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버풀은 위르겐 클롭 감독 선임을 위해 6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그의 모든 것을 확인했다.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지난 5월, 영국의 세계적인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즈'에는 흥미로운 칼럼이 올라왔다. '축구 전쟁의 역사', '사커노믹스' 등을 펴낸 저널리스트 사이먼 쿠퍼의 칼럼이었다.

구단이 인재 확보를 위해 영리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주제에서 쿠퍼는 '리버풀을 소유한 펜웨이 스포츠 그룹이 위르겐 클롭 감독을 채용하기 전, 그에 대한 60쪽 분량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후 2015년 10월 구단 경영진이 미국 뉴욕에서 클롭을 만나 몇 시간에 걸친 면접을 통해 채용을 결정했다'라고 전했다.

클롭 선임 위해 60쪽 보고서 만든 리버풀

실제로 리버풀은 클롭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를 2008년 여름부터 2015년까지 맡아서 실행했던 전술부터 선수 기용, 경기 전, 후로 언론과의 인터뷰, 사회 공헌 등 모든 것에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고 한다. 이를 압축해 '채용 보고서'를 만들어 법률 사무소(로펌)에서 만나 클롭과의 면접에 활용했다. 리버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첼시 등 경쟁 구단을 넘기 위해 클롭이 팀의 철학이 맞는지 현미경 검증을 한 것이다.   

3년 계약으로 리버풀을 맡은 클롭은 2015-16 시즌 프리미어리그(PL) 8위라는 성적을 내며 혹독한 신고식을 마쳤다. 당시 영국 언론 보도를 찾아보면 '리버풀의 전통과 어울리지 않는다'라거나 '팀 철학과 클롭이 가진 경험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류의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리버풀은 클롭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고 2016-17 시즌부터 2017-18 시즌 내리 리그 4위를 해냈다. 2017-18 시즌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에 무너졌지만, 준우승을 차지하며 큰 경기에 대한 면역력을 쌓았다.  2018-19 시즌 리그 2위와 UCL 우승, 2019-20 시즌 PL 우승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클롭은 2015년 부임 당시 "3년 안에 리버풀에 우승을 안겨다 주겠다"라며 구단에 강력한 동기 부여를 심어줬다. 우승이 쌓이면서 지난해 12월 리버풀과 2024년까지 연장계약을 체결했다. 차분하게 선수단을 운영하고 팀과 융화를 이룬 결과였다. 리버풀도 유럽 명문 구단의 이미지를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감독이 단순히 선수단을 지휘해 성적을 내는 시대는 끝난 지 오래됐다. '프로'라는 타이틀에는 '팬', '경제적 가치', '연고지와의 유대' 등 많은 것이 녹아있다. 이제는 구성원 모두가 아는 가치들이지만, 굳이 이를 강조하는 데는 최근 국내 축구 문화에 눈앞의 성적에만 매몰, 감독 선임 절차를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교체, 선임 시기마다 보인다는 점이다.

▲ 인천 유나이티드를 통해 K리그로 복귀한 조성환 신임 감독 ⓒ인천 유나이티드

지도자 P급 라이선스 유무에 애태우는 촌극 연출

가장 '촌극'은 지난 1일 작성한 언중유향의 '누가 명장과 바지 감독을 만드나'에서 구구절절하게 설명했던 지도자 자격증 취득 절차와 가치를 쉽게 보는 태도다. 지도자 자격증 최상급인 P급 라이선스가 없는 감독으로 인해 수석코치가 감독이 되고 감독이 반대되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 일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12월 P급 지도자 자격증 연수를 시작 예정인 대한축구협회가 신청을 늦게 받으면 '바지 감독'이 탄생하거나 감독 없는 '파행 운영'도 가능하다.

칼럼이 나간 뒤 다수 구단 고위 프런트로부터 '왜 구단만 잘못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느냐. 지도자들의 행태도 문제가 많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전화나 모바일 메신저가 다수 왔다. 지도자들이 구단의 노고를 너무 모르고 본인의 안위에만 급급해 일을 크게 벌인다는 의미다. 

A구단 고위 관계자는 "우리 프로축구도 이제는 나름대로 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감독이 구단에 군림하는 시대는 지났다. 아마추어처럼 굴면 여기저기서 직언이 들어간다. 그런데 이적 시장만 다가오면 언론에 '선수가 없다'라거나 '선수 영입 좀 해달라'고 언론플레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팬들은 구단 운영 자금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정확히 모른다. 알아도 감독의 정서에 빙의해 떼를 쓰거나 '우리 구단은 돈을 안 쓴다'는 류의 비판이 눈덩이처럼 굴러온다"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감독, 선수들을 묶어 일부에서는 '족쟁이'라는, 비하하는 표현을 쓴다. 프로 감독 자리는 한정적인데 노리는 이가 많고 눈앞의 명예만 보느라 구단의 계획에 어긋나는 과한 선수 영입을 요구하는, P라이선스 자격을 갖추고도 몰상식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빨리 지도자에 입문해 자리를 잡으려는 욕심이 반대로 구단을 더 산으로 가게 만들고 자신도 단명하게 만드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자주 봐왔다. 

그런데도 일부 구단은 그런 상황과는 거리가 먼 감독 찾기에 골몰한다. 마케팅도 사회 공헌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성적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며 좋은 감독을 뽑아와 국면 전환용으로 활용한다. 또, 지도자는 이를 알고도 덥석 물어버린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나쁜 예를 정확하게 보여줬다.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가 미끄러진 이임생 전 수원 삼성 감독의 예가 그렇다. 이 감독의 순수한 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적어도 수원에서 사임을 사실상 경질로 이해하고 측은하게 생각했던 여론을 생각하면 아쉬움 그 자체다.

재취업에 기간이 무슨 상관이냐는 문제 제기도 가능하지만, 역으로 시도민구단의 나쁜 구조만 재확인한 셈이다, 시와 대표이사, 전력강화실 따로 움직이며 감독 선임 작업을 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따로 움직여 수집한 정보를 같이 섞어보는 모습도 없었다. 인천은 감독 선임과 경질을 수없이 반복해왔다. '생존왕'이라는 수식어 이면에는 근시안적인 선택이라는 행위가 있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 비슷한 길을 걸었다.

▲ 수원 삼성은 이임생 감독 이후를 고민 중이다. ⓒ곽혜미 기자

구단-지도자 모두 중요성 인식할 감독 선임 체계부터 다시 만들어야

인천이 단 몇 시간 내에 조성환 신임 감독에게 구단의 경영 철학을 이해시켰다면, 그래서 선임을 한 거라면 정말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주승진 감독 대행 체제로 끌고 가는 수원 삼성이나 김호영 대행 체제의 FC서울에도 반면교사다. P급 교육생 신청 여부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축구협회 6월 등록 기준 P급 지도자는 173명이다. 옥석고르기만 제대로 해도 된다. 기준에 미달하면 시간이 걸려도 외국인 지도자로 선회하면 된다.

오히려 축구협회는 구단들의 행태가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P급 교육에서 K리그를 정말 많이 배려해줬다. 그런데 이제는 언제 등록 신청이 가능하냐고 묻는다. 선정 여부도 모르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행태 아닌가. 얼마나 체계가 없으면 등록 시점에 전전긍긍하나"라며 구단들의 땜질식 태도를 비판했다. 
  
그래서 향후 지출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허리띠를 조여야 하는 사정을 모르는 축구팬은 거의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구단 직원의 해고가 줄을 잇고 선수단 임금 삭감이라는 '고통 분담'이라는 소식이 매일같이 전해지고 있어 그렇다. 물론 현 시점에서 '무풍지대'처럼 보이는 우리 프로축구계(정확히는 선수단)에는 남의 일처럼 보이지만.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에서 '합리적', '효율적'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가진 비용이라도 제대로 지출하거나 선수를 잘 팔고 남는 돈으로 영입을 제대로 하고 또 육성하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감독과 치열한 밀고 당기기로 구단의 상황을 이해시키며 선수단을 활용하는 프런트의 명석함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부터라도 선수 이상으로 감독 선임을 위한 조직을 제대로 구성하는 구단을 보일 필요도 있다. 동시에 구단의 시스템에 맞춰 같이 움직이는 지도자의 전략과 센스도 보고 싶다.    

임시방편은 언젠가 한계를 드러내게 마련이다. 우리 구단들이 리버풀 수준의 감독 선임 매뉴얼과 보고서를 갖고 있었다면 절대로 벌어지지 않았을 일들이다. 반이라도 따라잡기를 기대하면 사치일까.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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