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유, 청소년 축구에 아직도 일부 존재하는 수직적 지시에 따른 수동적인 문화는 잠재워질까. ⓒ대한축구협회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한국 축구는 세계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선진 제도 도입, 축구 유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최근 만난 한 축구계 인사는 2년 반 전인 겨울, 국내 한 일반 클럽팀(=프로 산하 팀이 아닌)의 요청으로 영국 유스팀과 연습 경기를 주선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해당 유스팀에서는 '선진 축구 문화를 체험'하면서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능력을 심어줄까'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부탁했다고 한다.

겨울 방학에 나갔으니 현지 문화와 관광지 체험은 선수들에게 크게 남았다고 한다. 물론 가장 기대했던 것은 현지 유스 클럽과의 연습 경기였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박지성(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활약으로 익숙한 영국 축구 저변과 뿌리를 경험할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십(2부리그), 하부 리그 유스팀을 바꿔가며 연습 경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경기 전과 하프타임, 양팀의 분위기가 180도로 달랐다고 한다. 이 인사는 "경기 전과 하프타임 분위기가 있지 않나.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봤다"라며 "우리팀은 감독이 '자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해'라는 전술 지시거나 '아무개는 전방에서 수비수만 달고 뛰어'라고 하더라. 반면 영국팀은 감독이 선수들에게 정말 간단하게 말을 하더라. '즐기고 놀라'는 '인조이(Enjoy)', '플레이(Play)'라는 단어 외에는 사용하지 않더라"라고 전했다.

전, 후반 20분씩 치른 연습 경기 결과는 영국팀의 5-1 완승이었다. 그 이후에도 귀국 전까지 4~5경기를 더 치렀고 마지막 경기에서야 국내 팀이 이겼다고 한다. 마지막 승리는 한국인 특유의 승부 근성이 발휘된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인사는 "경기 중 우리팀 감독은 계속 지시가 들어가더라. 선수들은 감독의 입만 보고 움직였다. 반면, 영국팀은 선수들끼리 알아서 움직이더라. 예전보다 한국 축구 환경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런 축구에 물들면 영국에 올 이유가 없다. 물론 모든 팀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창의성을 보겠다고 해외에 나와 놓고서 국내와 같은 환경을 만들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축구는 유소년 선수들의 자율성,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대한축구협회가 지난해부터 8인제 축구에서 경기 도중 감독의 지시 행위를 금지했다. 경기 시작 전, 선수 교체, 하프타임, 코칭 타임(전, 후반 각 2분)에만 가능하다. 감독이 습관을 버리지 못해 말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상소리라도 하면 주의가 들어간다. 경기 중 선수들의 경기에 대한 칭찬, 격려만 가능하다.

조금이라도 자율성이 보장되니 선수들은 신나게 뛴다. 적어도 초등부까지는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 다수 나온다. 그런데 중, 고교로 가면 또 달라진다. 학원팀은 진학이 걸려 있고 프로 유스 산하 팀은 비교적 괜찮지만, 생존이라는 문제를 피하지 못하니 수동적으로 변한다. 지도자의 말이 곧 법이다. 학부모도 '우리 감독님 심기 보좌'에 나선다. 내 아들이 상급 학교에 가지 못하면, 입시에 영향을 끼치는 출전 시간이나 대회 입상에 실패하면 꼬이는 인생을 피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 ▲ 트라이애슬론 선수 최숙현 ⓒ고(故) 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수동적인 자세는 최근 감독과 선배의 가혹 행위로 인해 안타까운 선택을 한 고(故) 최숙현(22) 트라이애슬론 선수 사건과 맞닿아 있다. 감독의 말이 곧 법이고 선배에게 부당한 지시로 후배를 옥죄는 모습은 우리 체육 문화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증명하는 큰 사건이었다. 자신의 폭력을 부정하는 모습은 법리적인 문제를 떠나 충격적이었다. 녹취가 있고 정황이 있어도 당장의 명예가 중요했다면 분명 오판에 가깝다. 선수들이 돈을 내고 고용한, 팀 닥터라고 불렀던 운동처방사의 무소불위 행동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우리 유, 청소년 축구 역시 최 선수의 안타까운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고 창의성, 자율성이 더 발휘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나마 대표팀부터 의무 체계가 잡혀 유, 청소년까지 일개 운동처방사가 군림하는 아마추어 스포츠의 나쁜 사례를 따라가지는 않고 있지만, 실수하면 감독이나 코치를 바라보며 걱정하는 모습에서 더 빠져나오게 할 노력이 필요하다.

축구협회 역시 '버스 운전면허'를 기본적으로 갖추고 선수들을 지도하는 지도자들의 환경 개선에 더 앞장서야 한다. 지도자가 배가 고프면 본전 생각을 하고 이는 선수나 가족에게 짐을 지우는 경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체계적인 지원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특히 지역 축구협회의 권한을 강화해 모든 것을 중앙에서 다루려는 생각도 버려야 곳곳에 뻗친 지도자들의 장, 단점을 더 명확히 볼 수 있다. 지역팀 상황을 제대로 감시 못 해서 또 비난의 중심에 선 대한체육회처럼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축구협회 한 고위 관계자는 "최숙현 선수 사건은 축구계에도 다시 한번 제도 보완이나 환경 개선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해외에서 축구를 배우는 선수 비중이 점점 더 늘어가는 추세에서 국내 환경과 섞일 부분을 정확하게 맞춰야 할 것 같다"라고 고민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깊은 문제 인식이 유, 청소년 전체 환경을 다시 보고 정비하는 효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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