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의 관중석을 채운 것은 카드섹션이었다.
▲ 인천 서포터석 역시 카드섹션이 선수들을 맞았다.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쌀쌀한 전주월드컵경기장. K리그가 막을 올린 지 꼭 37년 되는 2020년 5월 8일 K리그의 2020시즌이 시작됐다.

K리그 개막은 전 세계적 '뉴스거리'였다. 코로나19로 축구가 모두 멈춰섰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신속한 대응 덕분에 스포츠계도 비교적 빠르게 '일상'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다. 비록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뉴 노멀' 시대.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의 삶이 '올드 노멀(오래된 정상)'이라면, 이제 새로운 정상 상태가 도래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시대의 K리그 개막전은 조금 쓸쓸했다. 코로나19로 팬 없이 경기를 치렀기 때문이다. 빈 관중석에 카드섹션과 응원 걸개가 걸리고, 몇몇 구단들은 현장 응원 녹음을 틀어가며 적막을 깨보려했다. 하지만 잃어버린 일상을 실감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텅 빈 경기장에서 뛰는 22명의 선수들을 보며 느낀 것은 일상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경기는 돌아왔으나 팬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골대를 스쳐가는 슈팅에 탄식이 흘러나오지 않고, 골을 넣어도 환호하는 이가 없다. 몇몇 구단은 녹음된 팬들의 음성을 틀며 경기장의 적막을 깨보려고 했지만, 현장에서 터져나오는 육성에 비교할 수가 없다. 팬들이 없는 축구는 우리가 알던 그것이 아니다.

팬들이 사라지고 나니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동국의 말에서도 평범했던 일상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경기를 뛰어보니 팬이 없는 축구는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팬들이 그리운 시간이었다. 아무리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려고 해도 같이 응원하고 호흡하는 팬들이 있어야 힘이 나서 경기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환호성이 없었기 때문일까.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개막전은 조금 느슨했다. 원정 팀 수원 삼성은 승점을 1점이라도 챙기겠다는 듯 공격보다 수비에 무게를 두고 나섰다. 홈 팀 전북 현대의 공격도 아직 발이 맞지 않았다. 지지부진하게 맞서던 경기는 후반 막판 세트피스에 터진 이동국의 골로 전북이 1-0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 이동국의 득점 직후. 함께 뛰어야 할 팬들이 없다.

내용상 화끈하지 않았던 개막전. 하지만 실망감 대신 오히려 익숙했던 일상이 떠올랐다. 우리가 사랑하는 축구가 언제나 화끈한 공격 축구로 난타전만 벌이던가. 모든 경기가 명승부가 될 순 없다. 전북처럼 단 한 번의 세트피스를 살려 승리를 따내는 경기도 있는 법이다. 울산 현대와 상주 상무의 경기처럼 한쪽이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경기도 나오고, 인천 유나이티드와 대구FC의 맞대결처럼 투지가 경기 결과를 만드는 때도 있다.

그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준 K리그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축구가 주는 즐거움을 새삼 떠올리게 해줬기 때문이다.

졸전에 분통을 터뜨리고, 한 골에 울고 웃고, 팽팽한 긴장감에 입술을 깨물고,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찬스에 머리를 감싸쥐는 것. 그리고 경기를 마친 뒤 내가 사랑하는 팀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경기 결과에 대한 반응까지가 축구 팬들의 즐거움이다.
그것이 우리가 축구를, 또 K리그를 즐기는 방식이었다. 

1라운드 마지막 경기였던 강원FC와 FC서울전은 올 K리그에 대한 기대감을 올려놓기에 충분했다. 경기 내용만으로 다음 경기를 기다리게 하는 축구의 힘을 느끼게 해줬다. 강원은 강원답게, 서울은 서울답게 싸웠다. 강원은 먼저 실점하고도 패스를 중심으로 한 스타일을 고수했고, 서울은 수비 조직력을 앞세워 강원을 멈춰세우려 했다. 강원이 3-1 역전승했고 조재완의 환상적인 발뒤꿈치 슛은 팬들을 들썩이게 했다. 우리가 기다렸던 K리그의 한 단면인 '멋진 경기'도 탄생했다.

개막 라운드를 지켜보기 위해 전주, 인천, 춘천의 경기장을 찾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전 세계적 재난 속에도 먼저 막을 올린 K리그에 느끼는 자부심, 팬들과 호흡하는 K리그의 일상에 대한 그리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돌아온 K리그를 향한 감사.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우리가 알고 즐겼던' K리그가 돌아올 날에 대한 기대감까지. 그리고 이런 여러 감정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감상. 'K리그가 우리 곁에 돌아와 행복하다.'

▲ 팬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눌 날을 기다리며, 강원FC의 개막전 승리 ⓒ강원FC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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