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해진. 제공|마운틴무브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다 해피엔딩이어야 할 건 없잖아요."

표정이며 말투며, 박해진(37)은 '가열찬' 모드였다. 박해진의 말대로라면 '가열찬'이 박해진 모드였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는 자신의 회사를 차린 '가열찬'이 사업이 망한 뒤 다시 경력직 부장에 지원하고, 이만식이 다시 시니어 인턴에 지원하며 다시 만나는 것으로 막을 내

렸다. 마냥 행복하지 않은, 하지만 이전보다는 조금 행복해진 회사원 이야기를 두고 박해진은 "열린 결말"이라며 "깔끔하게 끝이 났다"고 평했다.

박해진으로선 사회초년생 인턴부터 한 팀을 이끄는 부장까지, 위계가 꽉 잡힌 직장생활을 간접 경험한 셈. 그는 "쉽지는 않았다"며 "파트너가 아니라 누군가 제 위에 있고, 아래에 누군가 있다는 게 숨이 턱하니 막히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했다.

"인턴부터 부장까지, 양쪽 다 공감이 돼요. 연기하기는 과거 (인턴) 모습이 더 편하기는 했죠. 지질하고 '쭈글'한 연기가 더 맞나봐요. 부장으로 돌아와서 보니 힘들다는 걸 느꼈어요.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고 싶은 말 하는 것도 아니고, 부하직원 무서워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좋은 상사가 되려니 그것도 쉽지 않고요. 한번 터뜨리면 시원하기도 하니, '이맛에 꼰대가 되나' 하는 공감도 되더라고요."

▲ 박해진. 제공|마운틴무브먼트
그는 '꼰대'가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 말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꼰대인턴'을 두고 "우리에게 필요한 '꼰대'의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스스로도 '꼰대'의 어느 경계선에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단다. 촬영현장만 해도, 드라마를 찍으면 끼니를 거른 밤샘촬영이 기본으로 여겨지지 않았나. 박해진은 "속으로 '세상 좋아졌다' 한다"며 웃었다.

박해진은 촬영하며 어딘가 솔직해진 것 같다고도 했다. "속은 그렇지 않은데 아닌 척 연기해야 하는 할 때가 있다"며 "하지만 가열찬을 연기하면서 표현이 좀 더 솔직해진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가열찬'은 스스로 "연기하며 제 것을 많이 갖다 썼다"고 할 만큼 박해진과 와 닮은 캐릭터이기도 했다. 약간 지질하고, 일을 떠맡고, 혼잣말하는 모습까지 닮아 있단다.

"누나가 항상 그래요. 뭘 그렇게 궁시렁대냐고.(웃음) 제가 맘에 들지 않아도 얘기를 잘 못하는 성격이에요. 잘 시키지도 못하고, 성에 안 차니까 내가 하면 되지 그러고 살아요."

▲ 박해진. 제공|마운틴무브먼트
유쾌한 작품도 여럿 경험했지만 전면에 코미디를 내세운 작품은 박해진에게도 '꼰대인턴'이 처음이다. 박해진은 중국의 '희극지왕' 주성치의 연기와 연출을 좋아한다며 "주체가 돼서 직접 웃겨보려 하기보다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열심히 상황에 빠져 뻔뻔하게 연기했다"고 했다.

1회부터 화제를 폭발시킨 인도라면 CF는 박해진의 각오가 제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황금빛 화려한 의상에 수염을 그린 채 '발리우드' 영화 특유의 흥겨운 안무를 뻔뻔히 소화해내 웃음과 충격을 동시에 안겼다. 기가막힌 후반작업으로 퀄리티를 높여준 CG팀에게 "이게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이냐"고 감사 섞인 농담을 던진 박해진이지만, 그 역시도 1분도 채 안되는 장면을 위해 수차례 안무를 연습하고 한파 속에 얇은 옷 차림으로 꼬박 12시간을 촬영에 매달렸던 터.

"우려한 것보다 좋아해 주셔서 조금 더 가도 되겠구나, 조금 더 망가져도 되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이건 망가지는 것도 아니고 시작이죠. 망가지는 데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 박해진. 제공|마운틴무브먼트
한 사무실을 쓰며 붙어지낸 '꼰대인턴' 팀은 또 각별하게 다가오나보다. 마지막 촬영이 끝날 땐 선배 김응수의 한 마디에 그만 왈칵 눈물을 쏟았다. 박해진은 "원래 안 그랬다"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한지은은 물론이고 고건한, 노종현, 박아인, 홍승범 등 마케팅 영업팀원들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촉망되는 후배들"이라고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장점와 특징을 하나하나 짚다 말고 "다른 데 가서 잘 했으면 좋겠고"를 연발하기도 했다.

"하필 상석에 앉아가지고, 뿔뿔이 흩어질텐데 다들 잘 하겠지. 부장의 마음으로 걱정하게 돼요."

그 중에서도 '꼰대인턴' 이만식 역의 김응수를 빼놓을 수 없다. 박해진은 '타짜'의 곽철용 캐릭터로 십수년만에 재조명된 이만식과 드라마 내내 아웅다웅 특급 브로맨스를 뽐냈다. 현장은 더 살가웠다. 실제로는 '꼰대'와 거리가 먼 선배인데다, 40년 가까이를 연기한 대선배다보니 되려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는 데신 성큼 다가가게 됐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김응수가 보낸 꽃사진도 받았다.

"몇 달을 아침마다 꽃사진을 받았어요. 주옥같은 멘트도 함께 해 주시고. 이젠 아침에 꽃이 안 오면 섭섭하더라고요. 오늘도 왔어요.(웃음)

선배님 유행어가 '어, 좋아좋아'예요. 늘 '어, 좋아좋아'라고 말해주세요. 귀에 맴돌다보니 저희도 어느 순간 따라하게 되더라고요. 좋아도 더 좋고, 마치 좋지 않아도 좋은 것 같고 힘이 됐어요."

▲ 박해진. 제공|마운틴무브먼트
작품을 마친 직후라 이제는 휴식의 시간이다. 박해진은 그러나 이전과는 다르게 이 시간을 보내려 한다고 했다.

"예전에는 쉴 때 항상 바빴어요. 관리받고 운동하고 뭔가 배울 수도 있고, 계속 채우기 급급했어요. 지금 와서 보면 무슨 소용이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게 주어진 꿀같은 쉬는 시간인데, 사실 꿀 빨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잖아요. 나는 왜 이 시간마저 나를 혹사시키고 있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침형 인간이라 해가 떠 있을 때 자는 게 뭔가 아깝고, 하루종일 하나도 안 하는 게 이해도 안되고 허무했거든요. 요즘엔 그럴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내려놓고 쉬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연기도, 휴식도 변화가 오는 시기." 박해진이 지금의 자신에 대해 한 말이다. 그의 차기작은 스릴러 웹툰이 원작인 드라마 '크라임 퍼즐'. 그는 또 어떻게 달라져 돌아올지 궁금해진다.

▲ 박해진. 제공|마운틴무브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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