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축구팬들에게는 각자 기억하는 축구대표팀의 명경기가 있습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나선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박창선이 넣은 골부터 모두가 잊지 못하는 2002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안정환의 헤더 골든골, 2010 남아공월드컵 그리스전에서 '해버지'로 불리는 박지성이 수비수의 볼을 가로채 골을 넣고 보여준 풍자 돌리기 세리머니까지 다양합니다. 스포티비뉴스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난 3월부터 멈춘 축구대표팀의 과거 경기들을 회상하며, 직접 뛰었던 이들의 무용담(?)을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기억속의 명경기, 내가 좋아했던 전설의 회상까지 한 번에 느껴보시죠.

▲ 18년 전 태극전사들, 이제는 지도자, 행정가, 예능인으로

[스포티비뉴스=천안, 박주성 기자 이성필 기자] 2002 월드컵의 영웅들은 이제 선수는 아니지만 지도자, 행정가, 예능인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2002 월드컵 주장을 맡았던 홍명보는 감독을 거쳐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로 행정에 힘을 쓰고 있다. 김태영을 포함해 황선홍, 최용수, 김남일, 설기현 등 많은 영웅들이 이제는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한국 축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판타지 스타 안정환은 예능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김태영 감독은 뜨거운 6월을 함께 보낸 동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각자의 방향이 서로 다 다르죠. 홍 전무님은 행정을 하고, (박)지성이도 공부하고, (이)영표도 그렇습니다. 지도자 말고 다른 길을 가고 있어요. 현재 후배들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축구를 했다고 해서 꼭 지도자를 해야 된다? 전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지도자가 아닌 나머지 부분들도 하길 원해요. 본인이 정말 지도자를 하고 싶다면 노력해서 하면 되는데 지도자도 선수처럼 피라미드 구조에요. 팀 수는 정해져있고 지도자 수는 많죠. 지도자들이 실업자가 많은 이유입니다. 전 무조건 지도자보다는 축구에 관련된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많은 2002 영웅들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이제 막 감독의 세계로 들어온 김태영 감독은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금까지 최고는 홍 전무님이죠. 청소년부터 시작해서 올림픽, 월드컵까지 지도자 커리어를 쌓았어요. 두 번째는 황선홍 감독입니다. K리그에서 FA컵부터 해서 성적을 잘 냈어요. 마지막에 조금 상황이 그랬지만, 사람이 마냥 좋을 때만 있는 건 아니에요. 때에 따라서 주춤할 때도 있죠. 그렇게 2강 체제에서 김남일이 치고 올라오고 있어요. 최용수는 지금 올라가다가 주춤하고 있고. 안정환이 방송을 접고 들어온다면 흥행 바람은 몰고 올 수 있을 것 같네요. 지도자를 할지 모르겠지만 복귀한다면 고생 좀 해야죠.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에요. 방송하면서 느꼈던 어려움을 또 겪을 거에요. 방송은 참 즐겨 보고 있습니다. 본인도 처음에 4주만 버티자고 했는데 벌써 1주년이 됐네요. (안)정환이는 이제 방송인이죠.”

2002년 당시 선수들 외에도 여전히 우리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2002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던 박항서 수석 코치다.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을 연결했던 박항서 감독은 이제 베트남의 히딩크로 불릴 만큼 베트남 축구를 급격히 성장시켰다. 김태영 감독은 베트남에서 영웅이 된 박항서 감독을 이야기하면서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했다.

“인생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몰라요. 박항서 선생님은 이 팀, 저 팀 다녔지만 그 팀에 항상 충실했어요. 그래서 좋은 기회가 오고 행운이 온 것 같아요. 게을렀다면 그런 상황이 오지 않을 거에요. 열정적이고 부지런해서 그런 기회와 행운이 왔다고 생각해요. 박항서 선생님한테 베트남 스타일이니까 한국 오지 말고 거기 쭉 있으라고 했어요. 완전히 영웅이 됐죠.”

▲ ‘불굴의 사나이’ 유상철은 누구보다 강하다

김태영 감독은 처음 유상철 감독의 췌장암 투병 소식을 들었을 때 앞이 깜깜해 질 정도로 깜짝 놀랐다. 유상철 감독이 누구보다 건강하고 밝았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지만 김태영 감독은 이제 유상철 감독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

“처음에 저, 이운재, 윤정환 이렇게 세 명이 있어요. 아침이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눈앞이 깜깜해졌죠. 정말 멀쩡했던 친구가 갑자기? 뒤통수를 딱 맞은 것 같았어요. 아무 이야기가 없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됐지 하면서 생각해보니 지도자 하면서 되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스트레스가 지도자를 잡습니다. 그 전부터 조진호 감독을 비롯해 여러 지도자들이 운명을 달리하는 모습을 봤어요. 다들 운동을 했지만 이른 나이에 떠나는 모습을 보니 스트레스를 최대한 안 받게 해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장에 있는 우리 지도자들은 매우 스트레스 받고 있어요. 성적 하나면 상관없는데 그 외적인 것들이 스트레스를 받게 하죠. 그렇다보니 그런 지병들이 생기고 운명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최근 유상철 감독은 안정환이 감독으로 있는 한 축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오랜만에 밝은 모습을 보여줬다. 많은 사람들은 유상철 감독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며 그의 쾌유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김태영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컨디션이 좋을 때 촬영했다고 들었어요. 항암 치료하면 정말 힘들 거에요. 혼란스럽죠. 어떤 사람들은 병마와 싸울 때 사람들을 만나고 자주 움직이는 게 더 에너지가 생긴다고 해요. (유)상철이도 최대한 그렇게 생활하려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애쓰는 것 같아요. 운동을 했기 때문에 정신력이 좋아서 잘 버텨낼 거에요. 그때 방송 보고 ‘너 살쪘다?’고 했더니 잘 먹어서 살이 좀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소고기 사준다고 한 번 내려오라고 했는데 시간 내서 온다고 하네요. 운동했던 사람들은 가만히 있고, 아무것도 안하면 더 바보가 됩니다. 그럴수록 더 움직이라고 말했어요. 정말 잘 버텨내야 합니다.”

▲ ‘지도자’ 김태영, 그가 생각하는, 되고 싶은 지도자

김태영 감독은 지난 2005년 전남에서 은퇴 후 관동대학교 코치를 하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U-20(20세 이하) 대표팀 코치, U-23(23세 이하) 대표팀 코치를 하면서 경험을 쌓았고, 2013년에는 A대표팀 코치도 했다. 이후 친정팀 전남에서 수석 코치를 하고 수원 삼성에서 코치 생활 후 천안에서 처음으로 감독이 됐다. 처음은 뭐든지 어렵다. 많은 경험을 한 김태영 감독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감독이고, 수장이니 힘듭니다. 계획대로 가면 좋은데 때에 따라서 힘든 부분이 있어요. 감수할 부분은 감수해야 해야죠. 천안이라는 팀이 갈수록 좋아진다고 믿습니다. 재정적으로나 모든 부분이 좋아지니까 팀을 더 강하고 좋은 팀으로 만들어야죠.”

김태영 감독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지도자는 역시 히딩크 감독이다. 한국인 지도자가 익숙했던 김태영 감독은 히딩크 감독 밑에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배우고 성장했다.

“그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죠. 외국인 감독이 와서 처음 경험해봤어요. 외국인은 자유로움 속에서 규율과 규칙이 있습니다. 저도 선수 때 히딩크 감독 오기 전에는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를 먹었는데 히딩크 감독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절대적이었어요. 그런 걸 먹고 훈련에 나간다?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 디저트를 아예 빼버렸어요. 밤에는 주스나 바나나가 전부였어요. 그 외 간식이 없었죠. 밤에 입이 심심해서 빵이나 과자가 먹고 싶잖아요? 그런데 히딩크 감독은 그런 건 돼지나 먹는 거라고 했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칼로리가 높다보니 그걸 훈련장에서 빼내려면 훈련 강도가 더 높아지잖아요? 히딩크 감독과 피지컬 코치는 선수들이 그런 걸 섭취하면 더 강도를 높여야 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 같았어요. 저도 지도자하면서 그런 부분을 배웠습니다. 선수들의 먹는 거에 대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또 홍명보 전무, 서정원 전 감독에게도 많은 걸 배웠어요. 스타일은 다르지만 선수들을 위하는 자체, 선수 위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선수들이 주연이고, 코칭스태프, 감독이 조연이에요. 주연 없이 뭘 만들 수는 없죠. 그래서 항상 선수들에게 다가가서 대화하고, 컨디션 확인하고, 그런 부분들을 살폈죠. 이런 분들이 지금 감독하는 입장에서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김태영 감독은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을까. 그의 답은 명쾌했다. 훌륭하고 멋진 지도자가 아니라 선수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지도자가 되길 원했다.

“훌륭한 지도자? 그것보다 선수들이 이 지도자와 함께 생활했을 때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인정받는 지도자? 솔직히 선수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지도자는 값어치가 없습니다. 선수들이 인정을 못하는데 어떻게 지도자를 하겠어요? 선수들이 인정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선수들에게 몇 미터의 움직임이 승부를 좌우한다고 자주 말합니다. 내 위치 선정에 하나 따라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죠. 그 부분을 선수들에게 자주 이야기해줍니다. 선수들이 인정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시작하면서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앞으로 채워가야죠.”

스포티비뉴스=천안, 박주성 기자 이성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