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 조현우는 FIFA 랭킹 1위 독일을 상대로도 '인생 선방쇼'를 했다
▲ 조현우가 독일의 슈팅을 막고 있다

(편집자 주)축구팬들에게는 각자 기억하는 축구대표팀의 명경기가 있습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나선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박창선이 넣은 골부터 모두가 잊지 못하는 2002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안정환의 헤더 골든골, 2010 남아공월드컵 그리스전에서 '해버지'로 불리는 박지성이 수비수의 볼을 가로채 골을 넣고 보여준 풍자 돌리기 세리머니까지 다양합니다. 스포티비뉴스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난 3월부터 멈춘 축구대표팀의 과거 경기들을 회상하며, 직접 뛰었던 이들의 무용담(?)을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기억속의 명경기, 내가 좋아했던 전설의 회상까지 한 번에 느껴보시죠.

<①에서 계속…>

▲ 골키퍼 무한경쟁, 내가 어떻게 월드컵에 갈 수 있겠어?

[스포티비뉴스=울산, 박대성 기자] 조현우는 세르비아 평가전과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출전으로 골키퍼 주전 경쟁에 합류했다. 러시아 월드컵 최종 명단 발표까지 남은 시간은 5개월. 존재감을 더 보여줘야 했다.

동아시안컵이 끝나고 만난 자리에서 "결과를 보여줘서 만족한다. 1월 대표 팀 전지훈련을 착실하게 하겠다. 자신 있다. 쉽게 물러나지 않겠다. 내 이름을 더 각인시키고 싶다"며 공개적으로 골키퍼 경쟁을 자신했다. 늘 부담 없이 즐기면서 최선을 다하는 조현우였지만, 막상 발표날이 다가오자 체념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월드컵 최종 명단 합류를 생각하지 못했다. 아내와 이야기하면서도 '일단은 기다려보겠지만, 내가 어떻게 월드컵에 갈 수 있겠어'라고 말했다. 명단이 나오기 전날에는 밤부터 잠을 설치기도 했다."

2018년 5월 14일을 잊지 못했다. 신태용 감독 손에 들린 종이에 월드컵 최종 23인이 있었다. 김승규, 김진현에 이어 조현우 이름이 서울시청 다목적홀을 메웠다. 조현우는 "정말로 뽑히니까 기분이 좋았다. 연락도 많이 왔다"며 체념에서 설렘으로 바뀌었던 그 날을 또렷이 기억했다.

엔트리 합류에 만족했다. 월드컵 출전은 기대도 안 했다. 대표 팀 경험이 많은 김승규가 골키퍼 장갑을 낄 거로 생각했다. 최종 명단에 포함된 만큼, 리그에서 하던 대로 준비하자고 마음먹었다. 조현우는 "(월드컵 준비 기간은) 매일매일 재밌었다. 훈련 때도 즐기면서 막았다. 평생 꿈꿔왔던 무대에 갔다는 것만으로도 설렜다"고 말했다.
▲ 조현우가 신태용호 소집 훈련에서 몸을 풀고 있다 ⓒ한희재 기자

▲ 독일전요? 아내가 쫄지 말래서, K리그처럼 했어요

월드컵 출전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조현우도 사람이었다. 만약 꿈의 무대를 밟을 수 있다면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스웨덴전 하루 전까지 선발 윤곽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보통은 이틀 전에 명단이 나온다. 미리 조직력을 맞추고, 상대 공략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서다. 그런데 아무런 말이 없었다. 조현우를 포함한 골키퍼 3명은 스웨덴전 대비 최종 훈련까지 조마조마했다. "어떤 말이라도 해줘야 준비를 할 텐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전날 밤 11시에 베일이 벗겨졌다. 훈련을 끝내고 호텔 침대에 누웠는데, 예상을 뒤엎는 일이 일어났다. 조현우가 스웨덴전 골키퍼를 끼게 됐다. 명단 발표 뒤에 김승규는 "현우야, 나가서 한국 골키퍼의 저력을 보여줘"라며 북돋웠다. 훈련장에서 경쟁자였지만, 든든한 대표 팀 동료였다.

"터널에서 봤을 때 유럽 선수들이 엄청나게 큰 느낌이었다. 그런데 몇 번 부딪혀보니까, '별거 아닌데, 나가면 다 잡을 수 있겠는데, 리그보다 더 재밌게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K리그처럼 했다. 스웨덴전도 멕시코전도 마찬가지였다. 아쉽게 졌지만…."

유럽과 북중미 팀 경험은 11월부터 6월까지 7개월이 전부였다. 하지만 조현우에게 경험은 문제가 아니었다. 특유의 자신감으로 스웨덴과 멕시코 공격을 막았다. 페널티 킥이 아쉬웠지만 영국 공영방송 ‘BBC' 선정,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맨오브더매치(MOM)에 뽑혔다. 나중에야 해외 언론 소식을 들었는데 월드컵에 집중하려고 외부 소식을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FIFA 랭킹 1위 독일전은 정말 기대하지 않았다. 멕시코전까지 2연패를 했으니, 이번에는 김승규에게 골키퍼 장갑이 갈 거라고 생각했다. 김해운 골키퍼 코치가 조현우를 불렀을 때, "고생했다. 다음 경기는 승규나 진현이가 나가게 될 거야"라고 예상했는데 빗나갔다. 김해운 코치에게 나온 말은 "독일전까지 유종의 미를 잘 거둬라"였다. 

"예상하지 않았던 독일전 선발이었다. 정말 긴장이 됐다. 부담도 밀려왔다. 항상 즐기려고 노력했고 매번 그렇게 준비했는데 그때는 달랐다.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독일을 상대로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야 하지. 2-0으로 이겨야 16강에 갈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 조현우(왼쪽)와 김승규(오른쪽)가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 독일전 대비 훈련을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수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을 때, "(독일이라고) 쫄지마. 하던 대로 해.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해" 수화기 너머 아내의 짧은 말이 정신을 깨웠다. 천둥 같은 한 마디에 부담과 긴장까지 내려갔다. 잘 해냈으니 독일전까지 즐기자고 마음먹었다.

쉽지 않았다. 독일이 압도했다는 표현이 맞다. 반코트 경기를 했다. 조현우는 쏟아지는 슈팅에 "독일도 K리그랑 똑같다. 아무것도 아니다. 재밌게 하자"고 생각했다. 긴장이 풀리자 뜬 공도 손에 잡혔고, 레온 고레즈카의 헤더와 티모 베르너의 슈팅을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튕겨냈다. 

90분 동안 골이 없었다. 끝까지 버티자, 독일의 집중력이 무너졌다. "승점 1점이라도 얻고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 생각했던 찰나 김영권의 선제골이 들어갔다. "이제 1-0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내자"고 마음먹었는데 손흥민의 골이 또 들어갔다. 뒤에서 지켜보던 조현우는 "와, 이제 16강에서 브라질을 만나겠는데?"라며 설렜다.

행운의 여신은 한국에 웃지 않았다. 스웨덴이 멕시코에 지면서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영화 같은 카잔의 기적을 만들고도 녹아웃 스테이지에 나가지 못한 것이다. "더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탈락해서 속상했다"라는 말에서 2년 전 그때 심정이 와닿았다.

하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았다. 월드컵과 독일전은 조현우 축구 인생에 큰 반환점이었다. 유럽 진출을 꿈꾸게 했고, K리그 우승 경쟁 팀 이적도 가능하게 했다. 다만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유소년들의 꿈이었다.

"골키퍼를 준비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어요. 한국 골키퍼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잖아요. 그래서 뿌듯했어요. 충분히 유럽과 경쟁할 수 있고, 진출 가능성까지 있다는 걸 보여줬던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도 자신감이 생겼고요. 정말 좋은 대회였습니다. 앞으로 축구 인생에 큰 자양분이 될 것 같아요."

<③편에 계속…>

스포티비뉴스=울산, 박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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