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강인과 손흥민(오른쪽)

(편집자 주) 스포티비뉴스는 지난 3일부터 '나의 A-스토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축구대표팀 경기에 목마른 팬들을 위해 '마스크맨' 김태영(천안시 축구단 감독)을 시작으로 '조헤아' 조현우(울산 현대) 골키퍼, '진돗개' 허정무(대전 하나시티즌 이사장), '황새' 황선홍(대전 하나시티즌 감독) 등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축구계 인사들을 소환해 과거 경기를 회상하고 무용담(?)도 나누고 있습니다. 축구대표팀을 흔히 A대표팀이라 부르고 'A'라는 단어에는 '최고', '최상위'라는 개념이 녹아 있습니다. 연재를 거듭하면서 A를 구성하는 다양한 인물을 만나달라는 독자 분들의 이메일, 댓글 등이 생각 이상으로 쏟아졌습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그 폭을 넓히려 애쓰겠습니다. , 현직 선수는 물론 이들의 뒷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있는 주변인까지 두루두루 만나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왼발의 달인하석주가 말하는 후배들의 '왼발'

[스포티비뉴스=수원, 박주성 기자 이성필 기자] 하석주(52, 현 아주대학교 감독)의 별명은 왼발의 달인이다. 대한민국 대표팀 왼발의 계보를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다. '하 감독 이후'라는 기준으로 볼 경우 '앙팡테리블' 고종수(42), '을용타' 이을용(45), '염긱스' 염기훈(37, 수원 삼성), 최근에는 '슛돌이' 이강인(19, 발렌시아)까지 날카로운 왼발 하나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선수들로 분류된다. 하 감독은 다른 선수들의 왼발을 어떻게 평가할까.

"왼발잡이들도 다 같은 왼발이지만 스타일이 다 달라요. 왼발잡이 중에서는 아마 내가 가장 스피드가 빠른 것 같네요. 고종수, 이을용, 염기훈, 이강인이 있을 텐데 다들 스피드가 빠르지는 않아요. 저는 왼발 드리블이 장점으로 꼽혔어요. 상대 다리를 보고 시도하는 일명 지그재그 드리블이 장점인 것 같고, 킥 능력은 고종수나 염기훈, 이을용, 이강인 이런 선수들이 저보다 훨씬 더 나은 것 같아요."

"이강인, 저보다 두 수 위…부족한 속도에 맞는 포지션 정해야" 

왼발을 이야기하니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국 축구의 미래로 평가받는 이강인이 주제가 됐다. 이강인은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고 골든볼을 수상하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소속 팀에서 출전하지 못하며 불안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강인의 상황을 본 하 감독은 냉정한 조언을 건넸다.

“최근 기사에서 이강인이 저보다 두 수 위라고 말했어요. 왼발은 진짜 잘 쓰고, 어릴 때부터 축구 신동이었죠. 그런데 제가 늘 염려하는 것은 이강인이 스피드가 있으면 정말 대형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손흥민이 대형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왼발, 오른발 다 잘 쓰고 스피드와 지구력이 있어서예요. 그런데 이강인이 경기를 잘 뛰지 못하는 원인을 생각해보면 기동력인 것 같습니다. 팀에서는 스피드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수비력도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본인도 더 악착같이 하려고 하다 보니 퇴장이 나오겠죠."

최근 축구 경향은 공격수도 수비에 가담해 팀플레이가 유기적으로 돌아가게 하고 있다. 중앙선 아래까지 내려 왔다가 역습 상황에서 빠른 스피드로 상대 골문까지 최소 7초 내 도착해 슈팅으로 골 여부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서는 수비를 많이 강조해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 웨인 루니만 봐도 어렸을 때 수비를 정말 엄청나게 열심히 해요. 살벌하게 뛰어다니죠. 이강인이 그렇게 수비를 하려고 하다 보니 파울이나 퇴장으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단계 더 올라가지 못하고 있죠. 다른 팀으로 가서 더 많은 경기에 뛸 필요도 있어 보여요. 이강인이 발렌시아와 재계약을 안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당연히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수는 경기를 뛰어야 해요. 경기를 뛰면서 성장을 하기 때문이죠.”

이강인에게 부족한 속도는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많은 축구 전문가는 속도는 타고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달리기가 느린 선수들은 아무리 훈련을 하고 연습을 해도 빠른 선수가 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 감독은 속도보다 방향, 위치가 중요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꾸준한 출전이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강인은 부족한 속도에 맞는 포지션을 정해야죠. 손흥민은 윙포워드나 스트라이커를 볼 수 있는데 이강인은 미드필더나 그런 자리에서 키핑 능력, 패스 능력에 맞는 포지션을 잡아서 키워주는 지도자를 만나야 해요. 지금 팀에서는 어려워 보이죠. 감독 입장에서는 이강인을 뛰게 해서 성적이 난다는 보장이 없는 거예요. 성적이 안 좋으면 감독 본인도 목이 날아가죠. 누굴 배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겁니다. 한국이었다면 이강인에게 출전 기회를 많이 줬겠지만, 해외에서는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아요.”

▲ 손흥민 이강인 ⓒ곽혜미 기자

▲ 손흥민

"손흥민은 슈팅할 때 발목 임팩트 좋아, 더 좋은 팀에서 돋보여야"

'해외파' 이야기가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손흥민도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손흥민은 양발잡이지만, 왼발 능력이 어지간한 왼발잡이보다 뛰어나다. 소위 '손흥민 존(Zone, 지역)'으로 불리는 위치(주로 아크 좌우)에서 반대편 골문을 보고 감아 차는 슈팅은 손흥민을 대표하는 장면이다. 현역 시절 왼발을 기준으로 기량을 따지면 기죽지 않는 하 감독이지만 손흥민의 왼발은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저도 축구를 한 사람인데 손흥민의 경기를 보면 처음에는 투박했어요. 욕심이 많아서 동료들에게 볼을 주지 않으니 그들이 짜증 내는 것도 봤죠.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축구에 눈을 뜨고 있어요. 원래 도움을 많이 하지 않는데 계속 늘고 있고 10(골)-10(도움)도 해요. 모두 할 줄 아는 선수라는 말인데 정말 쉽지 않아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런 선수가 한국에서 또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감아 차서 골을 넣거나 중거리 슈팅으로 상대 골키퍼를 바보로 만드는 것은 손흥민의 장기다. 어떤 발로 마무리를 할지 모르니 수비수들도 당황하기 다반사다. 

"손흥민은 슈팅할 때 발목 임팩트가 정말 좋아요. 어린 시절 독일로 넘어가서 잔디를 밟으면서 발목 힘이 좋아진 것 같아요. 아버지(손웅정)의 노력도 엄청나죠. 또, 신체 조건도 좋습니다. 키가 183cm고 몸도 잘 빠졌고 스피드, 지구력도 있어요. 심한 부상이 없으니 정말 대단한 선수죠.”

하 감독은 손흥민의 전성기가 앞으로 더 이어지리라 전망했다. 특히 현재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보다 더 높은 수준의 팀으로 간다면 더 뛰어난 선수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가 이렇게 믿는 이유는 최근 축구 선수의 수명이 늘었고, 한국 선수들 특유의 끈기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 선수들은 예전에 27~28살이 전성기였는데 계속 선수 생명이 늘면서 전성기도 같이 늘어가는 것 같아요. 외국 선수들은 나이가 갑자기 들면서 떨어지거든요. 호날두도 상대를 제치고  골을 넣는 것이 많이 줄었고, 옆의 도움으로 넣는 비율이 늘었어요. 메시는 여전히 자기가 제쳐서 넣고 서 있다가도 제쳐서 넣긴 하죠. 반면, 한국 선수들은 나이를 먹어도 확 떨어지진 않아요. 왜냐면 자기관리를 잘하기 때문이죠. 브라질, 남미, 아프리카 선수들은 젊었을 때 정말 잘했다가 살찌고 게을러지면 경기력이 훅훅 떨어지는 선수들이 많아요. 손흥민은 전성기가 몇 년 더 간다고 생각해요. 지금보다 더 무서울 수 있죠. 더 좋은 선수들이 많은 팀에서 돋보일 수 있는 선수거든요. 약한 팀에 가면 집중 견제를 받아 자기가 할 걸 못하죠. 부상도 많이 당할 거예요. 그래서 좋은 팀에 가면 더 좋은 플레이가 나오면서 더 많은 골을 넣을 것 같아요.”

이강인, 손흥민과 대표팀에서 호흡하는 측면 수비수들은 하 감독이 관심을 갖고 보는 자원들이다. 특히 현역 시절 왼쪽 측면을 책임졌었기에 더 그렇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에는 김진수(28, 전북 현대), 홍철(30, 울산 현대)이 왼쪽 수비수로 자주 승선한다. 하 감독은 두 선수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며 이들이 더 발전하기를 응원했다.

"김진수는 전북에서 최고 연봉을 받는다는 기사를 봤는데 정말 좋은 선수에요. 홍철도 왼발에서 공격적인 장점이 있죠. 그런데 김진수는 퇴장이 많아요. 공격적으로 많이 나가니 수비에서 체력적으로 힘들어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가고 수비 들어올 때 체력적인 한계가 있으니까 빠른 상대 선수들에게 몸싸움이나 태클을 하는 게 많아 위험합니다. 경기를 보면 퇴장과 가까운, 위험한 장면이 많이 보여요.”

▲ 하석주 감독 ⓒ대한축구협회

▲ 하석주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

아주대를 지키는 하석주, 프로 감독은 언제 다시 할까?

하 감독은 지난 2003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코치를 시작,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이후 경남FC, 전남 드래곤즈 코치를 거쳐 아주대에서 감독으로 첫걸음을 걸었다. 그의 능력은 프로 무대에서도 매력적이었다. 결국 2012년 전남의 제안을 받아 K리그 감독이 됐다. 하 감독은 어린 선수와 경험이 있는 선수들을 잘 조합해 전남을 매력적인 팀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2014년 갑작스레 전남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이유는 가족이었다.

"지금 보면 프로 감독을 그만둘 때 가슴이 너무 많이 아팠어요. 선수들을 많이 그러 모으고 나이가 많은 선수라도 마음이 맞는 자원을 모았어요. 저 때문에 와준 스테보, 현영민, 김병지 같은 선수들과 젊은 선수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죠. 팀을 어느 정도 만들었는데 어머니와 아내, 아들 셋과 너무 떨어진 게 마음에 걸렸어요. 그때는 프로 감독은 또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지금도 아내와 어머니가 수술 후 쉬고 있는데 가족 모두 프로 감독 할 때보다 대학 감독을 하면서 좋다고 말해요. 가족끼리 밥을 먹을 시간, 이야기할 시간이 많아서요. 프로 감독이면 지방에 떨어져 있고 같이 할 시간이 없어요. 거기에 완전히 올인해야 하니까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버지와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아버지를 어려워해서 속내도 잘 털어놓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대학 와서 속내도 잘 이야기해줘요. 자기들은 지금의 아빠 모습이 더 좋다고 말해요. 그런데 한 번은 마지막으로 프로에서 할 생각은 있습니다. 최근에도 제안들이 왔는데 거절을 했어요. 고맙게 받아들인다고만 말하고 말았죠.”

하 감독은 멀리서 전남의 추락을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K리그2(2부리그) 4위로 순항하며 승격에 도전 중이만 2018년 강등 후 예전의 명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구단 최초로 외국인 감독까지 선임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 감독은 전남의 위기를 일찌감치 예상하고 있었다. 그가 현재 상황을 더 안타까워하는 이유다.

“프로 감독 시절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강등 도입 첫해였는데 기업 구단에서 전남과 부산이 정말 위험하다고 이야기했어요. 사람들은 잘 몰랐죠. 왜냐하면 그 당시 부산은 대우 로얄즈 시절에는 돈을 많이 썼지만, 부산 아이파크가 된 후 그렇게 많이 쓰는 편은 아니었어요. 지금은 역전이 됐어요. 강원FC, 경남 등 시도민 구단들이 많은 돈을 쓰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전남은 2000년대 당시 최고 연봉, 최고 선수를 데려왔는데 이후 계속 줄어들었어요. 내가 감독으로 있을 때 부산이 먼저 강등됐죠. 그래서 전남은 선수들이 오려고 하지 않은 외진 팀이라 돈을 더 많이 주진 못해도 정말 가족적으로 선수들을 모으지 않는다면 한순간에 강등 된다고 프런트에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강등됐죠. 강등되면 K리그1으로 올라가기가 쉽지 않아요. 정말 가슴이 아파요. 전남은 제가 감독하고 나왔던 팀이라 더 애착이 많이 가요. 언젠가 프로 감독으로 가고 싶다면 전남 같은 곳에 마음을 두고 있어요. 그만 두더라도 승격시켜놓고 그만두고 싶어요. 아마 저뿐만 아니라 거기서 감독했던 사람들은 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하 감독에게 마지막으로 뻔하지만,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한동안 생각에 빠진 그는 ‘최선’이라는 단어를 말했다. 하 감독의 파란만장 했던 선수 생활을 돌아봐도 최선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렸다. 많은 사람의 비판과 비난 속에서도 하 감독은 늘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하석주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어떤 자리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대학에서 최선을 다하고, 고등학교, 프로에서도 마찬가지죠. 대신 시대에 맞게 선수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저도 빨리빨리 적응해야죠. 요즘에는 덕장들이 환영받는 부분이 있어요. 선수들도 이왕 축구를 했으면 본인만 생각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서 팀을 배려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도자는 또 그런 유대관계를 잘 만들어서 서로 축구계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네요.”

<끝>

▲ 하석주 감독 ⓒ박주성 기자

스포티비뉴스=수원, 박주성 기자 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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