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마커스 래시포드(23)는 영국 정부에 편지를 보내 취약계층 아동을 위한 식사 파우처 지원 중단을 막았다. 보리스 존슨 총리도 래시포드의 문제 의식에 화답해 매주 15파운드(2만2천 원)의 식사 바우처의 지원이 이어진다. ⓒ연합뉴스/AP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마커스 래시포드(23)는 영국 정부에 편지를 보내 취약계층 아동을 위한 식사 파우처 지원 중단을 막았다. 보리스 존슨 총리도 래시포드의 문제 의식에 화답해 매주 15파운드(2만2천 원)의 식사 바우처의 지원이 이어진다. ⓒ연합뉴스/AP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는 모든 분야를 바꿔 놓고 있다. 다시는 코로나19 이전 시대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다른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무관중 경기를 일상처럼 받아들여야 하면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프로 구단들은 당장 존립의 위기에 처했다. 유럽의 주요 축구 명문 구단들이 씀씀이를 줄여가며 내실 다지기에 돌입한 것이 그렇다.

'한시적'이지만, 직원들이 연고지 마트에 가서 일하며 구단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있다. 구단들은 홈구장을 코로나19 치료 센터나 다른 용도로 활용해 지역 사회에 구단이 '문화 콘텐츠'가 아닌 '사회적 콘텐츠'라는 것을 팬들에게 분명히 보이고 있다. 그런 구단을 위해 팬들은 무관중 경기의 고통을 감내하며 언젠가는 관전하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모든 구단의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다. 김민재(베이징 궈안)를 영입하겠다며 의지를 보인 FC포르투(포르투갈)는 선수 사고팔기로 이윤을 내는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의 대표적인 셀링클럽이다. 물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CL)이나 유로파리그(EL) 단골인 그들도 김민재 영입을 원하면서도 '후원사'나 '파트너십'을 맺을 국내 기업이 같이 오기를 바랄 정도로 재정적으로 좋지는 않지만, 연고지 공헌 활동은 빼놓지 않고 있다.  

코로나19와 더불어 미국에서 백인 경찰관에 목이 눌려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서 촉발된 인종차별 철폐 운동에 목소리를 내는 선수들도 늘고 있다. 경기 전 무릎을 꿇는 행동으로 저항 의식을 고취하고 골을 넣고 세리머니로 흑인을 비롯한 유색 인종이 더는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반응한 미국축구협회(USSF)의 경우 애국가 연주 시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의무화한 규정을 철폐하고 국가 제창을 하지 않는 선수 역시 징계하지 않기로 규정을 손보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FA는 "어떠한 종류의 인종차별도 허용하지 않겠다"라며 "국제축구평의회(IFAB)가 정하는 축구 규칙을 상식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라고 인종차별 행위와 관련한 세리머니나 발언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자세를 보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세계와 맞물려 돌아가는 우리 축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라이언킹' 이동국(41, 전북 현대)도 골을 넣고 무릎을 꿇는 세리머니를 보여주며 자신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 시절 인종차별을 당했던 기억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스포츠 안에서 차별적인 행위가 더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나마 이동국의 경우 산전수전 다 겪어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다. 하지만, 저연차나 상대적으로 덜 유명세인 선수들은 다르다. 그래서 보통 선수 협의체들이 이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FIFPro(국제축구선수협회)와 뜻을 같이 한다는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는 지난 4월 "선수 동의 없는 연봉삭감은 안 된다"는 입장문을 내며 저연봉자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구단이나 한국프로축구연맹과 대화해 접점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리그 경기가 줄어 연봉 삭감으로 고통을 감내하는 유럽 축구의 분위기가 무작정 국내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리그가 시작된 뒤 이런 분위기는 사실상 사라졌다. 프로연맹 관계자는 "선수협이 K리거 전체를 대표하는 단체는 아니다. 구단과 대화를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A구단 단장도 익명을 전제로 "지금은 리그가 진행 중이라 선수들에게 임금 삭감으로 고통을 분담하는 이야기는 꺼내기도 어렵다. 다른 구단 직원들은 급여 일부를 계속 반납한다고 들었는데. (선수들의) 계약서를 갈아엎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다만, 수당에 대한 재합의가 있으면 모를까"라며 여운을 남겼다.

물론 무작정 고통을 나누자고 할 수는 없다. 그동안 일부 선수들은 구단을 통해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프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면 단순한 공헌 활동을 넘어 사회적 책임 의식을 앞세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 지난해 열렸던 K리그 주장단 간담회. 뭉치면 충분히 사회적 책무가 가능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

대표적으로 마커스 래시포드(2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렇다. 래시포드는 영국 정부에 편지를 보내 취약계층 아동에게 지역 상점에서 사용 가능한 '식사 바우처' 지원 중단을 재고해 달라고 요구했다. 래시포드도 어려운 시절을 겪어봤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결국, 래시포드의 호소는 보리스 존슨(56) 총리의 화답으로 이어졌다. 방학 중에도 매주 15파운드(2만2천 원)의 식사 바우처를 결식아동에게 지원하기로 했다.

래시포드는 이미 한 자선단체와 영국 전역 취약계층의 식사를 위한 모금 활동에 나섰고 2천만 파운드(303억 원)을 모으는데 공헌했다. 맨체스터시에서는 특별 표창장을 수여 했고 라이벌 구단 맨체스터 시티도 래시포드의 뜻에 찬사를 보내며 동참 의사를 밝혔다.

우리 역시 문화는 다르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축구계로만 시선을 좁혀도 당장 대한축구협회는 유소년 대회 개최 허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중, 고교 대회의 경우 자율적인 통제가 가능해 몇몇 대회가 준비에 들어갔지만, 유, 초등 연령대 대회는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대회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나서야 하는데 참가팀 전원이 받으려면 억대의 비용이 든다. 팀들이 부담하기에는 정말 큰 비용이다. 2~3개 대회에 나선다고 가정하면 더 그렇다. A매치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축구협회 역시 1백억 원 수준의 손실이 예상, 쉽게 움직이기도 어렵다. 

선수들 대부분은 방학에 치르는 지역 대회에 나선다. 자연스럽게 숙소 생활을 하게 되는데 모텔을 기준으로 한 방에 3~4명이 잠드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프로 산하 유스팀의 경우 지역 대회 참가 시 펜션 생활을 하지만, 이 역시 집단생활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코로나19 집단 감염 위협을 안고 대회를 치러야 한다.

반년 가까이 실전을 치르지 못하는 축구 유망주들의 성장이 막히는 것은 한국 축구에도 큰 손해다.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기관과 수시로 소통하고 있는 홍명보(51) 대한축구협회 전무는 "정말 고민이다. 어린 선수들이 뛰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국가 정책도 따라야 한다. 대회를 치르지 못하면 이들의 경험과 성장에 문제가 생길 텐데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올해 프로축구는 27경기로 축소, 일주일에 한 경기를 치른다. 주중 경기는 16~17일에 치러 여유가 있는 편이다. 물론 FA컵이 있고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잔여 경기가 있지만, 모두가 빡빡하게 뛰는 것은 아니다. 래시포드 수준은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할 시간은 충분해 보인다.

어린 후배들을 위한, 제도 변화를 위한, 한국 축구 미래를 위한 선배들의 간절한 목소리와 행동이 그리운 코로나19 시대다.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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