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지켜가고 있는 롯데 허문회 감독(가운데).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인천, 고봉준 기자] 롯데 자이언츠와 SK 와이번스의 경기를 앞둔 6일 오후 인천SK행복드림구장. 평소처럼 진행된 원정팀 감독 인터뷰에서 예상치 못한 ‘작심 발언’이 나왔다. 롯데 허문회 감독이 입을 통해서였다.

허 감독은 전날 우천 노게임 상황을 놓고 “경기 중단 30분 정도가 지난 뒤 우천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같은 시각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는 1시간 넘게 기다리면서 경기를 재개했다. 그런데 우리는 아니었다”고 운을 뗐다.

롯데는 전날 SK전에서 3회초까지 3-1로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경기 중반 강한 빗줄기가 내렸고 심판진은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 그로부터 30여 분 뒤. 이날 경기는 노게임 처리됐다.

롯데 선수단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가 취소되더라도 우천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본 뒤 최종 결정이 내려질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 롯데 허문회 감독(오른쪽)과 이대호. ⓒ한희재 기자
KBO리그는 코로나19로 페넌트레이스가 뒤늦게 개막하면서 다소 무리해서라도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거센 빗줄기 속에서도 선수들이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이유다. 같은 날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자정 무렵까지 진행된 잠실 삼성-두산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날 롯데-SK전은 예상보다 빨리 노게임 결정이 내려졌다.

착잡한 표정을 띤 허 감독은 “방수포를 걷을 때 심판진은 오후 8시경 경기를 재개한다고 설멍했다. 그런데 이후 아무런 언질 없이 노게임을 선언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이어 “선수들은 당연히 경기를 할 줄 알고 기다린다. 그런데 이렇게 취소가 되면 선수들이 헷갈린다. 선수가 있으니까 KBO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 KBO와 심판진의 해명을 듣고 싶다”고 항변했다.

이날 허 감독의 발언은 현장 심판진은 물론 주관단체인 KBO를 향해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지닌다. 페넌트레이스가 한창인 시점에서 자칫 대립각을 세우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속내를 모두 드러냈다. 혹시 모를 유·무형의 불이익마저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이처럼 힘이 실린 ‘자기 목소리’는 허 감독이 올 시즌 처음 지휘봉을 잡은 초보 사령탑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이 간다. 1년차 감독들이 공개석상에서 향후 다시 화살로도 돌아올 수 있는 발언을 가감 없이 꺼내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 롯데 허문회 감독. ⓒ한희재 기자
롯데 관계자는 “월요일 인천으로 올라오는 버스 원정길 곳곳이 비로 침수되거나 보수 중이라 7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하더라. 어렵게 올라온 만큼 어떻게든 3연전을 모두 소화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감독님께서 직접 나서신 느낌이다. 실제로 이날 선수들은 노게임 선언 이후에도 쉽게 경기장을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귀띔했다.

사실 허 감독의 강단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허 감독은 올 시즌 개막 직후 대체선발로 나왔던 장원삼이 부진하자 “2군에서 장원삼이 좋은 선수라며 추천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선택을 잘못한 감독과 그러한 선수를 추천해준 2군 모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사령탑이 개막 초반 2군 코칭스태프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더군다나 허 감독은 올 시즌 롯데 유니폼을 처음 입은 이다.

그러나 허 감독은 선수단 관리나 엔트리 조율, 페넌트레이스 운영 등 여러 면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앞세워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성적이 나지 않을 때는 크나큰 비난도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의 지휘 스타일을 고수했다. 사령탑도 처음이고, 롯데 소속도 처음이지만 주저하는 부분은 없다.

전날 4연승 기회를 놓친 롯데는 6일 SK전에서 허 감독의 지휘 아래 다시 똘똘 뭉쳤다. 3회까지 0-2로 밀렸지만, 4회 상대 수비수의 실책과 마운드의 난조를 틈타 대거 6점을 뽑았고, 5회 한동희와 딕슨 마차도의 백투백 솔로홈런으로 8-2 승리를 챙겼다.

8월을 승부처의 시작으로 꼽았던 허 감독은 이달 4경기를 모두 잡으며 6위 kt 위즈를 반게임 차이로 추격했다. 우천 노게임 변수가 있었지만, 롯데로선 결과적으로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 인천 원정길이었다.

스포티비뉴스=인천, 고봉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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