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진웅.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영화 '사라진 시간'(감독 정진영, 제작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스릴러를 연상시키는 제목과 분위기를 의식한 걸까. 시작과 함께, 흑백의 화면 속에서 한 사내(조진웅)가 거리를 걷는다. 어딘지 복잡한 표정이다. 그러나 곧 컬러로 전환한 영화는 기대와 조금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래 내용에는 영화 '사라진 시간'의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골 마을에 들어와 살던 교사 부부가 화재로 숨진다. 현장이 수상하다. 수사에 나선 형사 형구(조진웅)는 쭈뼜거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의심을 품는다. 결국 다 실토받았지만, 사람들이 권하는 독주를 잔뜩 마시곤 취해버린다. 

다음날 아침, 형구는 죽은 교사 부부의 집에서 깨어난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간밤의 메모는 그대로인데 집도, 아내도, 자식도 사라졌다. 형사 형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이가 되었다. 지독한 숙취일까, 깨지 않는 꿈일까, 완벽한 빙의일까, 아니면 그저 당혹스런 현실인 것일까.

▲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33년차 베테랑 배우이기도 한 신인감독 정진영이 내놓은 첫 영화는 낯설음으로 가득하다. 대중영화의 형식과 미덕을 의도적으로 빗겨간 결과물이다. 이야기는 물론 장르도 화법도 종잡기 어렵다.

배수빈 차수연이 그린 교사 부부의 이야기는 멜로·로코·호러를 오가고, 극이 시작한지 30분이 돼서야 제대로 등장한 주인공 조진웅과 함께 펼쳐진 블랙코미디 범죄물은 수사가 마무리될 즈음 혼돈에 빠진다. 진짜 조진웅같은 조진웅이 나를 찾아달라 절규하는 한편 정해균이 능숙하게 '정해균'을 연기한다. 서사는 물론 장르, 연기까지 분절적이다. 헛웃음나는 대목도 있다. 허우적거리는 주인공과 함께, 보는 이도 비슷한 기분이 된다. 그런데 묘한 몰입감에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다. 설명되지 않은 수많은 은유가 생생한 현실에 묻어있다. 

독특한 관심과 낯선 형식 중심에 오롯이 자리한 건 각본을 직접 쓴 '배우감독' 정진영이다. 늘 혼잣말하는 주인공을 두고서 감독은 주변 인물의 입을 빌려 슬쩍 가이드만 준다. "제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려드릴까요?" "소설 쓰지 말고, 보이는 것만 따라가." 

영화감독을 먼저 꿈꿨으나 33년째 배우로 살고있는 정진영이 단 한편의 영화를 만든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달음에 써내려간 작품이 '사라진 시간'이라 한다. 시나리오의 첫 제목은 카펜터스의 명곡 제목이기도 한 '클로즈 투 유'(Close to you). 한국어로는 '너에게 가까이' 정도로 풀이됐겠으나, 동명 노래를 삽입곡으로 쓰려던 계획이 불발되면서 최종 제목은 되지 못했다.

▲ 감독 정진영(맨 오른쪽).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수많은 천만영화로 대중과 호흡했던 그가 작가로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던 것 같다. '사라진 시간'엔 직업 배우로서 그가 늘 느꼈을 아이러니, 이해할 수 없는 타인에게 무한히 다가가며 작아졌던 '나'에 대한 길고 긴 현재진행형 고민이 가득하다. 당신을 알고싶던 '나'는 그리하여 '당신'이 되었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감독은 이 영화의 장르를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 사이에 놓인 연약한 사람의 슬픈 코미디"라고 했다.

모호한 질문만을 던친 채, '사라진 시간'은 답을 보는 이의 몫으로 남겨둔다. 직접 고백했듯 감독은 애초에 답을 낼 생각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이 낯설고도 흥미로운 영화를 보는 건 그 답 없는 방랑에 잠시 동참하는 일일 테다.

6월 1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5분.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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