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떨어지는 구속을 공의 움직임으로 만회하는 이건욱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SK 선발진의 주축으로 떠오른 이건욱(25)은 사실 구속과 레퍼토리만 보면 ‘리그 평균’에 가까운 선수다. 올 시즌 포심패스트볼 평균구속은 141.7㎞로 빠른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투심이나 커터와 같이 변형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도 아니다. 

포심패스트볼 비중이 60%에 가깝고, 슬라이더·체인지업의 레퍼토리도 크게 다를 건 없다. 커브는 요즘 들어 간간이 던지는 수준이다. 그러나 야구는 어쨌든 결과로 말한다. 이런 이건욱의 성적은 평범 그 이상이다. 시즌 10경기에서 3승2패 평균자책점 2.95를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조정평균자책점(ERA+)은 162.9에 이른다.

이건욱은 우타자를 상대로 슬라이더, 그리고 좌타자를 상대로는 체인지업을 잘 던진다. 하지만 그 근간에 깔린 것은 역시 140㎞대 초반의 포심패스트볼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타자들의 발전으로 150㎞를 던져도 맞아 나가는 요즘 세상이다. 그렇다고 이건욱의 투구폼이 아주 변칙적이거나, 혹은 라인의 각이 엄청나게 좋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 구속의 포심은 어떻게 버티고 있는 것일까.

선수 스스로도 느낌은 있다. 이건욱은 8일 인천 NC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승리를 거둔 뒤 “타자들이 밀려서 파울을 치면, ‘빠르지는 않지만 볼끝이 좋아서 파울을 만드는구나’는 패스트볼의 자신감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2군에 있을 때부터 “구속에 비해 볼끝이 좋다”는 평가를 수도 없이 들었던 이건욱이다. 이는 정교한 컴퓨터 측정 수치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실 분당회전수(RPM)이나 회전축에서 특별한 장점이 있는 포심은 아니다. SK 전력분석팀 관계자는 “이건욱의 포심 RPM은 리그 평균보다 살짝 높은 수준이다. 회전축은 우완 오버핸드의 평균”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직 무브먼트는 리그 평균보다 훨씬 높다. 공은 투수의 손을 떠난 순간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건욱은 평균보다 덜 떨어진다. 즉, 타자가 보기에는 끝까지 살아서 들어온다는 느낌을 준다. 

이건욱의 수직 무브먼트는 리그 평균보다 9.3㎝ 정도 더 높다. 올 시즌 강력한 패스트볼 구위를 자랑하고 있는 팀 선배 문승원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리그 TOP 10 수준의 수직 무브먼트다. 포수들이 이건욱에게 하이패스트볼 승부를 자주 요구하는 이유다. 보통 하이패스트볼은 강속구 투수에게 요구하기 마련인데 이건욱은 구속의 단점을 상쇄할 만한 무브먼트로 만회한다. 8일 리그 최고 수준의 NC 타자들조차도 여기에 많이 당했다.

유독 공의 밑부분을 때려 빗맞은 뜬공이 많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땅볼 유도형 투수는 아니지만 올 시즌 피홈런이 적은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또 다른 장점은 디셉션이다. 공을 숨겨서 나오기에 타자들이 타이밍을 잡기 까다롭다. 오랜 기간 지도하며 지금의 이건욱을 만든 김경태 퓨처스팀(2군) 투수코치는 “발을 드는 순간부터 스트라이드까지 양손이 분리가 되고, 발을 내딛는 시점까지 공이 몸통에 숨는다. 그렇게 공이 숨어있는 채로 던지는 포인트까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이 숨어서 올라오는 것도 있지만, 손이 분리된 후에 오른손이 밑에 오래 있다 앞발이 랜딩되는 순간 빠른 속도로 백스윙이 돼 릴리스포인트까지 간다. 그 백스윙 스피드 때문에 타자들이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공이 숨은 상태로 순식간에 넘어 오다보니 처음 보는 타자들은 자연히 공이 더 빠르다고 느낀다. 게다가 슬라이더의 수직 무브먼트(리그 11위)까지 좋으니 체감 구속은 더 빨라진다.

타자들도 점차 적응을 하겠지만, 이건욱이 그 적응 이상의 발전을 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건욱은 2년 이상의 공백(공익근무) 탓에 아직 투구 밸런스가 완벽하지 않다. 스스로도 “매 경기 바뀌는 것 같다”고 할 정도다. 제구가 나쁘지 않은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볼넷이 많은 이유다. 경기 체력도 선발 로테이션을 돌 정도로 다 올라왔다 보기는 어렵다. 어쩌면 실전 감각을 쌓기도 바쁜 시기인데 이 정도 활약을 해준다는 자체가 대단하다.

밸런스만 잡히면 공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을 겪는 선수는 아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우타자 바깥쪽에 꽂히는 공들은 일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건욱도 최근 커브를 던지는 등 레퍼토리 추가에 힘을 쏟고 있다. 새 외국인 투수가 영입되면 이건욱도 적절한 관리를 통해 차분하게 내년을 준비할 수 있다. 이건욱의 진짜 위력은 올해가 아닌, 1~2년 뒤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SK 마운드에 새 희망이 떴다.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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