 올린 아이버슨이 4쿼터 3점에 묶였기 때문이다.

아이버슨은 막혔지만 경기는 막판까지 치열했다. 서로 점수 차이를 쉽게 벌리지 못했다. 먼저 리드를 챙긴 건 레이커스였다. 종료 1분 57초를 남기고 오닐이 덩크로 94-92 리드를 이끌었다. 이어 스노우가 득점을 올리며 다시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4쿼터 남은 시간 동안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종료 34초를 남기고 무톰보가 자유투 2개를 얻으면서 승리의 기회를 엿봤으나 모두 놓쳤다.

경기는 연장전으로 흘렀다. 여기서 아이버슨이 다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연장전에만 7점을 올리며 활약했다. 명장면도 만들었다. 47초를 남긴 상황에서 아이버슨이 크로스오버에 이은 중거리슛을 성공했다. 루가 끝까지 콘테스트했지만 득점을 내준 뒤 넘어졌다. 아이버슨은 쓰러진 루 위를 넘어 지나갔는데, 이 장면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결국 필라델피아는 연장전 끝에 시리즈 첫 승리를 따냈다. 승리의 주역은 단연 아이버슨이었다. 그는 53분간 48점 5리바운드 6어시스트 5스틸 FG 43.9%(18/41) 3P 37.5%(3/8)로 펄펄 날았다.

1차전 원정에서 승리, 또한 플레이오프 첫 패배를 선사했다는 점에서 필라델피아 기세가 상당히 올랐다. 그러나 이후 힘없이 4연패로 시리즈를 내주고 말았다. 아이버슨이 시리즈 내내 최소 44분 이상 뛰면서 평균 35.6점으로 활약했지만 그를 도와줄 선수가 부족했다. 오닐(33.0점)과 코비 브라이언트(24.6점)를 맞서기엔 아이버슨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스포티비뉴스=이민재 기자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