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부산, 정형근 기자 / 이강유 영상 기자] “제2의 숙현이가 나오면 안 된다. 숙현이를 계기로 체육계의 문화가 반드시 바뀌었으면 좋겠다.”

고(故) 최숙현의 외삼촌 류정민(47) 씨의 말에 아픔이 묻어났다. 말하는 도중 울컥하는 감정을 억누르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류정민 씨는 조정 국가대표 출신이다. 고등학생 때 국가대표 상비군에 선발됐고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다.

“하루에 서너 차례 구토하며 운동했다”고 밝힌 그는 체육계의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만연한 폭력, 엘리트 중심의 성적 지상주의 등을 직접 경험했다.

자신처럼 운동선수의 길을 택한 조카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은 류정민 씨는 최숙현의 사망 하루 이틀 전까지 연락을 주고받았다.  

“아직도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이 차가 많이 나지만 먼저 정감 있게 다가온 친구다. 농담도 잘하고 성격도 똑 부러지는 아이였는데….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류정민 씨는 “제2의 숙현이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최근 부산시 개금동에서 만난 그는 약 4시간 동안 이번 사건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숙현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가혹행위에 문제가 있고 잘못됐다고 자신의 전부를 걸고 힘차게 외치는데 기득권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외면했다. 인생을 걸고 민원을 제기했는데 가해 당사자나 주위에선 부인하거나 회유하고 심지어 은폐하려 했다. 진실은 점점 왜곡되고, 가해자들이 평소처럼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숙현이가 절망했을 것이다.”
▲ 철인3종 유망주 최숙현은 지난 6월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어머니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고 최숙현 유족

고 최숙현은 올해 2월부터 경주시청과 경찰, 검찰,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 인권위원회 등에 피해를 호소했다. 그러나 최숙현의 말에 귀 기울이는 곳은 없었다. 지난 6월 최숙현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난 이후에야 사건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숙현이가 힘들고 맞는 게 두려워서, 아니면 정신력이 약해서 극단적인 생각을 했을까? 철인 3종을 하는 애가 무슨 정신력이 약한가. 그만큼 정신력이 강했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나도 선수 생활을 해봐서 안다. 숙현이가 겪은 어려움을 보니 억장이 무너진다. 물론 숙현이가 당한 일이 체육계에서는 많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많다고 그냥 넘어가면 되나. 늦었지만 철저히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최숙현 사망 사건의 주요 가해자로 지목된 4명 가운데 경주시청 철인3종 김규봉 감독과 장윤정, 팀 닥터로 불린 안주현은 구속됐다. 김규봉 감독과 장윤정은 대한철인3종협회에서 영구제명 됐고, 김도환은 10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가해자 4명 중 장윤정이 핵심이다. 100% 맞다. 장윤정은 철인3종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다. 장윤정을 따라올 선수가 현재도 없다고 들었다. 장윤정을 안고 가면 당장 감독도 연봉이 올라간다. 그러면서 선수는 감독을 능가한다. 숙현이의 기량이 올라오면 장윤정이 더 크지 못하게 눌렀다. 숙현이가 좋은 성적을 내면 짓밟는 게 계속 반복됐다. 가혹행위로 짓밟았다는 얘기다.”

장윤정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국체전 금메달을 여러 차례 따낸 장윤정은 팀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최숙현의 동료 선수들은 “처벌 1순위는 장윤정”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모든 악(惡), 현상태의 축은 장윤정이다. 숙현이가 나간 경기에 몇 차례 따라간 적이 있다. 현장에서 내가 직접 들어보면 장윤정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예전부터 그런 조짐이 있었다. 숙현이는 10년 차 나는 하늘 같은 선배에게 말 한마디 못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같은 숙소를 썼으니 수년간 괴롭힘을 당한 것 같다.” 

현재 장윤정과 김규봉 감독, 안주현은 가혹행위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도환만 유일하게 최숙현이 안치된 추모공원을 방문해 용서를 빌었고, 유족에게 사과의 뜻을 건넸다. 

“집이 풍비박산 났다. 경찰청에서 지원하는 심리상담도 받아봤지만, 이 아픔은 누구도 모른다. 누나(최숙현 어머니)는 대인기피증이 생겨 밖에 나가지도 않는다. TV에 나온 게 전부가 아니다. 빙산의 일각이다. 빨리 형사적인 문제가 결론이 나야 우리도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고 최숙현의 유족은 "제2의 숙현이가 나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 최숙현 유족

국회는 선수를 폭행한 지도자 처벌을 강화하는 '고 최숙현법'을 법제화했고, 체육인 인권 보호와 스포츠 비리 근절 전담기구인 스포츠 윤리센터는 5일 공식 출범했다. 스포츠 윤리센터는 문체부 스포츠 비리신고센터와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신고 기능을 통합해 체육계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갖고 인권침해 및 비리에 대해 조사한다.  

“하루아침에 모든 게 바뀔 수는 없다. 은연중에 또 반복된다. 현재 체육계도 그렇다. 시·도 체육회나 대한체육회, 협회 다 똑같다. 문제가 생기면 덮고 잠재우려고만 한다. 스포츠 윤리센터는 어느 체육 단체에도 관여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체육 단체가 윤리센터를 운영하면 문제가 생겨도 쉬쉬할 것이다. 전국적으로 돌아다니면서 감찰 할 수 있는 팀이 생겨 수시로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22살 최숙현에겐 또 다른 꿈이 있었다. 가혹행위를 신고한 뒤 하루하루 꿋꿋하게 견딘 최숙현은 자신이 의지하는 외삼촌에게 미래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죽기 한 달 전에 숙현이와 만나 많은 얘기를 했다. 숙현이는 아이들을 지도하고 싶고, 다른 방향으로 공부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했던 운동을 가르치려면 결국 철인3종협회 내에서 해야 한다. 생활체육도 협회 내에서 이뤄져 가해자들에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가해자들이 평상시처럼 생활하고, 코치진으로 남으면 자기는 생활체육을 한다 해도 그늘 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극단적인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류정민 씨는 최숙현과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운동선수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선수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선수를 포함해 모든 선수에게 교육을 해야 한다. 현재 인권 교육은 지도자에 한정돼 있다. 선수들에게 직접 교육을 해서 가혹행위를 당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고 조치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좋지만 자기 계발과 자기주장을 충분히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체육인이 되길 바란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울림이 있었다. 고 최숙현의 유족이 던진 메시지에 체육계가 응답해야 할 때다.

스포티비뉴스=부산, 정형근 기자 / 이강유 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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