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박현철 기자] 그동안 선인들의 이야기로 과거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보존한 기록 누적 산물이 아니라면 과거를 오롯이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프로야구 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여자 야구 등에서 폭넓게 기록과 성과를 쌓고 기념하지 않는다면 저변 확대도 요원하다. 일본 야구의 랜드마크 도쿄돔 야구 박물관을 보며 '과연 한국 야구도 이렇게 과거를 기록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일 일본 도쿄돔에서 한국 프리미어12 대표팀이 미국과 결승전을 하루 앞두고 자율훈련을 했던 날. 훈련 취재가 끝난 뒤 도쿄돔 내 야구 박물관을 찾았다. 2013년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라운드 취재 이후 2년 만의 방문. 프리미어12를 주도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박물관 입구부터 프리미어12와 관련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두 번이나 한국 타선을 돌려세우며 13이닝 무실점으로 대회 최고 투수가 된 오타니 쇼헤이(닛폰햄)의 대표팀 유니폼이 전시된 것은 물론 2015시즌 종료에 맞춰 일본 센트럴리그-퍼시픽리그 12구단 각 팀을 대표했던 선수들의 유니폼 및 글러브, 스파이크 등을 이곳에서 볼 수 있었다. 삼성에서 2년 간 한신의 '돌부처'로 활약한 오승환의 글러브는 젊은 에이스 후지나미 신타로의 사인 유니폼 밑에 전시되어 오승환의 위상을 알 수 있게 했다.
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치고 데뷔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돌아온 구로다 히로키를 기념해 마에다 겐타와 함께 찍은 '히로시마 신구 에이스' 화보는 물론 요미우리에서 오릭스로 돌아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게 된 다니 요시토모의 은퇴 경기 포스터 등 많은 자료를 볼 수 있었다. 2년 전과 달리 일본 야구는 재빠르게 현재 야구의 변화상을 포착하고 젊은 팬들이 '이 선수가 이 정도의 선수구나'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도록 전시한 것이 눈에 띄었다.
역대 15번의 퍼펙트게임 기록과 그날 경기 기록지는 물론 역대 대표팀 관련 사진과 유니폼을 전시한 것은 당연했다. 어린이들을 위해 시뮬레이션 타석을 설치, 노리모토 다카히로(라쿠텐), 후지나미, 노미 아쓰시(이상 한신) 등의 공을 타격할 수 있는 체험의 장은 물론 풍부한 자료의 도서관을 구축해 이 곳을 찾는 야구 팬들이 과거의 기록과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유니폼과 경식 야구공, 방망이가 어떤 과정과 어떤 재료로 만들어지는 지도 전시한 곳이 바로 도쿄돔 야구 박물관이다.
더욱 주목할 만 한 것은 단순히 일본 프로야구의 빛만 전시한 것이 아니라는 점. 구단 변천사로 과거 팀의 소멸과 합병 등 아픈 기억들도 표로 잘 정리해 놓았고 일본 아마추어 야구의 시작과 일본 야구의 뿌리. 그리고 여자 야구의 현재과 관련한 코너도 각각 박물관 한 켠을 장식했다. 도쿄돔 야구 박물관은 일본 야구의 찬란한 순간 뿐만 아니라 관심이 필요한 곳, 팬들이 미처 챙겨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알 수 있도록 배려했다. 야구 팬으로서 이 곳을 찾았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야구 그 이상의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에도 야구 박물관이 있다. 이광환 서울대 감독이 1995년 사재를 털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야구 박물관을 건립했고 서귀포시에 정식으로 한국 야구 명예의 전당이 세워지자 이 감독은 자신의 박물관에 있던 3,000점의 소장품을 기증했다. 그러나 이는 이 감독의 열정과 지방자치단체-지역 야구팬들의 지원 속 이뤄진 것이다. 다른 곳의 야구 기념관 등은 아직 그 형태 등이 미비하거나 없는 수준이다.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프로야구 이전 아마추어 야구에 대한 과거 기록이 전무하다는 것. 1982년 태동한 KBO리그는 연감 등을 통해 과거의 대기록 등을 알 수 있으나 아마추어 야구는 과거 기록을 찾을 수 없다. 한 야구 관계자는 “고교야구 전성기였던 1970년대 기록이 공식으로 기록되어 보존된 것이 없다”라며 안타까워 했다. 과거 동대문운동장 시절 이 곳을 찾던 야구팬 '동대문 할아버지'가 자신이 보는 모든 경기를 기록지로 작성해 보관했을 뿐. 대한야구협회 등에서 이를 세심하게 보존한 흔적 등은 찾을 수 없다. 이 감독이 개탄하며 스스로 야구 박물관을 세웠던 첫 번째 이유다.
2000년대 후반 이 감독이나 강병철 전 롯데 감독을 현장에서 만났을 때 과거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두 감독들의 소속팀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옛날 야구의 기억을 전해 들을 수 있던 이유도 있었으나 20~30년차 이상의 베테랑 야구 기자가 아닌 이상 옛날 아마추어 야구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오랜 현장 경험을 갖춘 베테랑 감독들에게 묻고 듣는 것. 먼 훗날 이들이 소천할 경우. 한국 야구의 과거는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나 옛 신문 기사 아카이브로 추론하는 것 밖에 없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고 즐기는 야구가 어떻게 발전하고 꽃 피웠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그동안 쌓인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 찾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야구는 이 부분에서 엄청난 맹점을 지녔다. 기록과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증거물이 있더라도 그곳은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편이다. 우리는 후세에 물려줄 수 있는 자랑스러운 기록과 업적을 보존할 준비가 되었는가. 도쿄돔 야구 박물관을 둘러보며 들었던 가장 큰 생각이다.
[사진] 도쿄돔 야구 박물관 전시물. ⓒ 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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