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승강제는 완벽하게 자리 잡을까 ⓒ대한축구협회

사자성어에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속에 뼈가 있다는 뜻이죠. 그러나 언중유골이 담긴 글에는 다소 딱딱하고 경직된 느낌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포티비뉴스는 조금 더 울림 있게 말을 던지는 '언중유향(言中有響)'이라는 사자성어를 통해 다양한 사안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말에서 울리는 소리가 조용하거나 크거나, 향(香)이 좋거나 나쁠 수도 있지만 말이죠.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한국 물류의 혈맥인 경부고속도로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현대건설 사장이던 1970년 7월 7일 서울-부산 구간을 완벽하게 연결하는 준공식으로 개통을 알렸다. 난관을 거듭한 공사 끝에 이뤄진 대역사였고 건설 노동자들의 피와 땀, 희생이 있어 가능했다는, 그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중요 전환점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중에서도 정 명예회장이 맡았던 당재터널(현 옥천터널) 공사는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지층이 암반이 아니라 절암토사(節岩土砂)라 터널을 뚫기 위한 발파작업을 하면 토사가 무너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 과정에서 9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중 공식적인 사망자가 77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희생이다.

경부고속도로 공사와 닮은 한국 축구 승강제 구축

정 명예회장은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어떻게든 도로를 이어야 도망가는 인부들을 붙잡을 수 있었다. 직접 공구를 들고 암반을 쳐내며 '리더란 이런 것이다'를 몸으로 보여줬다. 흑자가 요원한 상황에서 자존심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당재터널 공사는 정 명예회장의 조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야심 차게 계획한 '한국 축구 승강제' 추진 과정과 얼추 비슷한 면이 있다. 거의 다 이어 놓고 마무리 작업에 애를 먹는 것이 많이 닮았다. 

정 회장은 13일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준프로인 K3, 4리그의 출범을 알렸다. 아마추어인 K5~7리그까지 구축해 승강제의 틀은 얼추 맞췄다. 프로(K리그1, 2)-준프로(K3, 4리그)-아마추어(K5, 6, 7리그)의 틀을 잡은 궁극적인 목적은 유럽, 남미처럼 승강제를 통해 팬들의 보는 재미를 높이면서 지역민들의 유대감을 끌어내고 축구의 대중화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다. 구단 규모에 상관없이 축구가 승강제를 통해 대중화되면 더 큰 관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출범사에서 "한국축구는 지금껏 찬란한 성과를 쌓아왔지만 언제나 가슴 한편으로는 허전한 부분이 있었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 축구 인프라와 시스템 때문이다. 특히 성인 축구를 아우르는 디비전 시스템은 한국축구의 아픈 손가락이었다"라며 불완전한 승강제가 축구 산업 발전에 저해됐음을 고백했다.

영국 지역 8부 리그 출신 노동자 제이미 바디(레스터시티)를 만드는 것이 축구협회의 목표다. 정 회장은 "전문 선수부터 동호인까지 모두가 디비전 시스템이라는 큰 틀 속에서 공존하게 될 것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K3리그부터 K7리그까지는 협회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통합 승강제 연결이 가능하다. K3, 4리그 경우 지난해까지 운영됐던 실업축구 내셔널리그와 K3리그 베이직과 어드벤스에 신규 창단팀을 수준별로 섞어 층을 적절히 만들었다. K5~7리그가 잘 정착해 경쟁력을 만들면 뿌리는 더 튼튼해질 수 있다.

▲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K리그2와 K3리그 사이의 승강제를 꼭 해내야 하는 과제와 마주했다. ⓒ대한축구협회

당재터널 공사는 K리그2-K3리그 승강제, 성사 시 '축구 산업화 고속도로' 완성

가장 큰 고민은 프로인 K리그2(2부리그)와 K3리그 사이의 승강제 여부다. K리그1, 2와 K3리그의 수준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이 축구계 중론이다. FA컵 등 단기전에서 K3리그 팀이 종종 K리그1, 2팀을 이기기 때문이다. 지난해 내셔널리그였던 대전 코레일이 결승까지 올라 준우승했던 경험이 이를 대변한다.

문제는 행정이다. 아시아 축구연맹이나 축구협회가 요구하는 클럽 라이센스 규정에 적합한 수준으로 올라서야 한다. 실업축구 구단들이 K3리그 참가 과정에서 법인화에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부 규정으로 얻었던 혜택들이 사라지는 등 손해도 생겨 일부 구단 지도자나 선수들이 반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K3리그의 경우 2023년에는 20명의 연봉 계약 선수가 있어야 한다. K4리그는 5명 이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무국 인원도 10명 정도는 꾸려야 한다. 이는 K리그1~K7리그까지 완전한 승강제 구축이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김대업 축구협회 디비전팀장이 K리그2와 K3리그 사이 승강제 도입을 두고 "**년도"라고 특정하지 못했던 것은 이런 문제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K리그2와 K3리그 사이에 승강제를 도입한다면 K리그2 구단들의 심리적인 부담감도 털어줘야 한다. K리그1에 승강제를 도입한 뒤 시도민구단이 단골 강등팀으로 등장하면서 해체 우려가 컸지만, 기업구단까지 강등되면서 어느 정도 우려는 지워졌다. 

하지만, K리그2에서 K3리그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익명을 원한 K리그2 A구단 단장은 "프로부터 생활 축구까지 이어지는 승강제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예를 들어 기업구단이 K3리그로 강등되면 구단의 존립부터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다. 모기업의 지원이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기반이 약한 K3리그 팀들이 K리그2에서 버틸까. 자생 구조를 갖추기 전까지는 두 리그 사이의 승강제는 시기상조다"고 주장했다.

B구단 고위 관계자도 "시도민구만의 예를 들자면 지자체에서 예산 일부를 확보하는 구단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적어도 예산 확보 비율이 자체 70%-지자체 지원 30% 수준은 맞춰져야 한다. 선수들의 임금 인플레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마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K3리그 구단들이 프로화 구조를 갖추는 시간도 그만큼 필요하지 않나. 무조건 하자고 밀지 않았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라는 환경 변화, 완전한 승강제라는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승부사 기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로 각 구단은 자립화라는 숙제를 꼭 해결해야 한다. '축구의 산업화'를 위해서는 규모의 확대가 필요하지만, 언제까지 모기업이 사회공헌, 복지를 목적으로 지원한다는 보장도 없고 지자체가 추경(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국가적인 위기에서는 문화, 스포츠 예산이 가장 먼저 타격받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면 승강제라는 흥미로운 제도도 '백약이 무효'라는 말과 호응해야 할지 모른다. 

다시, 당재터널 공사 이야기로 돌아오면 정 명예회장은 공사 인력을 기존 2개 조에서 6개 조로 늘리고 일반 시멘트보다 20배나 빨리 굳고 비싼 조강(早强) 시멘트를 투입해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틀 전에 공기를 맞췄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정 명예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통한 결과였다. 큰 틀과 세부 사항 모두를 다 알고 도전한 결과였다.

정 회장에게도 완전한 승강제 구축은 한국 축구 수장으로 안고 있는 핵심 숙원 사업 종료와도 연결된다. 프로와 준프로라는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지 못하면 무늬만 승강제라는 오명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국가대표팀 경쟁력 강화,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 천안 조성, 축구협회 예산 절감 및 안정적인 후원사 확보, 국제 행정 경쟁력 강화 등 과제가 태산인데, 머리까지 더 복잡해졌다. 정 명예회장의 당재터널 공사처럼 물고 늘어져 끝을 봐야 할지도 모르는 정 회장이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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