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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빈스 카터…1990년대가 저물다

네이버구독_201006 박대현 기자 pdh@spotvnews.co.kr 2020년 06월 26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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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스 카터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1990년대 마지막 드래프티가 작별을 알렸다.

'에어 캐나다' 빈스 카터(43)가 코트를 떠났다. 26일(한국 시간)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예정된 수순을 밟으려 한다. 올해가 내 마지막 시즌이라 여기며 뛰었다. 그래서 말한다. 나는 공식적으로 프로 선수 생활을 끝냈다"며 은퇴를 발표했다.

1998년 미국프로농구(NBA) 드래프트 전체 5순위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지명된 카터는 곧장 대학 동문 앤트완 재미슨(44)과 유니폼을 맞바꿨다. 창단 3년차 막내 구단이던 토론토 랩터스에 NBA 첫 둥지를 틀었다.

토톤토에서 출발한 여정은 이후 22년간 이어졌다. 뉴저지와 댈러스, 올랜도, 피닉스, 멤피스, 새크라멘토를 거쳐 애틀랜타까지 가닿았다.

이 기간 1541경기 출전했다. 로버트 패리시(1611경기)와 카림 압둘-자바(1560경기)에 이어 이 부문 역대 3위에 제 이름을 올렸다.

삼점 라인 바깥에서 2290개에 이르는 슛을 쏘아 올렸다. 외곽슛 성공 수 역대 6위. 이십년 넘게 차곡차곡 쌓은 25728점도 눈부시다. 통산 19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 빈스 카터
선수를 평가하는 기준은 크게 두 갈래다. 커리어와 임팩트. 커리어가 묵묵한 축적이라면 임팩트는 강렬한 인상이다.

커리어가 부족해도 한두 시즌 거대한 임팩트를 남겨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스포트라이트와 거리가 먼 현역을 보내다 은퇴 시점에 다다르니 위대한 선수였음을 깨치게 하는 유형이 있다.

카터는 둘 다였다. 축적과 인상을 동시에 거머쥔 레전드 스윙맨이었다. 

데뷔하자마자 농구 변방 토론토를 일약 전국구 인기 팀으로 만들었다.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직장폐쇄로 50경기만 치러진 데뷔 첫해 전 경기에 나서 평균 18.3점 5.7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챙겼다.

숫자도 훌륭했지만 그보다 훨씬 세찬 인상을 남겼다. 카터는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덩커로 꼽힌다. 특히 2000년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 보인 5개 덩크는 지금도 농구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명장면.

에어 캐나다(Air Canada) 빈새니티(Vinsanity) 하프 맨 하프 어매이징(Half Man Half Amazing) 같은 수식어는 모두 이즈음 탄생했다. 당시 넥스트 마이클 조던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 카터였다.

과장이 아니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카터는 NBA 최고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 기간 토론토, 뉴저지 네츠 유니폼을 입고 571경기 평균 24.6점을 쓸어 담았다.

새가슴도 아녔다. 플레이오프(PO)에서 활약이 쏠쏠했다. 전성기 구간 통산 42경기에 나서 평균 25.9점을 몰아쳤다.

나이가 들고 무릎을 다친 뒤 내리막을 탔다. 특장점이던 운동능력을 아예 잃었다. 

카터의 비상함은 여기서부터 발현된다. 그는 여느 스타플레이어와 달랐다. 위기를 외면하지 않았다. 오늘을 직시했고 내일을 긍정하며 돌파구를 모색했다.

24살 때처럼 번개 같은 퍼스트 스텝과 폭발적인 덩크를 선보이진 못했다. 대신 확률 높은 미드 레인지 게임과 노련한 오프 볼 무브를 장착했다.

카터 통산 성적을 살필 때 가장 놀라운 지표가 3점슛이다. 상술했듯 카터는 이 부문 역대 6위에 오른 뛰어난 점프 슈터다.

하지만 데뷔 시즌은 그렇지 못했다. 이 해 외곽슛 성공률이 28.8%에 그쳤다. 그러던 게 차기 시즌 40.3%까지 치솟았다. 언론은 이 점을 대단히 매력적으로 여겼다. 당시 조던 은퇴 뒤 새 얼굴 발굴에 혈안이던 기자들은 포스트 MJ 시대 선두주자 타이틀을 카터에게 떠넘기다시피 했다.

대학 선배인 조던도 커리어 초기 외곽슛이 약했다. 하나 꾸준히 성공률을 향상시키며 약점을 지우는 데 성공했다.

언론은 카터를 '자기 관리 투철한' 조던과 견주기 시작했다. 성실성에 기반한 성장 곡선이 흡사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밖에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3학년을 마치고 드래프트를 신청한 점, 놀라운 체공력과 폭발적인 덩크, 파트너가 스몰포워드라는 점(스코티 피펜-트레이시 맥그레이디)과 비인기 구단을 자기 스타성만으로 전미 방송 중계 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 등을 집중 보도했다.

▲ 빈스 카터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스포츠넷'은 "캐나다는 카터라는 농구인에게 큰 빚을 졌다. (카터는) 토론토가 NBA 입성 뒤 첫 성공을 맛보게 해 준 아이콘이었다. 아울러 셀 수 없이 많은 캐나다 젊은이에게 영감을 선물한 위대한 스타였다"면서 "중력 한계를 모르는 덩크와 대단히 매력적인 성품(magnetic personality)을 동시에 갖춘, 흔치 않은 별이었다. 카터를 통해 트리스탄 톰슨, 앤드루 위긴스, 코리 조셉 등 수많은 캐나다 영건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NBA 최초로 4개 디케이드(decade·10년)를 경험한 인물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와 2020년대까지. 명예의 전당 1차 투표에서 (곧바로) 헌액될 수 있을진 미지수이나 (종내) 입성은 자명한 미래"라고 덧붙였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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