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은 코비 브라이언트를 상징하는 또 하나 숫자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2004년 여름. 레이커스 왕조가 해체됐다.

샤킬 오닐, 데렉 피셔, 필 잭슨 감독이 짐을 쌌다. 릭 폭스는 은퇴했고 기대를 모았던 전당포 라인업은 1년 만에 와해됐다.

게리 페이튼, 칼 말론이 팀 내분에 질려 로스앤젤레스(LA)를 떠났다. 호레이스 그랜트, 브라이언 러셀도 할리우드와 '1년 더'를 거부했다.

대변혁. 레이커스는 오닐을 영입한 1996년 여름과 잭슨을 수장으로 맞은 1999년 여름만큼이나 변화 폭이 큰 산란한 여름을 2004년에 보냈다.

구단주 제리 버스 의지대로 LA 레이커스는 고 코비 브라이언트(1978~2020) 중심으로 재편됐다.

팀 성적은 하락했다. 하나 코비 '득점쇼'는 절정을 이뤘다.

레이커스 새 리더로 낙점된 코비는 폭발적인 화력으로 미국프로농구(NBA) 팬들을 열광시켰다.

백미는 커리어 첫 득점왕에 오른 2005-2006시즌.

2005년 12월 20일 코비는 댈러스 매버릭스와 홈 경기서 62점을 쓸어 담았다. 팀 112-90 대승에 크게 한몫했다.

15년 전 댈러스는 서부 대표 강호였다. 더크 노비츠키와 제이슨 테리, 조시 하워드, 데빈 해리스가 주축을 이뤄 해당 시즌 60승 22패를 거뒀다. 그 해 NBA 파이널에도 올랐다. 그만큼 전력이 탄탄했다.

아랑곳없었다. 코비는 야투 31개 던져 18개를 꽂았다. 적극적인 림 공략도 일품. 자유투를 무려 25개나 뺏어 냈다(22개 성공). 코트 마진은 +35.

댈러스 침공은 서막이었다. 이듬해 1월 22일. 코비는 새 역사를 썼다.

안방에서 열린 토론토 랩터스 전에서 81점을 퍼부었다. 공격 상황에서 스윙맨이 구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기술을 쇳물처럼 쏟아 냈다.

코비 손을 떠난 공이 림 그물을 흔들 때마다 홈 팬은 뜨겁게 환호했다.

상대 코트 왼편을 허문 뒤 올리는 리버스 레이업, 톱에서 동료 빅맨 핸드 오프를 받고 그대로 솟구쳐 꽂는 한 손 덩크, 유로 스텝, 롱2 지역에서 짧은 펌프 페이크 뒤 점프슛, 풀업 점퍼, 아웃넘버가 아닌 상황에서 기습적인 3점슛, 1선에서 가로채기 뒤 단독 속공 마무리, 포스트업 자세로 공을 받은 후 페이스업 전환해 꽂는 코너 점프슛, 영리한 슈팅 파울 유도, 좌우 엔드 라인을 타고 들어가 완성하는 더블 클러치, 슈팅 핸드 반대쪽으로 한두 걸음 옮긴 뒤 올라가는 점프슛.

그야말로 붙으면 파고, 떨어지면 쐈다. 공격의 정석을 토론토 전에서 보였다.

24번이 아닌 등 번호 8번을 달고 운동능력도 팔팔했던 스물여섯 살 코비는 그렇게 또 한 번 굵은 이정표를 세웠다.

코비가 이날 올린 81점은 월트 체임벌린(100득점)에 이은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종전 2위 기록 역시 체임벌린이 거둔 78점이었는데 깨끗이 넘어섰다.

디테일한 수비 전술이 발달하고 공수 전환이 빠른 현대 농구에서 좀체 보기 힘든 역사를 연출했다.

경기가 끝난 뒤 코비에겐 새 별명이 붙었다. '미스터 81(Mr.81)'.

가끔은 숫자 하나가 모든 걸 일러준다. 부가 설명 필요없이 상징적인 숫자 딱 하나. 영원한 농구 청년에게는 81이 그랬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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