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C서울 최용수 전 감독(가운데)과 수원 삼성 이임생 전 감독(등을 보이는 사람)은 기간 차이를 두고 사임했다.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언제부터인가 한국 A대표팀이나 프로축구 K리그 감독직을 두고 '파리 목숨'이라거나 '독이 든 성배', '바지 감독'이라는 수식어들이 심심치 않게 따라붙는다. 이는 '성적지향주의'가 한국 축구 문화에 만연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K리그만 보더라도 수원 삼성과 인천 유나이티드가 각각 이임생(49), 임완섭(49) 감독의 사임으로 주승진(45), 임중용(45)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보내고 있다. 최용수(47) 감독이 사임한 FC서울도 일단 누군가에게 임시로 지휘봉을 맡겨야 한다. 안드레(48) 감독의 갑작스러운 이탈로 이병근(47) 수석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앉힌 대구FC를 빼면 모두 형식상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팀을 떠난 감독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대행은 국제축구연맹(FIFA)과 아시아 축구연맹(AFC)이 기준을 세운 지도자 자격증인 P(Professional) 라이선스 보유자라는 점이다. 대행이라도 벤치 지휘에는 문제가 없다. 반면, 주 대행, 임 대행은 A라이선스만 보유했다.

축구지도자의 '박사' 과정인 P라이선스…사임한 최용수, 이임생 모두 '엘리트 지도자'  

AFC가 챔피언스리그에 P라이선스를 갖춘 감독만 벤치 지휘를 허용한 것이 K리그에는 '외부 효과'로 작용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도 선수단의 파행 운영을 막기 위해 60일 이내 P라이선스를 보유한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고 규정에 명시했다. P급 자격이 없어 감독이 코치로, 코치가 감독이 되는 '바지 감독'이나 '감독대행' 체제가 팀의 안정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 우수 지도자의 프로 진출을 막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챔피언스리그에 나설 팀의 자격을 제대로 갖추는 것도 중요해 그렇다.

과거처럼 지도자가 선수단 위에 군림하는 시대는 지났다. 구단이 유소년 육성과 마케팅 등에 뒤늦게 눈에 띄면서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다면, 지도자 자격 취득 과정은 어떻게 진행될까. 대체로 D→C→B→A→P 과정을 거친다.

D급= 비선수 출신의 일반인이 주로 시작, 8세 이하 유소년 클럽 지휘 가능 

C급= 선수 출신이 시작, 초등학교나 만 12세 이하 유소년 클럽 지휘 가능

B급= C급 자격증 취득 2년 후 도전 가능, 중‧고교나 만 18세 이하 클럽 지휘 가능

A급= B급 자격증 취득 2년 후 도전 가능, 단 K리그 100경기 이상, A매치 20경기 이상 소화하면 1년 단축

P급= A급 자격증 취득 3년 이상 지나면 지원 가능, 고교 또는 성인팀 5년 이상 지도 경력 필수, 자격 정지 등의 징계 사실이 없어야 함, 취득까지 최대 2년 소요 

대한축구협회가 AFC의 위임을 받아 주최하는 P라이선스 지도자 육성 교육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호주, 중국, 카타르만 자체적으로 한다. 이 중에서도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최상위 수준으로 인증받았다. 자체 P급 교육 철학이나 커리큘럼 반영으로 세계 축구와 K리그 경향을 모두 교육 과정에 녹일 수 있다. 독일 출신의 미하엘 뮐러 기술발전위원장이 직접 강사로 나선다. 2005년 1기생 교육을 시작으로 노하우를 축적했다.

과정도 길다. 올해의 경우 12월 교육을 시작해 내년 10월, 11월 사이에 종료된다. 5개의 모듈(기간)로 나뉘는데 1모듈당 최소 10일에서 13일 동안 합숙 교육을 받는다. 국내 교육이 끝나면 해외 연수도 기다리고 있다. 과목도 많다. 익히 알려진 ▲스포츠 생리학부터 ▲심리학 ▲코칭론 ▲전술학 ▲영양학 ▲인터뷰 기술 ▲팀 구조론 ▲스포츠 산업학(구단 마케팅) ▲리더십론 ▲스포츠 과학 등 정말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도 전체의 50% 수준이다. 

▲ 대한축구협회가 아시아 축구연맹(AFC)의 승인을 받아 진행하는 P급 지도자 교육 ⓒ대한축구협회

주먹구구식 지도 방식은 역사 속으로…감독도 구단을 이해해야 생존

P급 라이선스 과정을 조직한 축구협회 한 관계자는 "P급의 핵심 대상은 엘리트 축구를 가르치는 지도자다. 적어도 프로 1군 팀에서 P급 정도는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유럽축구연맹(UEFA)이나 AFC에서는 45세 이하 지도자를 대상으로 교육하라고 권고한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지도자 육성이 필수인 한국 축구에서는 조금 더 유연성을 발휘해 30대부터 60대까지 나이대를 넓혔다. 다만, 과거 연장자들이 자격을 위한 자격증 취득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엄격하게 걸러낸다고 한다. 고령 지도자가 P급을 얻고도 엉뚱한 일(?)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다. 

교육 인원도 한정적이다. 최대 28명이다, 주최 측이 조금 더 배려하면 1~2명 정도 추가가 가능하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다. 게다가 28명 중 타국 지도자도 4명을 받아야 한다. 즉 A급을 보유한 국내 지도자 24명에게만 교육 기회가 간다. 현재 A급을 갖춘 지도자는 3천여명 가까이 된다. 그런데도 벌써 호주 축구협회로부터 4명의 감독을 받아 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렇다면, 프로팀 지도자만 P급 교육 기회를 얻을까. 그것도 아니다. P급 수강생 선정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지난달 23일 1차 위원회를 열었다. 모든 항목을 점수화해 관리한다. ▲지도자 보수 교육을 얼마나 제대로 받았는가 ▲지도자 경력 ▲강사 추천 ▲소속팀 우승 경험 ▲연령별 대표팀 코칭스태프 경험 등으로 나뉜다. 

모집 인원도 비율이 있다. ▲프로팀, ▲일반 성인팀(K3리그 이하, 대학팀), ▲학원팀(고교 이하) 등으로 배분한다. 박사급 축구 지도자를 육성한다는 소리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닌 이유다. 2년의 과정에서 탈락하면 재시험을 보는데 논문은 필수다. 국내에서 해도 1천만 원여의 비용이 드는데 해외에서 하면 교통, 숙박, 통역 등을 포함해 2배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이번 교육부터는 새로운 과정이 추가된다. 수강생이 교육받은 것을 소속팀에서 어떻게 이행하는지 실무 과정을 그대로 들여다볼 예정이라고 한다. 감독, 코치라는 직책에 상관없이 팀 지휘법을 현미경처럼 확인한다는 뜻이다. 수강생이 서로의 노하우를 꼼짝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최승범 교육팀장은 "김학범, 정정용 감독 등 모두 이 과정을 거쳐 소위 좋은 지도자가 됐다. 현장에서 기술, 전략이 무형적 가치라고 보면 과학과 경험이 더해져 최고 지도를 만든다고 보면 된다"라고 전했다.

이렇게 공부해 최고 수준으로 올라선 지도자들도 성적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올해 K리그1에서만 임완섭, 이임생, 최용수 감독이 구단의 발표로는 '자진 사퇴' 한 것으로 확인했다. 수원은 이 감독의 '사임!' 소식을 알리며 느낌표를 찍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 골대 들고 옮기는 김종부(왼쪽 두 번째) 전 경남FC 감독, P급 지도자 교육에서는 모든 지도자가 동등한 상황에 놓인다. ⓒ대한축구협회
 

공부한 지도자를 쉽게 용도폐기, 경영진의 책임은 누가 묻지?

구단은 감독이 '자진 사퇴' 했다며 책임을 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흥미로운 것은 해당 감독들이 축구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자비로 해외 축구를 보러 가서 공부하고 노력하는 인물로 꼽힌다는 점이다. 최용수 감독은 서울을 2012년 K리그, 2015년 FA컵 정상에 올려 놓았고 2013년 ACL 준우승을 이끌었다. 패하지 않았지만, 원정 다득점 우선 원칙이라 아쉬웠다.

그래도 최 감독에게는 '명장' 수식어가 붙었다. 그런 최 감독도 라이벌 구단인 수원의 이임생 감독과 같이 빗물처럼 씻겨 내려갔다. 그가 쌓은 경력은 경영진의 외면 또는 무언의 압박에서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감독을 마음대로 쓰고 버리는 구조가 점점 더 만연하는 데는 예산을 자치단체나 모기업에서 조달해 쓰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시도민구단은 예산을 무기로 지인의 선수를 넣어달라는 청탁에 지도자는 압박으로 느껴 고개를 숙이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기업구단은 '해주는 만큼 보여주지 않으면 그만두라'는 태도가 점점 더 반복되고 있다.

프로구단 경험이 풍부한 한 축구계 관계자는 "K리그만 보면 승강제 도입 후 지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가 더 잦아졌다. 구단의 존폐가 걸린 문제라 그렇다"라며 "지도자만 공부를 할 것이 아니라 구단 경영진도 코칭, 심리학 등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감독이 사퇴하면서 구단도 연대해 죄송하다고 진정성 있게 말했던 팀이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지도자를 키우는 과정은 아이가 태어나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맞먹는다는 축구계 말이 있다. 역량이 떨어지는 지도자 스스로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활용하는 체계 정립도 필요하다. 지도자를 헌신짝처럼 쓰고 버리는 문화가 만연하면 명장 탄생은 더욱 힘들어지지 않을까. 지금 한국 축구에 '명장' 소리를 듣는 현역 프로 지도자가 있는지 축구계 스스로 자문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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