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6년 봄은 마이클 조던 커리어를 얘기할 때 반드시 짚어줘야 할 계절이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마이클 조던(57)은 철인이다.

코트를 누빈 15시즌 가운데 9시즌을 전경기 출장했다.

조던의 통산 출전 경기 수는 1072. 시즌 평균으로 환산하면 71.5경기에 이른다.

1, 2차 은퇴 뒤 복귀 시즌을 제외하면 수치가 확 뛴다. 해마다 76.5경기를 뛰었다. 정규 시즌 93%에 달하는 숫자다.

에어 조던, 농구의 신, 농구 황제 같은 미문여구에 가려진 감이 없잖지만 그는 신(神)이기 앞서 꼬박꼬박 출근 도장을 찍는, 성실한 노동자였다.

디드 낫 플레이(Did Not Play) 사유에 늙어서(Old)가 기입되고, 로테이션 개념이 촘촘히 자리잡은 지금과는 결이 다른 발자취다.

그런 조던도 개근에 실패한 해가 있었다. 데뷔 2년째였던 1985-86시즌. 조던은 18경기 출장에 그쳤다.

뜻밖의 부상에 발목 잡혔다.

1985년 10월 29일. 조던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원정 경기에서 왼 발목을 다쳤다.

4쿼터 초반 덩크를 꽂은 뒤 착지하는 과정에서 주상골에 금이 갔다. 정규 시즌 3경기 만에 예기치 않게 재활 코스를 밟았다.

컴백까지 걸린 시간은 5개월. 조던은 이듬해 3월 15일이 돼서야 코트에 복귀할 수 있었다.

제리 크라우스 단장과 스탠 알벡 감독은 조던 출전 시간을 철저히 관리했다. 복귀 첫 5경기에선 20분을 마지노선 삼았고, 이후 4경기에도 30분 이상 출전시키지 않았다.

예열하는 시간이었다. 복귀 뒤 15경기에서 조던은 평균 23분 30초만 뛰었다. 선발 출장도 4경기에 그쳤다.

이 해 조던이 거둔 기록은 야투율 45.7%에 평균 22.7득점 3.6리바운드 2.9어시스트.

야투 시도는 경기당 평균 18.2개에 불과했고 출전 시간도 25분 10초에 머물렀다. 거의 모든 부문에서 커리어 로를 기록했다.

여기까지가 조던이 1986년 플레이오프(PO)에 나서기 전 상황이었다. 결코 좋은 흐름이 아니었다.

첩첩산중. 소속 팀 시카고 불스가 PO 1라운드에 맞닥뜨린 상대는 당대 최강 보스턴 셀틱스였다.

당시 보스턴은 래리 버드, 케빈 맥해일, 로버트 패리시, 대니 애인지, 데니스 존슨 등 기라성 같은 스타가 주축을 이룬, 동부 패자(覇者)였다. 이들은 정규 시즌에서 67승을 수확하며 명성에 걸맞은 위용을 자랑했다.

신구 조화가 눈부셨다. 버드와 맥해일, 애인지는 20대 한창 나이였다. 서른두 살 패리시는 프론트 코트에서, 서른한 살 존슨은 백코트에서 평균 두 자릿 수 득점을 올리며 팀 중심을 잡았다.

왕년의 스타 빌 월튼과 스콧 웨드먼도 커리어 말미를 보스턴에서 마무리하던 참이었다. 둘은 감초 베테랑 노릇을 톡톡히 했다. 

시카고는 이처럼 쟁쟁한 스타 구단을 맞아 1986년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 견줄 만했다. 

아무도 몰랐다. PO가 열리기 전까지는. 데뷔 2년째 슈팅가드가 어떤 놀라운 역사를 작성할지 어느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다.

1986년 4월 20일. 조던은 보스턴과 PO 1라운드 2차전에 나섰다. 원정 팀 무덤으로 악명 높은 보스턴 가든에서 경기.

시카고는 2차 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보스턴에 131-135로 석패했다. 전반을 58-51로 앞서는 등 빼어난 경기력을 보였지만 막판 시소 상황에서 2옵션 부재, 뒷심 부족을 드러냈다.

그런데 분위기가 묘했다. 스포트라이트가 보스턴을 향하지 않았다. 기자단은 승자를 빛나는 조연 취급했다.

36득점 12리바운드 8어시스트 맹활약을 펼친 버드나 27득점 15리바운드 6블록슛으로 골밑을 지배한 맥해일, 24점을 몰아친 애인지가 주연 대우를 받지 못했다.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조던이었다. 버드로부터 "신이 마이클 조던으로 분장했다"는 희대의 명언을 낳게 한, 63득점 야투율 53.7% 보정 코트 마진(BPM) 19.4(!)를 기록한 스물네 살 슈팅가드가 조명을 독차지했다.

조던은 경기를 지배했다. 전담 수비수 존슨은 물론 버드, 패리시, 제리 시칭, 애인지, 맥헤일 등 스위치로 맞대응한 셀틱 멤버 전원을 따돌리고 53분간 쉼 없이 점수를 쌓았다.

이날 조던이 챙긴 63점은 1962년 엘진 베일러가 세운 PO 한 경기 최다 득점(61점)을 넘어선 대기록이었다.

선배 극찬이 쏟아졌다. 버드는 "신이 마이클 조던으로 분장한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고 존슨도 "모두가 보셨죠. (나뿐 아니라) 우리 팀 전체가 MJ를 막지 못했습니다"라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맥해일 역시 마찬가지. 2011년 4월 맥해일은 '마이클 조던 63득점' 25주년 특집 기사를 내놓은 ESPN과 인터뷰에서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 건지 '멘붕'에 빠졌다. 도저히 조던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며 그저 놀라웠던 그날을 떠올렸다.

이 해 보스턴은 시카고, 애틀랜타 호크스, 밀워키 벅스를 제치고 미국프로농구(NBA) 파이널에 진출했다. 파이널에선 하킴 올라주원-랄프 샘슨 트윈타워가 버틴 휴스턴 로키츠를 4승 2패로 꺾고 정상을 밟았다.

데뷔 2년차 조던은 파이널 우승 팀을 상대로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였다. 르브론 제임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NBA 역대 최고 3번으로 꼽혔던 슈퍼스타 선배로부터 농구의 신이란 극찬을 들었다. 이날 이후 1986년 봄은, 조던 커리어를 얘기할 때 반드시 짚어줘야 할 시간이 됐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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