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베스트 골키퍼 조현우 ⓒ대한축구협회

(편집자 주)축구팬들에게는 각자 기억하는 축구대표팀의 명경기가 있습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나선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박창선이 넣은 골부터 모두가 잊지 못하는 2002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안정환의 헤더 골든골, 2010 남아공월드컵 그리스전에서 '해버지'로 불리는 박지성이 수비수의 볼을 가로채 골을 넣고 보여준 풍자 돌리기 세리머니까지 다양합니다. 스포티비뉴스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난 3월부터 멈춘 축구대표팀의 과거 경기들을 회상하며, 직접 뛰었던 이들의 무용담(?)을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기억속의 명경기, 내가 좋아했던 전설의 회상까지 '나의 A-스토리'에서 한 번에 느껴보시죠.

[스포티비뉴스=울산, 박대성 기자] 조현우(28, 울산 현대)의 축구 인생은 2년 전에 180도 바뀌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선방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 경쟁 단골손님이 됐다.

러시아 월드컵이 끝나고, 무명의 반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국가대표에서 큰 두각을 보이지 않다가, 월드컵 직전 골키퍼 경쟁에 합류, 조별리그 3경기에 깜짝 선발 출전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 조현우의 국가대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의 이름을 국민에게 알린 2017년 평가전 반짝 선방쇼부터 눈물겹고 찬란했던 카잔의 기적까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얘기를 가슴 속에 품었을 것이다. 2년 전이라면, 한참 독일전을 준비했을 지난달 24일 장맛비로 우중충한 날씨에 조현우와 만났다.


▲ 조현우 ⓒ대한축구협회

▲ "청소년 대표 팀에 있었지만, 이름 없는 선수였습니다"

조현우는 2010년 7월 26일 첫 붉은 유니폼을 입었다. 아세안 축구연맹(AFF) 20세 이하(U-20) 챔피언십, 뒤이어 23세 이하(U-23) 대표 팀, 2013 아시아 축구연맹(AFC) 22세 이하(U-22) 챔피언십에 차출됐다.

청소년 대표팀부터 경력을 쌓았으니, 아예 무명은 아닌 셈이다.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격이다. 마주 앉은 첫 자리에서 “무명에서 대표팀 깜짝 발탁으로 알려졌는데, 이 정도면 단계를 밟지 않았나요”라며 너스레를 떨자 “아니에요. 전 청소년 대표 팀에서 한 게 없어요. 무명이 맞아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첫 대표팀 발탁은 2015년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이었다. 당시 김승규의 군사 훈련 입소 공백을 메울 대체 선수였는데, K리그 챌린지(현 K리그2) 소속이라 파격적이었다. ‘챌린지 골키퍼 깜짝 발탁’이란 제목이 언론을 수놓았다. 

“당시에 대구가 K리그 챌린지에 있었다. 전혀 소집 명단에 들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 이름이 올라갔다. K리그 챌린지 최초라는 기사를 봤던 것 같다. 정말 믿기지 않았다. 차상광 골키퍼 코치님을 포함한 모두가 좋게 봐주신 것 같다.”

골키퍼 포지션 특성상 깜짝 발탁이 선발 출전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조현우도 골키퍼 장갑을 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2부 리거 조현우에게 국가대표 첫 발탁과 훈련은 축구인생 반환점이 됐다.

“그때 권순태, 김진현 선수가 다 있었다. 내가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건 없었다. ‘어차피 경기에 나가기는 어렵잖아,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훈련했다. 막상 부딪히니까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생각보다 어렵진 않겠다는 그런 생각. 지금보다 어렸으니 패기도 있었다.” 


▲ 조현우는 2017년 일본 도쿄에서 열렸던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2차전, 3차전에 출전해 선방쇼를 했다 ⓒ대한축구협회

▲ 생애 첫 한일전, 일본 심장에서 나를 알리고 싶었다

2017년 11월. 조현우의 국가대표 인생이 바뀌는 해였다. 11월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세르비아와 평가전에서 생애 첫 A대표팀 골키퍼 장갑을 꼈다. 전 국민이 세르비아 프리킥을 긴 팔로 막은 장면에 환호했다. 화려한 선방쇼로 얻은 ‘대구 데 헤아’는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그날은 아내의 생일이었다. 생일 선물로 데뷔전을 주면 안 되냐는 농담을 했는데 진짜 뛰었다. 당시에 김승규가 부상이었다. 김진현이 뛸 줄 알았는데 내가 선택됐다. 신태용 감독님과 김해운 코치님이 ‘하던대로 해’라고 말씀하시더라. 그래서 리그처럼 했다. 선방이 화제였는데,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었다. 리그에서 항상 했던건데 더 알려져 개인적으로 기뻤다.”

데뷔전 부담은 없었을까. 대부분 이런 질문에 “긴장도 되고 초조했죠”라는 답이 돌아오기 마련이다. 조현우는 달랐다. 슬며시 미소짓더니 “너무 재밌었다. 즐기자고 생각했다. 부담은 크게 없었다. 오히려 한번 막으니까 ‘할 수 있겠는데’라는 자신이 생겼다”라고 답했다.

그해 12월, 일본 도쿄에서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아축구연맹 선수권대회)이 열렸다. 세르비아전 슈퍼세이브 골키퍼가 안 뽑힐 이유는 없었다. 최종 골키퍼 명단은 김진현, 조현우, 김동준이었다. 1번 골키퍼로 불렸던 김승규가 발탁됐지만,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무한경쟁 신호탄이었다.

대표팀 경험이 미숙해 중국과 1차전 출전을 예상했다. 당시 도쿄에서 만났던 조현우도 “한국 대표로 정말 잘 할 자신이 있다. 팬분들이 대표팀 경기를 많이 기대하실텐데, 선발로 출전한다면 무실점으로 이기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김진현에게 골키퍼 장갑이 주어졌다. 3년이 지난 뒤, 다시 그날을 물었는데 “나름대로 중국전을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1차전은 중요했다. 경기장도 일본이고 경험 많은 골키퍼를 선택했던 것 같다. 다만 뛴다면 자신 있었다. 그렇게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라고 털어놨다.

기다림은 북한전과 한일전 선발로 맺어졌다. E-1 챔피언십 최종전은 일본 심장 도쿄에서 열렸다. 대회 최초 2연패와 한일전 7년 무승 징크스 탈출이 걸렸던 만큼, 모든 관심이 쏠렸다. 대표팀 신입생 조현우 얼굴에도 부담 섞인 긴장이 흘렀다.

그라운드 위에 올라서자 긴장은 설레임으로 바뀌었다. 생애 첫 한일전에 존재감을 알리고 싶었다. 전반전 페널티킥으로 끌려갔지만, 후반전에 경기를 뒤집었다. 일본 공격은 조현우의 선방에 갈 길을 잃었다. 한국 대표팀의 산책 세리머니에 일본 관중까지 침묵했다. 전광판은 4-1 대역전승을 비췄고 2연패와 징크스 탈출에 성공했다.

“관중이 상당히 많았다. 한일전이란 부담감은 있었지만, 반대로 정말 재밌었다. 엄청난 관중 앞에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뛴다는 건 영광이었다. 이기고 싶었다. 일본 사람들에게 조현우 이름 석 자를 알리고 싶었다. 한국 골키퍼가 잘한다는 것을 뇌리에 심어주고 싶었다. 돌아보면 잘 마무리했던 것 같다.”

▲ 최종전 한일전 승리와 대회 2연패 달성 뒤, 장현수, 이재성, 김신욱, 조현우(왼쪽부터)가 2017년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개인상을 수상했다 ⓒ대한축구협회


<②편에 계속…>


스포티비뉴스=울산, 박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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