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용품 리얼돌이 FC서울 팬들이 응원하는 북측 응원석을 점령했다. ⓒFC서울

사자성어에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속에 뼈가 있다는 뜻이죠. 그러나 언중유골이 담긴 글에는 다소 딱딱하고 경직된 느낌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포티비뉴스는 조금 더 울림 있게 말을 던지는 '언중유향(言中有響)'이라는 사자성어를 통해 다양한 사안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말에서 울리는 소리가 조용하거나 크거나, 향(香)이 좋거나 나쁠 수도 있지만 말이죠.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전 세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사태에서 좋은 시범 사례가 되고 싶었던 프로축구 K리그에 큰 상처가 났다.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동안 K리그가 갖고 있던 문제들이 응축 후 폭발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내 사무국에서 상벌위원회를 열고 FC서울에 1억 원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지난 17일 광주FC와 '하나원큐 K리그1 2020' 2라운드에서 팬들이 응원하는 관중석에 소위 성인용품 '리얼돌'을 응원 도구로 활용했다가 웃음거리가 됐다. 영국 BBC, 미국 ESPN 등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퍼지면서 망신살이 제대로 뻗쳤다.

프로연맹은 K리그의 명예 실추와 성 인지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어 제재금 1억 원 부과가 불가피했음을 강조했다. 제재금 1억 원은 2016년 심판 매수에 따른 승부 조작 파문을 일으켜 승점 9점 삭감과 1억 원 제재금을 부과받은 전북 현대 이후 가장 큰 금액이다. 사안이 승부 조작급으로 컸다는 뜻이다.

서울에 해당 업체를 소개한 프로연맹 직원도 3개월 감봉 징계로 '셀프 징계'가 가능할까에 대한 우려를 일단 지웠다. 서울도 이날 경찰 수사 의뢰와 더불어 해당 업무를 진행했던 직원들을 문책하는 등 대응 조치에 나섰다. 책임 통감과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렇지만, K리그에서 구단 운영이 가장 보수적이면서 사무국 조직이 프로연맹급인 서울이 일으킨 문제였다는 점에서 충격은 상당했다. 서울은 K리그1, 2 22개 구단 중 가장 많은 마케팅 인력으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업체에 대한 검증이 부실했다. '프리미엄 마네킹' 제작 업체라는 주장을 믿었지만, 실상은 성인용품 리얼돌 홍보였다. 섹스돌과 차이는 있다고는 하나 대중이 모두 즐기는 곳에 설치된 '성인용품'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는 프로연맹의 긴급 프리핑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이종권 홍보팀장 겸 법무팀장은 외부 업체 검증이 취약하다는 비판에 대해 "구단이나 프로연맹 모두 인력의 한계라던가 다양한 제약 요소 속에서 업무를 진행한다. 안타까운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단순히 중징계 처벌을 넘어 종합적으로 수준을 높여야 한다. 제도는 연맹과 구단들이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로연맹은 사무국 인력 구성에서 허리를 이루는, 경력이 일천한 직원이 타 스포츠 단체로 이직하거나 아예 조직을 떠나 비정상적인 구조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소리를 수없이 듣고 있음에도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K리그 구단들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7월 이사회에서 신생 구단 창단 시 사무국 최소 인원을 20명으로 정했다. 기존 구단들이 열악한 구조로 일했던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최근 2~3년 사이 지속적인 채용으로 숫자상으로는 20명이 넘는 구단이 많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일들을 뜯어보면 구멍가게보다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A구단은 내부 권력 싸움으로 경륜 있는 인물들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서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고 B구단은 '옥상옥'이라는 지적에도 업무 중복 직책을 유지 중이다. C구단은 한 직원당 8~10가지 업무를 수행한다. '프로'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상업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지 않고 모기업이나 지자체가 지원하는 예산만 집행했다는 이야기다.  

▲ 팬들이 늘 거치하는 응원 현수막 뒤에 자리 잡은 리얼돌 인형들 ⓒFC서울

익명을 원한 한 구단 관계자는 "사실 서울의 사례를 보고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구단에는 제품 홍보, 마케팅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사기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라며 "이번 문제를 좀 더 자세히 뜯어보면 먼저 개막전을 치른 구단 이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자리 잡은 것 같다. 꼭 요란하게 할 필요가 없는데 결국 제재금 1억이라는 거액과 마케팅을 맞바꾼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다른 구단 관계자도 "프로연맹부터 팀장이 타 부서장을 겸직하는 마당에 구단이라도 다를 게 있나. 사무국 구성에서 선수단 업무에 힘이 쏠리니 홍보, 마케팅은 성격이 다른데도 겸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나마 조직이 큰 서울도 여자 배구단(GS칼텍스) 업무를 같이 보지 않나. 이번 일은 프로연맹이나 구단에 인력 구성을 제대로 해 운영하라는 경고 메시지로 들린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7월 유벤투스(이탈리아) 내한 사태와 선이 닿아있다. 당시 K리그 올스타와 경기를 주선했던 더 페스타는 스포츠마케팅 등 관련 업무에서 거의 들어보지 못했던 업체였지만, 프로연맹은 이들의 언변과 주장을 믿고 일을 추진했다가 큰 비용과 시간을 소모했다. 유벤투스만 실속을 찾았지 K리그는 도매급으로 비판만 얻었다.  

리얼돌 사태도 마찬가지다. 리얼돌의 존재를 몰랐던 이들까지도 그 성격을 알게 됐다. K리그가 리얼돌의 홍보 창구로 전락한 셈이다. 서울 시내에서 성인용품점을 운영하는 한 업자는 "우리는 사진만 봐도 일반 마네킹, 리얼돌, 섹스돌을 구분한다. 축구장에 리얼돌이 있었던 것 자체에 많이 놀랐다"라며 "해당 업자는 홍보 제대로 했다고 웃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우리는 더 불편한 시선을 받게 됐다"라고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다시 고치게' 된 만큼 조직 구조에 대해 다시 들여다보고 바로 세워야 하는 K리그다.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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