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홍원찬 감독. 제공|CJ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여름 한국영화 빅3의 마지막 주자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바람이 뜨겁다. 강렬한 액션과 스타일로 먼저 시선을 붙드는 이 액션느와르의 연출자는 바로 홍원찬 감독. 5년 전 '오피스'로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던 그는 시나리오작가 시절 직접 대본을 썼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10년만에 직접 연출해 관객에게 선보였다. 

코로나19의 와중에 뜨거운 여름을 맞이한 관객들은 화끈하고도 스타일리시한 액션, 매력 넘치는 캐릭터의 향연에 반색하는 중이다. 홍원찬 감독은 처음부터 차별화된 스타일과 액션에 무게를 뒀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쉽지 않은 캐릭터를 결코 뻔하지 않게 풀어내 준 배우들이 큰 몫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가 들려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야기는 이랬다. 

-5년 전 개봉한 '오피스'보다 오래 된 이야기라고 들었다. 어떻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연출하게 됐는지.

"10년 전이다. 기획은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의 김원국 대표가 했고, 연출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작가로서 시나리오를 썼다. 외국에서 아이를 구하려 고군분투하는 남자의 이야기였고, 방콕으로 정하고 답사를 다녀와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쓰는 중에 '아저씨'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재밌게 봤는데 흥행 잘 되고 이슈가 된 영화여서 우리 영화가 나올 때는 아류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겠다 하고 텀을 가졌다. 이후 다른 작품 작가로 작업을 하다가 '오피스'로 데뷔했다. 시간이 흘러서 '홍 감독이 직접 쓴 거니까 연출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제안을 다시 받았다. 처음엔 고민했다. 다시 보니 보지 못했던 게 보이고 비슷한 유형 영화들이 나왔더다. 살인청부업자가 주인공인 액션영화가 많더라. 차별성을 가져가는 게 관건이었다. 캐릭터를 살려서 이 영화 특징을 부여할 수 있겠구나 계획이 잡혔고 각색을 해서 지금 캐릭터가 등장했다. 그게 2018년 말 정도다. 그 뒤부터는 빠르게 진행됐다."

-직접 쓴 작품이고 답사도 다녀왔던 터라 작업이 더 수월하던가.

"내가 모르는 배경을 써야 해서 답사도 다녀오고 사진도 찍었던 게 나중에 도움이 많이 되더라. 시나리오를 고치는 과정은 사실 비슷하다. 제가 쓴 것이든 다른 사람의 것이든 해체해서 다시 해야 한다. 인남, 레이 캐릭터는 원래는 있었다. 각색 과정에서 제일 많이 바뀐 건 유이 캐릭터다. 초기 단계 때 '아저씨'가 나왔을 때도 차별성을 가진다고 생각해서 존재했던 캐릭터다. 당시엔 도와주고 빠지는 역할이었는데 뒷부분까지 이어지고 결말도 책임지도록 했다. 이런 영화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 제공|CJ엔터테인먼트
-남성 캐릭터가 중심이 된 영화다. 여성에 대한 묘사나 여성 캐릭터 등 그 사이 세상이 달라져서 다시 손봐야 할 지점도 있었을 것 같다.

"제일 고민을 많이 했던 지점이다. 주인공들이 느와르 영화들에 자주 등장하는 남자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다. 장 피에르 멜빌 영화 영향을 받은 그런 남성 캐릭터를 그리고 싶었다. 남성 중심 서사고 여성 캐릭터보다는 남성 위주의 이야기 구조, 시선을 갖고 있는데 그러다보면 관습적으로 쓰이는 표현들이 있지 않나. 당연시 되던 구조들이어도 지금은 사람들이 인식이 바뀌어서 보완해가야 한다 하는데, 그 방향이 맞다. 여성 캐릭터 활용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다. 장르에 포커스를 맞추면 관습적인 걸 배제할 수는 없었지만, 보완하고자 했다. 영주 캐릭터를 연기한 최희서 배우를 만났을 때 그 이야기를 했다. 배우가 보완해줬으면 좋갰다고, 그래서 최희서라야 한다고. 이 사람 자체의 주체적인 이미지가 이것을 상쇄시켰으면 좋겠다 했다. 기능적으로 등장하고 빠지는 게 아니라 본인 신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사연을 듬뿍 드러내주셨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최희서 배우가 가지고 있는 그분만의 분위기가 역할을 해준 것 같다."

-최희서뿐 아니라 짧게 등장하는 배우들도 존재감이 상당하다. 박명훈은 '기생충' 촬영 후 개봉 전에 촬영했을 텐데.

"박명훈 선배가 연기한 시마다 역할, 이서환 선배가 연기한 영배 역할 전제가 이미지 소비가 안된 역할이면 좋겠다는 거였다. 낯선 방콕에 탁 왔는데 익숙한 배우가 나와서 도와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했다. 이 전에 출연한 영화를 돌아보면서 겹치지 않고 색깔을 가진 분들을 찾았다. 박명훈씨의 재일교포 말투는 원래 더 진짜 교포 같았다. 더 갈 수 있는데 잘 들리는 쪽으로 잡았다. 연습한 거긴 한데 원래는 더 재일교포처럼 할 수 있는데 잘 들리는 쪽으로 잡았다."

▲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홍원찬 감독. 제공|CJ엔터테인먼트
-황정민 이정재 '신세계" 브라더가 만나 제대로 보여준다. 투톱 캐스팅만으로도 '됐다' 싶던가.

"캐스팅 과정에서 '이 조합이면 어느정도 됐다'는 박정민 배우 합류한 다음이었다. 정민 선배님, 정재 선배님은 1순위로 드렸다. 하실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다 하신다고 해서 순조롭게 캐스팅됐다. 정민 선배님이 이런 액션영화를 하실까 했는데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신 것 같다. 정재 선배님도 강인한 캐릭터에 대해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유이도 1순위가 박정민이었다. 제가 하고싶다고 했다. 정민 선배가 하시기로 한 뒤에 '오이디푸스' 연극을 보러 갔는데 당시 아내인 소속사 대표 분이 있는 자리에서 '박정민 하면 안돼요?' 그랬는데 별 반응이 없으셨다. 박정민 군 선택의 문제였다. '오피스'를 같이 한 친분이 있지만, 책을 준다 해서 할 친구도 아니다. 시나리오를 주고 1~2주를 기다려 물어봤더니 관심을 보이더라. 워낙 어렵고 쉽지 않은 캐릭터인 데다가 잘못 소화하면 반대급부가 올 수 있는 역할이다. 황정민 선배가 억지로 시켰네, 하는데 전혀 안 그렇다."

-왜 박정민이 유이 역에 1순위였나. 여성성을 발견했을 것 같지 않다. 그런데 다리가 정말 예쁘더라. 인간적인 배가 자주 잡히는 것도 재미있었다.

"여성성을 찾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남성적인 모습들이 충돌하지 않나. 보통 곱상하고 여자같이 보이는 걸 떠올렸을 텐데 반대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유이 캐릭터는 무겁게 한시간 끌고 온 지점에서 숨통을 틔워준다. 그래서 쉬는 구간인 것처럼 새로운 캐릭터로 편해지길 바랐다. 박정민 군이 잘 해줄거란 기본적인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뒷모습을 보니 다리가 너무 예뻤다. 뱃살은, 애기 얼굴을 잡으면 배와 같이 잡힌다. 나오니까 재미있더라. 이런 캐릭터는 제스처는 물론 하다못해 의상까지 오버스럽게 보여주곤 한다. 유이는 옷도 심플하고 내추럴하게 입는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다 했고, 박정민 군도 직접 골랐다. 디테일하게 본인이 준비해 온 옷도 꽤 된다. 홍대에서 골라왔다고 하더라. 따로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맘에 쏙 드는 의상들이어서 많이 썼다. 연기의 톤도 그랬다."

▲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 제공|CJ엔터테인먼트
-잔혹한 킬러인 이정재의 레이는 '백정'이라는 말이 나오긴 하지만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미끈하고 화려한데 군더더기 없는 모습에서 뱀이 연상되더라.

"정재 선배님이랑 레이 캐릭터를 이야기할 때 뱀 같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그 표현을 정재 선배가 좋아했다. 어려운 캐릭터다. 저도 어렵고 표현하는 배우도 어려우셨을 것 같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캐릭터도 아니,고 목적성이 분명하거나 처한 상황을 분명히 보여주고 움직이는 캐릭터도 아니다. 방아쇠가 당겨지니까 갑자기 빵 나와서 난 죽이러 간다 하고 나선다. 정재 선배님이랑 계속 이야기하면서 레이 캐릭터를 잡았다. 의상 소품. 대사 하나까지. 전사는 일부러 보여주지 않기로 했다. 그 부분을 지적하는 분도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이런 캐릭터에 구구절절 사연이 들어가는 건 싫었다. 그거 설명한다고 매력적일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없이 쫓아와야 더 무서울 것 같았다. 본인도 방아쇠가 당겨졌으니 잡으러 나서는데 놓치니까 열받고 점점 이유가 없어지는 거다. 정재 선배도 거기에 충분히 동의를 했던 것 같다. 제 의도는 그랬다. 관객이 불친절하다고 받아들이실 수 있어 저도 궁금하기는 하다. 제게도 모험같은 거였다. 액션에 포인트가 맞춰진 영화라 납득시키고 끌고가는 것보다 속도감·긴장감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밸런스의 문제다."

-반면 황정민이 연기하는 인남은 과거와 사연이 있고 인남의 시선을 관객이 따라가게 된다. 익숙한 구도여서 또 어려웠을 것 같다.

"인남은 관객이 따라가야 하는 인물이다. 극을 끌고가는 주인공으로서 레이랑은 다르게 목적이 분명하다. 관객이 이 인물을 통해 드라마를 따라가니까 응원할 수 있어야 하고, 인남의 감정 상황 충분히 인지를 시켜야 된다. 그것이 메인 플롯인데 익숙한 구조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보시기에 많이 나왔던 패턴이 아닌가 할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 아이템이 가지는 태생적인 지점인 것 같다. 익숙한 구조인 만큼 더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이를 구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무시무시하 레이가 쫓아오고 조력자인 유이도 마찬가지로 변주했다. 그 속에서 황정민 선배님이 예전 캐릭터보다는 감정을 눌러서 표정으로만 전달하는 게 좋았다. 폭발하고 드러내는 걸 많이 하셨는데, 제 의도를 시나리오에서 명확히 보신 것 같다. 감정을 안 보여주고 어느 순간에 눈빛과 표정만 보여주는 그걸 너무 훌륭하게 표현해 주셨다. 눌러서 해내는 연기 더 어렵고 고난도라 생각한다. 영화의 중심을 잘 잡아주셨다. 액션이든 스타일이든 화려함이든. 결국 이 전체 중심을 잡아주는 게 있어야 가능하다."

▲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 제공|CJ엔터테인먼트
-황정민 이정재가 맞부딪치는 액션, 그걸 잡아낸 촬영이 백미다. 타격 직전 속도감을 달리하는 스톱모션도 인상적이었다.

"보통 액션할 때 직접 때리지 않는다. 때리고 맞은 것처럼 편집을 해서 보이게 하는데 저희는 직접 때리게 해서 찍었다. 프레임 수를 조정해서 실제 주먹이 오가는 걸 보여주는데 그게 가능하려면 실제 맞아야 효과가 정확하다. 의도한다고만 되는 것은 아니고 기법을 알아야 구현할 수 있는데 무술감독님이 아이디어를 자 주셨고 워낙 기술적인 베테랑들이셨다. 우리 영화 액션은 다르게 보여줘야 한다는 의도가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명확했다. 처음부터 아이디어를 잘 표현해 주셨고, 격렬한 액션을 찍느라 배우들도 고생하셨다. '신세계'를 같이 하시지 않았나. 호흡이 맞아서 몸은 힘들지만 수월하게 진행했다. 촬영은 카메라 한 대로 샷마다 순서대로 찍었다. 배우들이 합을 더 정교하게 맞춰야 했다.

-둘이 처음 만나 싸우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촬영도, 공간도. 또 방콕으로 넘어가면 빨간 글자가 꽝 찍히고 톤이 완전히 바뀐다. 

"가만 보면 동선이 다 보이는데, 처음 둘이 싸우는 장면에서 공간을 나눠서 눈을 마주치고 인남이 왔다갔다 하고 발로 뻥 차면 문이 열리는 데까지 롱테이크로 모두 계산을 하고 홍경표 촬영감독님이 직접 찍으셨다. 액션은 롱테이크 찍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이런 경우 두 테이크 안에 오케이가 안 나면 무한반복인 경우가 많다. 다행히 몇 테이크 안 갔다. 의외로 회차를 오버하지 않았다. 장소는 태국의 실제 여관을 섭외했는데, 실제 방의 룩을 최대한 살렸다. 애초 미술감독 촬영감독과 합의한 게, 있는 공간을 잘 찾아서 살리는 게 콘셉트였다. 실재적 공간을 찾고 실제 색상을 찾는 게 최고다 했다. 현장의 질감을 최대한 살렸다.

'방콕'이 뜨면 여기서부터는 달려간다는 거다. 거기서부터는 쉴틈없이 달려가야 했다. 보시는 분들도 그 지점부터는 이 영화만의 속도감 밀도가 보시지 않을까. 일본도 그렇고 공간을 보여줄 때 그런 콘셉트가 있었다. 인남의 동선을 따라서 보여주자. 보통은 해외를 가면 랜드마크를 보여준다. 우리는 인남이 있는 공간의 배경을 보여준다. 그런 것을 안했다."

-전작 '오피스'와는 완전히 다른 규모와 장르, 색깔의 이야기를 스타일리시하게 풀었다. 차별화된 볼거리를 보여주겠다는 야심이 보인다.

"이 영화만의 차별점을 가져가자, 그런 노력을 계속 했던 것 같다. 다 제 안에 있는 성향인 것 같다. '오피스'는 예산에 대한 제약도 있었고, 공간을 한정시켜야 했고, 한 장소라야 했다. 최대한 한정시켜야 했다. '다만악' 경우는 블록버스터급 영화였기 때문에 좀 더 관객들이 보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랐다. 이야기 속도감도 빠르고 공간도 계속 이동하고 볼거리도 막 보여주고. 액션도 막 휘몰아치고… 이런 것들이 필요했다. 소재나 장르마다 그 콘셉트를 그에 맞춰 잡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오피스'를 만들 때나 이 영화나 코어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서스펜스를 구축한다든지 클라이막스로 끌고가는 주인공의 감정이라든지. 그건 비슷한데 어떤 건 액션과 스타일에, 어떤 건 심리적 서스펜스와 밀도에 치중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홍원찬 감독. 제공|CJ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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