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미쓰리는 알고 있다' 포스터. 출처|MBC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MBC 극본공모 당선작입니다!" MBC 4부작 미니 '미쓰리는 알고있다' 온라인 제발회를 지켜보다 혼자 헛웃음이 났습니다. 자랑스러운 소개에 격세지감과 아이러니가 동시에 몰려와서요. 'MBC 극본공모 당선작'의 힘이 최근 가장 강력하게 드러난 건 경쟁사 히트작 덕분이었습니다. SBS에서 대박난 '스토브리그' 말입니다.

전통의 방송사답게 MBC는 애정을 갖고 신인작가 발굴 육성을 위한 극본공모를 해 왔습니다. 놀랍게도, 고됐던 파업 기간에도 마찬가지로 이 일을 꾸준히 했습니다. 이신화 작가의 '스토브리그'가 그렇게 발굴됐습니다. 이미 알려진 대로 2016년 MBC 극본공모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그런데 드라마로 개발하며 편성까지 논의하던 단계에서 불발돼 작가가 짐을 쌌고, 결국 당선 3년 만에 경쟁사 SBS에서 대박을 쳤습니다. 야구를 몰라도 즐길 수 있는 쫀득한 웰메이드 드라마는 방송 내내 화제였습니다. 시청률이 20%에 육박했습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 포스터. 출처|SBS
파업 등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원석을 알아보고도 보석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아픈 실책이었습니다. 야구 이야기라서, 주 시청층이 안 좋아할 것 같아서…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퇴짜를 놨지 뭡니까. 파업 종료 후 드라마 라인업을 완전히 흔들어 다시 채우느라 동분서주했으면서도 엉뚱한 선택을 거듭한 MBC였습니다. 정작 손에 쥐고 있던 MBC 극본공모 당선작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겁니다.

지난달 종영한 SBS의 '굿캐스팅'도 비슷합니다. '굿캐스팅'은 당초 상대적 약체로 평가받았지만 두자릿수 시청률을 넘나들며 선방, 내내 동시간대 1위를 지킨 SBS의 효자 드라마입니다. 역시 2016년 MBC 극본공모 당선작이고요. 박지하 작가가 '미스캐스팅'이란 제목으로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MBC의 선택을 받지 못해 짐을 쌌고 이를 '굿캐스팅'으로 완성해냈습니다.

시청자는 이름값보다 결과물에 반응합니다. 스타작가 뺨치는 신인의 활약은 지난해부터 특히 돋보이는 방송가의 흐름입니다. MBC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MBC 연기대상을 배출한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 극본공모 당선작 '앵그리맘'으로 데뷔한 김반디 작가의 2번째 작품입니다. 2018년 '불온하게 때론 명랑하게'로 극본공모 우수상을 받은 인지혜 작가가 젊은층에 반향을 일으킨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극본공모 당선작이라고 반드시 드라마가 되는 건 아닙니다. 작품과 판세를 못 읽은 오판이 두고두고 아쉬울 뿐이죠.

드라마 '꼰대인턴' 포스터. 출처|MBC
그래서일까요. MBC는 최근 연달아 극본공모 당선작을 선보였습니다. 타율도 평가도 괜찮습니다. '꼰대인턴'은 3년 만에 나온 MBC의 극본공모 당선작 드라마입니다. 신소라 작가가 2018년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로버트 드 니로 '인턴'과는 완전히 다른 '늙수그래' 김응수와 '알고보니 꼰대' 박해진 덕에 웃다 찡하다 짠하고 그랬더랍니다. 그리고 서영희 작가의 2019년 우수상 수상작인 '미쓰리는 알고있다'가 심상찮습니다. '시간순삭' 추리극이 쫀쫀하더라니, 첫 회부터 수목극 1위에 올랐습니다. 남은 한 주도 본방사수 하려고요.

독특하게도 '꼰대인턴'은 12회, '미쓰리는 알고 있다'는 4회짜리입니다. MBC는 신인작가를 기용하고 장르를 넘나드는 데 그치지 않고 형식도 길이도 탄력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중입니다. 오는 8월엔 한국영화감독조합-웨이브와 손잡고 만든 SF시리즈 'SF8'을 선보입니다. 영화와 드라마, OTT와 SF가 만난 유래 없는 크로스오버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소 잃은 MBC는 외양간을 고쳤습니다. 극본공모가 그럼에도 꾸준했던 덕에 그 덕에 아직 소가 남아있었습니다. 후회를 뒤로 한 채 적극적인 실험에 나섰습니다. 지켜봐야죠.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한때 아무 관심이 가지 않았던 MBC 드라마가 몹시 흥미로워졌다는 것!

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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