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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크루이프(오른쪽)을 막아서는 허정무 '선수'. ⓒPSV에인트호번 홈페이지
(편집자 주) 축구팬들에게는 각자 기억하는 축구대표팀의 명경기가 있습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나선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디에고 마라도나를 앞세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박창선이 넣은 골부터 모두가 잊지 못하는 2002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안정환의 헤더 골든골, 2010 남아공월드컵 그리스전에서 '해버지'로 불리는 박지성이 수비수의 볼을 가로채 골을 넣고 보여준 풍차 돌리기 세리머니까지 다양합니다. 스포티비뉴스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난 3월부터 멈춘 축구대표팀의 과거 경기들을 회상하며, 직접 뛰었던 이들의 무용담(?)을 들어보는 시간을 시리즈로 마련해 연재 중입니다. A대표팀부터 연령별 대표팀이 치른 기억 속의 명경기, 내가 좋아했던 전설의 회상까지 '나의 A-스토리'에서 한 번에 느껴보시죠.

<②에서 계속…>

[스포티비뉴스=대전, 유현태 기자 이성필 기자] 한국 축구는 오랫동안 세계 축구계에서 변방으로 여겨졌다. 월드컵 도전에서도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프로 리그마저 없었던 1960, 70년대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시기를 뚫고 나선 '유럽파 1세대'들이 존재한다.

허정무(65) 대전 하나시티즌 이사장은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번에 진출하며, 차범근(67) 전  수원 삼성 감독과 함께 유럽을 경험했다. 유럽에서 3년. 그리 길지 않았던 시간을 보낸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축구의 본고장에서 얻은 것은 많았다. 경기적 측면에서 혁신적인 전술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유럽 축구가 성장하고 강해질 수 있었던 분위기,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보여주는 플레이까지 몸소 느끼고 돌아올 수 있었다.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될 자양분을 직접 몸에 체득해 돌아온 셈이다.

▲ 질문을 듣고 있는 허정무 이사장

허 이사장의 유럽 진출은 실력은 기본이지만 사실 운이 따른 결과였다. 당시는 지금처럼 선수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고, 한국을 향한 유럽의 관심도 크지 않았다. 이적이 진행되는 과정도 지금처럼 매끄러울 리 없었다. 직접 훈련장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준 뒤에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독일 보훔과 네덜란드 PSV 두 구단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허 이사장의 선택은 PSV였다.

"지금은 에이전트가 있고 네트워크가 발달하고 바로 소통이 가능했다. 당시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에이전트라는 것도 잘 몰랐다. 통역도 없었다. 그 당시엔 기껏해야 초청장. 좋은 선수가 있다고 하면 '그래 한 번 와봐'하는 정도였다. 초청장 들고 간 거다. 거기서 다시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차범근 감독도 그랬다. 테스트 받느라고 몇 달이 지나기도 했다. 나는 조금 운이 좋아서 바로 계약이 돼서 기다리지 않고 들어갔다. 테스트를 보고 계약하자고 하는 것이지, 지금처럼 다 준비돼 있고, 영상을 보고, 스카우트가 오고, 협상하고 그런 식이 아니었다."

▲ 네덜란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크루이프(오른쪽)

PSV에서 뛰면서 얻은 귀중한 경험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맞대결이다. 네덜란드 역사상 최고의 축구 선수로 꼽히는 요한 크루이프, 독일 축구의 전설인 프란츠 베켄바워, 칼 하인츠 루메니게 등과 맞대결을 펼쳤다. A매치를 치르더라도 대부분 아시아 팀들과 치르던 당시를 생각하면, 한국 선수로선 아주 드문 경험이다.

"현역 당시 유명 선수들하고 많이 부딪혀 봤다. 그게 참 경험이다. 디에고 마라도나, 프란츠 베켄바워, 요한 크루이프, 칼 하인츠 루메니게 이런 선수들과 경기장에서 직접 부딪혀 봤다. 크루이프와는 네덜란드에서, 당시 나이가 든 상태였는데 3번이나 맞부딪혔다. 크루이프 때문에 일약 유명해지기도 했다. 네덜란드 팬들한테 각인되기도 했다."

네덜란드 생활은 그리 쉽지 않았다. 변변한 통역도 없어서 모든 걸 교민들의 도움에 의존해야 했다. 그 와중에도 새로운 축구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허 이사장은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네덜란드에 갔다. 유럽에서 축구에 대한 눈을 떴다. 내가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 알게 된 것이 네덜란드였다"고 말한다. 축구를 쉽게 할 때는 쉽게 하고, 모험할 때는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에 매료됐다는 이야기다.

"유럽에서 축구에 눈을 떴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나라와 유럽을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오히려 뛰는 양이 적다. 빌드업한다고들 하는데 특히 (내가 가진) 불만이, (선수들이) 왔다갔다 하는 경기가 아니라 지나치게 침체돼 있다. 박주영 때문에 AS모나코(프랑스)에 방문했을 때 이야기해준 게, 그리고 박지성, 이영표에게도 말해준 게 누가 해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만들어서 해주라고 했다. 상당히 함축된 이야기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공격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전술을 많이 탄생시킨 네덜란드는 축구를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줬다.

"지금도 그렇지만 네덜란드는 축구에 관해서 굉장히 진취적인 나라다. 1974년 독일 월드컵 때 준우승을 했다. 그때 선보인 게 이른바 토털사커다. 토털사커는 현대 축구의 자양분이 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그런 것이다.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거스 히딩크 감독도 우리나라에 와서 멀티 플레이어를 찾았다. 그것의 원조가 토털사커다. 스리백은 네덜란드의 루이스 판 할 감독이 만들었다. 어느 대회나 수비적으로 움츠러든 적이 없다. 굉장히 공격적이고 모험적인 축구를 하는 팀이란 걸 알 수 있다. 축구에선 앞서가는 나라다."

▲ 한일전에서 득점했던 허정무 이사장(오른쪽) ⓒ대한축구협회

선수단의 소통 방식 역시 허 이사장을 깨웠다. 허 이사장은 한국의 경우 여전히 지도자가, 그리고 선배 선수들이 선수단을 통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충분한 고민과 설명을 기반으로 팀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제대로 뛰지 않으면) 동료들부터 질책을 듣는다. 우리는 서로 미안해서 말을 잘하지 않는다. 걔네들은 바로 이야기한다. '이거 왜 안해주냐' 토요일날 경기하고 월요일에 미팅하면 그때 싸우는 것 같다. 감독한테도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왜 안되냐'고 하더라. 나중엔 화도 안 내고 설명을 한다. '아, 그랬구나. 미안하다'며 인정한다. 토론 문화가 있다."

"우리는 속으로 다른 생각하면서 말을 안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문화가 그렇다. 가서 보면 알게 된다. 오로지 '하라면 해'라는 식이다. 창의력이 없다고 하는 게 그래서 나오는 거다. 유럽, 우리나라 모두 보면 지도 방법이 확연히 다르다. 유럽 애들은 즐기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가 없다. 그냥 놔둔다. 잘하는 것은 칭찬해주지만 지시는 거의 없다. 나중에 얘기를 질문 형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준다. 우리는 좀 전에 이야기한대로 '이렇게 해야 돼, 무조건 가'라고 한다."

지금도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허 이사장이 꼽는 미래는 K리그에 있다. 새로운 축구를 적극적으로 배워가며, 패러다임을 바꿔가야 한다는 뜻이다.

"꿈나무, 미래를 어떻게 키워가느냐가 문제다. 그게 프로 산하 유소년들이 커나가는 게 우리의 미래다. 학원하고 프로 산하를 보면 다르다. 22세 이하(U-22) 의무 출전 규정을 만들어서 유소년을 키워가는 이유다. 유소년이 커줘야 한국 축구에 미래가 있다. 손흥민이나 황희찬이나 해외에 많이 나가 있다. 가서 잘하고 있지 않나. 밑천이 어디서 나왔나. 결국 K리그다. 이를 바탕으로 잘 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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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대전, 유현태 기자 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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