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2일 대한체육회를 찾아 최숙현 사망 사건에 관한 경위 보고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충격적인 가혹행위가 일어났다. 시간이 지나도 달라진 건 없었다.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 최숙현이 지난달 26일 부산 숙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3살의 어린 나이였다. 최숙현이 죽기 전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핸드폰 메시지는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였다.

지난해까지 경주시청 소속이던 최숙현은 감독과 팀 닥터, 일부 선수들에게 지속적으로 폭력과 정신적 괴롭힘을 당했다. 팀 닥터가 20분 넘게 뺨과 가슴, 배를 차고 체중감량에 실패하면 3일씩 굶기기도 했다. 빵 20만 원 어치를 강제로 먹이게 하거나 입에 담기 힘든 폭언을 하는 등 알려진 사례들만 보더라도 믿기 힘든 수준이다.

견디다 못한 최숙현은 경주시청을 나갔다. 운동을 접을 생각까지 했지만, 부산시체육회 철인3종 팀 박찬호 감독의 설득에 마음을 바꿨다. 올해 1월 부산시체육회로 팀을 옮겨 훈련을 이어갔다. 새로운 팀에서의 적응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부산시체육회 관계자는 "부산 팀 동료 선수들이 최숙현 선수가 경주시청에 있을 때보다 많이 밝아졌다고 얘기했다. 우리 팀에 와서는 잘 적응하고 별다른 문제없이 지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최숙현을 직접 부산시체육회로 데려온 박찬호 감독은 "(최)숙현이가 전 소속 팀에서 이렇게까지 심한 가혹행위를 당한 줄 몰랐다. 다만 심리적으로 마음의 상처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때문에 그 점을 치유해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우리 팀에 온지 한 달 만에 장난 치고 농담을 할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라며 최숙현이 팀을 옮기고 달라졌다고 밝혔다.

올해 2월 최숙현은 용기를 냈다. 자신이 당한 가혹행위를 세상에 알리고 폭력을 가한 자들의 징계를 바랐다. 2월 경주시청 감독과 팀 닥터, 일부 선수를 고소했고 4월에는 대한체육회와 대한철인3종협회에 신고 및 진정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최숙현의 바람과 달리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가해자들은 폭력 행위를 완강히 부인했다. 이 과정에서 최숙현은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린 최숙현의 지인은 "최숙현 선수가 가혹행위에 대해 정식으로 문제 제기 했지만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등 도움을 요청한 모든 공공기관과 책임 부서들이 이를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한 스포츠 관계자는 이번 최숙현 사건에 대해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일반적인 민원만 해도 사실 확인 과정을 거치고 성실히 조사한다. 최숙현 선수는 더군다나 폭행 건인데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해가 안 간다"고 안타까워했다.

1년 전에도 체육계는 폭력 문제로 시끄러웠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쇼트트랙 선수 심석희가 조재범 코치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이후 정부와 정치권, 체육계에선 한 목소리로 성폭력과 폭행 근절 대책을 내놨다.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은 "지도자들이 선수들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며 이를 무기로 부당한 행위를 자행하는 것을 뿌리 뽑도록 하겠다"라며 강력한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체육계 내 폭행문제는 여전했고 피해자가 신고까지 하며 진상조사를 촉구했지만 대응 기관은 빠르게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체육계 및 정부와 정치권 인사들은 명백한 진상조사와 폭행 관련자들의 엄중처벌을 약속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윤희 제2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특별조사단을 구성하면서 이번 사건에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와 문제가 드러난 관련자에 대해선 엄중 문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윤희 차관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사실규명을 확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당연한 얘기다. 한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간 가혹행위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가해자들의 징계는 빠르게 이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제2의 최숙현'같은 폭력 피해자가 나와선 안 된다. 지켜지지 않은 재발방지 약속은 필요없다.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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