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FC의 홈 DGB대구은행파크 ⓒ한국프로축구연맹


사자성어에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속에 뼈가 있다는 뜻이죠. 그러나 언중유골이 담긴 글에는 다소 딱딱하고 경직된 느낌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포티비뉴스는 조금 더 울림 있게 말을 던지는 '언중유향(言中有響)'이라는 사자성어를 통해 다양한 사안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말에서 울리는 소리가 조용하거나 크거나, 향(香)이 좋거나 나쁠 수도 있지만 말이죠.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어. 그러니까 언제였더라…."

코로나19로 개막이 잠정 연기됐던 K리그가 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전북 현대-수원 삼성의 무관중 개막전으로 돌아와 11월까지 내달린다. 물론 코로나19 재발 등 돌발 변수가 등장하면 완주하기 어려운 상황 발생도 가능하다. 구성원들의 노력과 관전을 원하는 팬들의 인내심이 필수인 이유다.

2월29일 개막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기삿감 되는 '보도자료' 만들기에 공을 들였다. 재미난 기록을 찾아서 알리는 등 최대한 K리그 콘텐츠를 알리려 애썼다. 물론 일부 틀린 기록도 있었지만, 노력 자체는 의미 있었다.

▲휴가도 못하고 개막 준비에만 매달리며 희생한 구단 직원들

K리그1 12개, K리그2(2부리그) 10개 등 22개 구단은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 정상 개막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던 업무가 중단되면서 일부 구단은 직원들에게 미리 여름 휴가를 앞당겨 가도록 조치했다. 조금이라도 쉬어야 향후 일정이 빡빡한 상황에서 버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행운인 경우였다. 휴가를 허용하지 않은 구단들이 대다수다. 20명이 채 되지 않는 사무국 구조상 누군가 빠지면 업무 공백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일인다역에 너무나 익숙한 것을 바꾸려 하지 않는, 세계에 '실력으로는 아시아 최강'이라고 홍보하려 노력하는 K리그의 이면이다. 오히려 자유를 누린 선수 중 일부는 자가 격리 등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지 않아 원성을 샀다. 그런데도 부산 아이파크, 울산 현대는 임직원 임금 일부를 '선수단 운영'에 쓰겠다며 자진(?) 삭감으로 고통 분담에 나섰다.

익명을 원한 A구단 단장은 "상황이 유동적이라 휴가를 제대로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기사로 어느 구단이 휴가를 줬다는 것을 보고 부럽기도 했고 아쉬움도 있었다. 그렇지만, '서비스'업인 프로스포츠가 유동적인데 마냥 쉬기도 어려웠다.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2개월여 기간 동안 구단들은 어떤 업무에 열중했을까, 크게 나눠보면 두 가지다. 선수단 훈련 일정 조율과 구단 후원사들과의 관계 구축이다. 선수단은 구단의 중요 자산이고 후원사들은 재정 확보에 필수 축이기 때문이다.

클럽하우스가 없는 구단은 훈련장 구하기 바빴다. 선수단 운영과 홍보마케팅이라는 양대 축이 맞물려 돌아가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코로나19로 후원사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움직이기 나름이었다. 안산 그리너스는 직원들이 방역복을 입고 직접 소독에 나서며 지역사회 봉사와 후원사에 대한 진정성을 몸으로 보여줬다. 

▲ 전북 현대는 수원 삼성과 개막전 빈 관중석을 카드섹션과 응원 메시지로 메운다. ⓒ전북 현대

▲1년 이상 지속한 팬 빅데이터가 보이지 않아

하지만, 축적된 기록으로 움직이는 시대에 K리그는 여전히 몸으로 일하는 인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무관중 체제가 끝나 관중들이 제한적으로 오게 될 경우나 완전 개방으로 올 경우,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올 것인가에 대한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구단이 직접 돈을 들여 관람객 성향 조사라도 꾸준히 했다면 조금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만, 그런 구단이 있다는 소리는 프로축구라는 종목을 취재하면서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10여 년 전 성남 일화가 하도 오지 않는 관중으로 인해 성남시 내 관람객 성향을 파악했던 기억은 있다. 당시 자료는 온데간데없다.

만약 꾸준히 조사했다면 '보도자료'로 언론에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았을까. 일부 구단이 조사는 했지만, 외부로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있다. 혹시라도 지속해서 성향조사를 하는 구단이 있는데 없는 취급을 받고 있다면 이를 파고 들지 않았던 필자가 게으른 탓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

흥미롭게도 7일 한국프로스포츠협회는 프로축구를 포함한 '2019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조사'를 결과물로 내놓았다. 1천 페이지에 가까울 정도로 상세하게 결과물을 내놓았다. 관람객의 성, 연령별 특성부터 거주지 특성, 입장권 구매 경로 등 구단이 참고 가능한 사항들이 모두 나왔다.

이 조사는 5개월 동안 진행됐다. 프로축구는 8월19일부터 11월9일까지 구단별 평균 4.1회 조사를 진행했다, 1만1424명의 표본으로 사례를 분석했다. 한참 시즌 중이라는 점에서 조사 결과를 100%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파악 가능한 부분도 보였다.

그럼데도 구단들 스스로가 알아야 하는 부분들은 빠졌다. 예를 들어 거주지 특성은 광역시, 특별시 단위의 경우 구(區) 수준의 파악에 그친다. 동(洞) 단위까지 알게 되면 구단이 타켓 마케팅을 하기에 좋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수준의 데이터가 사실상 전무하다. 이를테면 '버스를 타고 경기장에 온 10대 팬은 핫도그를 많아 사 먹는 경향이 있다', '자차로 온 32세 팬은 라면 소비 경향이 뚜렷하다'는 식의 세분된 조사다. 

▲진짜 성적 지상주의 탈피는 세밀한 팬 성향 조사부터

구단의 독자적인 조사는 어려울까, 실무자인 B구단 관계자는 "2~3년 전에 관람객 성향 조사를 자세하게 하자는 계획을 세웠지만, 비용 문제가 컸다. 홈 경기를 17경기라고 치고 시즌 시작부터 끝까지 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경영진에서 '굳이 해서 뭐하나'하는 태도였다. 차라리 그 비용으로 선수단 수당이나 더 주고 승리를 유도해 관중을 오게 하는 것이 낫다는 말을 들었다"고 고백했다.

성적 지상주의가 여전히 1순위라는 뜻이다. 지자체, 모기업, 팬들이 뿌리는 돈 다수는 선수들이 거의 가져가는 비정상적인 상황이지만, 그 누구도 깊이 인식하지 않고 있다. 

K리그는 여전히 선수단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얼마 전 코로나19로 연봉, 수당 등 삭감 논의도 선수단이 주체였다. 선수도 구단(회사)에 고용된 근로자라는 점에서 당연히 공개적인 논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팬들을 위한다면서도 향후 어떻게 더 팬을 편하게 모실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 하다못해 정치권에서도 총선 등 선거를 치르면서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유세하며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말이다.

운이 좋게도 무관중 체제에서 K리그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비용을 절감한다면 K리그 내에서 순환되지 않는 곳에 지출하기보다 2백만 관중 달성을 위한 미래 계획 수립 뼈대에 투자하는 것이 어떨까. 시간은 충분하다. 코로나19와 같은 질병 대유행이 또 언제 올지 모르니까. 유의미한 비용 지출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를 바라며.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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