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즌 초반 SK 마운드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박종훈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에이스처럼 잘 던졌고, 또 에이스처럼 의연했다. 26일 잠실 SK-두산전의 승자는 두산이었지만, 박종훈(29·SK)의 존재감은 환히 빛났다. 박종훈이 점차 ‘에이스’라는 단어에 다가가고 있음을 확인한 한 판이었을지 모른다.

박종훈은 26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 등판, 7이닝 동안 2피안타 1볼넷 8탈삼진 2실점(1자책점) 호투로 중후반까지 팀의 3-1 리드를 이끌었다. 팀 불펜이 8회 무너지며 승리조건은 날아갔지만, 박종훈의 투구 내용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올 시즌 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타선 중 하나인 두산과 맞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대결을 펼쳤다.

완벽한 완급조절, 그리고 자신의 제구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피칭이었다. 두산 타자들의 박종훈의 공을 제대로 맞히지 못한 채 8개의 삼진을 당했다. 경기 후 상대 선수인 최주환이 “다른 것보다 박종훈의 공이 좋았다. 상대지만 인정은 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런 박종훈은 시즌 4경기를 치른 현재 22이닝을 던지며 1승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하고 있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이 돋보인다. 3실점을 넘는 경기는 없었고, 모든 경기에서 기본인 5이닝 이상은 소화했다. 그리고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주목할 만한 부분이 보인다. 팀의 부진한 성적에 가렸지만, 박종훈은 확실히 진화 조짐을 확인할 수 있다.

일단 구종 다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박종훈은 올해 투심패스트볼을 더 많이 던지고 있다. 그리고 체인지업 구사 비율도 높였다. 자연히 주 구종이었던 포심패스트볼과 커브의 구사율이 떨어졌다. “박종훈은 커브다”라고 생각했던 타자들의 머리가 복잡해진다. 2S 상황에서 체인지업을 던지는 것은 지난해까지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올해는 그런 광경이 줄곧 보인다. 

구종 내 완급조절도 좋아졌다. 박종훈의 포심패스트볼 평균구속은 지난해 132.6㎞에서 올해 134.2㎞로 빨라졌다. 그렇다고 모든 공을 빠르게 던지는 것은 아니다. 간혹 하나씩 강하게 던지면서 구속 차이로 상대의 타이밍을 뺏는다. 여기에 130㎞대 초반의 투심패스트볼 구사 비율까지 높아졌다. 같은 패스트볼 계통이라고 해도 130㎞에서 140㎞까지 구속을 종잡을 수 없다.

여기에 제구도 조금씩 나아진다. 투구폼 상 제구 문제는 박종훈의 숙명이다. 매년 볼넷과 몸에 맞는 공이 많았다. 10승 투수로 발돋움한 2017년 이후에도 매년 9이닝당 볼넷 개수가 3개를 넘겼다. 하지만 올해는 2.86개다. 그만큼 피안타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올해 초반은 인플레이타구타율(BABIP)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축에 속한다. 피안타율은 서서히 떨어질 가능성이 있고, 박종훈은 대체적으로 피장타율이 낮은 선수다.

구종 다변화에 완급 조절, 그리고 제구가 되면서 자연히 탈삼진 개수가 확 늘어났다. 박종훈은 탈삼진이 많은 유형의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올해는 9이닝당 탈삼진 개수가 10.23개에 이른다. 리그에서 10개 이상을 기록 중인 5명의 선발 투수 중 하나다. 탈삼진이 항상 답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삼진을 빼앗을 수 있는 능력은 위기에서 도움이 된다. 

성품은 이미 에이스다. 자존심과 너그러움을 동시에 갖췄다. 박종훈은 26일 경기에서 8회 자신의 승리조건이 날아갈 위기에도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동료들을 격려했다. 승리조건이 날아간 순간에도 웃으며 괜찮다고 박수를 쳤다. 이날 경기에 앞서서도 자신의 승리보다는 팀이 처음으로 연승을 하며 분위기를 바꾸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어느덧 투수진의 리더로 존재감이 커졌다. 

SK 관계자들은 “김광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 박종훈이나 문승원이 그 공백을 나눠 메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시즌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박종훈은 경기장 안팎에서 지금까지 그 목표를 향해 무난하게 진군하고 있다. 팀이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난다면, 박종훈의 가치도 재평가할 날이 올 것이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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