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스 카터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빈스 카터(43, 애틀랜타 호크스)는 1998년 미국프로농구(NBA)에 데뷔했다.

강렬했다. 이내 티브이에서 꼭 봐야할(must-see) 스타플레이어로 자리했다. 변방이었던 토론토 랩터스를 전국구 인기 팀으로 만들었다.

말 그대로 날라다녔다. 직장폐쇄로 50경기만 치러진 데뷔 첫해 전 경기에 나서 평균 18.3점 5.7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챙겼다. 신인왕은 수순이었다.

눈부셨다. 이후 23년간 꾸준히 코트를 지켰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클러치 포인트'는 27일(한국 시간) "파이널 우승 반지가 없음에도 카터는 명예의 전당급 커리어를 남겼다"고 칭찬했다.

생존왕이다. 2020년 현재 NBA 최고령이다. 통산 1541경기를 뛰었다. 무릎을 다쳐 특장점이던 운동능력을 잃은 뒤에도 확률 높은 미드 레인지 게임과 노련한 오프 볼 무브로 살아남았다.

커리어 평균 성적은 16.7득점 4.3리바운드 3.1어시스트.

전성기 구간을 살피면 입이 쩍 벌어진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카터는 NBA 최고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 기간 토론토, 뉴저지 네츠 유니폼을 입고 571경기 평균 24.6점을 쓸어 담았다. 

플레이오프에서 활약도 쏠쏠했다. 통산 42경기에 나서 평균 25.9점을 몰아쳤다.

사실 카터를 떠올릴 때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 아니, 숫자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위대한 임팩트를 남긴 선수가 카터였다.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덩커로 꼽힌다. 2000년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 보인 5개 덩크는 지금도 농구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명장면.

클러치 포인트는 "농구사에서 절대 잊혀지지 않을 기억 중 하나다. 2000년 이후 덩크 콘테스트에 나선 덩커들은 필연적으로 카터와 비교를 피할 수 없었다. 그만큼 엄청났던 퍼포먼스"라고 평가했다.

카터 사촌이자 토론토 시절 동료였던 트레이시 맥그레이디(41)도 "그의 아크로바틱한 덩크는 팀 연습 때 늘 보던 거였다. 그래도 놀라웠다. 특히 2000년에 선보인 덩크는 옆에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카터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덩커"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에어 캐나다(Air Canada) 빈새니티(Vinsanity) 하프 맨 하프 어매이징(Half Man Half Amazing) 같은 수식어는 모두 이즈음 탄생했다. 카터는 당시 넥스트 조던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었다.

인기와 실력(카터는 데뷔 시즌 28.8%에 그쳤던 외곽슛 성공률을 이듬해 40.3%까지 끌어올렸다. 언론은 커리어 초기 3점슛이 약했던 마이클 조던이 꾸준히 성공률을 향상시킨 '곡선'과 닮았다며 이 사실을 집중 보도했다), 여기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3학년을 마치고 1라운드에 지명된 공통 분모까지.

카터를 스탯과 경력만으론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이유다.

클러치 포인트는 과감히 주장했다. 구체적인 박스권을 제시했다. 70위권이 온당하다고 강조했다.

"카터를 언급하지 않고 NBA와 NBA 역사를 논할 수 없다고 믿는 이라면, 그를 올타임 베스트 가운데 한 명으로 분류하는 건 지극히 타당하다. 우리는 카터를 70위권에 올려놔야 한다. NBA 위대한 100인을 꼽을 때 그를 최대 70위까지는 올려놔야 온당한 평가라 말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물론 우승 반지 0개는 커리어 결점이다. 하지만 이 사실이 카터가 농구라는 게임에 일조한 기여도를 깎아내리는 데 적용될 순 없다. 그는 당대 가장 역동적인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익사이팅(exciting)이라는 단어에 그보다 더 어울리는 선수는 (단언컨대) 없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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