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성환 박사 ⓒ대한축구협회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아로나민 골드를 발매한 뒤 제약사 일동제약이 슬로건으로 내건 "체력은 국력"이라는 표현은 꽤 널리 그 출처가 잊힌 채 한국인의 삶에 스며 들었다. 한국 축구의 오랜 무기도 체력, 그리고 정신력이었다. 전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상대적으로 '축구 선진국' 유럽, '선수 수출국' 남미에 열세였던 1990년대 한국 축구의 이미지는 '투혼'이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성인 축구 대표팀 사상 첫 외국인 감독으로 부임한 2001년, 한국 축구계는 오히려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체력이 약하다는 지적에 당황했다. 한국 선수들은 경기 중에 체력을 올바르게 쓸 줄 몰랐고, 실질적으로 체력 그 자체도 약했다. 선수들이 모자라기 보다 과학적이지 않은 트레이닝과 식습관의 영향이었다. 

1990년대를 대표한 축구 선수 홍명보 현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는 "선수들이 몸을 던져 수비하는 것은 면피를 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수비는 도움이 안된다. 정신력이라는 것은 경기 중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능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체력은 정신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체력이 떨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정신력이 약해지는 것도 당연지사다. 좋은 판단을 하기 어렵고, 실수가 나오기 쉽다. 다리가 풀리고 숨이 차는 데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간힘을 쥐어짜도 체력과 정신력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를 막을 수는 없다.

♦︎ 체력은 과학이다

축구 경기가 끝나고 나서 많은 지도자들과 해설가, 평론가들이 "선수들의 체력이 부족했다"거나 "수비수가 집중력을 잃었다"며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직설적으로 말하면 의미없는 이야기다. 선수들의 체력이 부족했다면 그것은 감독을 포함한 코칭 스태프가 반성해야 할 문제다. 선수 관리, 체력 관리의 부실을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은 맨체스터 시티가 후반 막판 부진한 경기력을 보였을 때 경기 후 회견에서 특정 선수의 체력과 집중력에 대한 질문을 받자 "내가 90분을 뛸 수 없는 선수를 경기에 투입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초반 실점과 경기 흐름이 선수의 정신에 영향을 미쳤고, 끌려가던 경기 양상이 영향을 줬을 뿐 선수의 몸 상태에는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이제 "체력은 국력"이 아닌 "체력은 과학"이라는 방향성을 갖고 지도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17일 월요일부터 21일 금요일까지 대한축구협회난 파주축구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피트니스 코칭 코스 레벨1' 과정을 열었다. 김남표 주강사를 필두로 오성환 대한 축구협회 기술교육실 피지컬 분과위원, 주창화 호남대학교 교수, 정태석 박사등이 코스를 책임졌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에 축구 대표팀의 일정이 모두 사라졌고, 어떤 행사도 개최하기 어려워진 상황 속에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한 움직임은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이번 강습회에는 모든 수강생들과 강사들은 마스크를 필수로 써야했고, 체온 체크 또한 엄격하게 매 교육 과정 전에 꼬박꼬박 이루어졌다. 외부인들과 격리된 층을 이용하여 최대한 집단감염 사태를 막기 위한 대한축구협회의 노력이 엿보였다.

▲ 다양한 주제로 진행된 피지컬 코칭 강습회


♦︎ 축구 지도자들이 알아야 하는 스포츠 과학은?

강습 첫날은 정정용호의 2019년 FIFA 폴란드 U-20 월드컵 준우승 당시 피지컬 코치로 기여한 오성환 박사가 '스포츠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단에 섰다. 

스포츠 과학 분야는 각 영역별로 나뉘게 되며 각 파트별로 얼마나 스포츠 과학쪽에 가까운지 혹은 경험적인 측면에 많이 의존되는 지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졌다. 스피드와 스트렝스와 같은 영역은 가장 스포츠과학적인 부분으로서 훈련과 강화, 회복적인 측면에서 과학적 기반으로 정답이 있다는것이 오성환 박사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데이터 해석이나 주기화적인 측면은 좀 더 경험적인 측면이 많이 가미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기화는 스포츠과학 분야에서도 가장 덜 과학적인 측면으로서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한 부분이 많아 경험적인 측면에 많이 의존한다고 했다.

좋은 피지컬 코치가 되기위해서는 해부학 및 역학, 생화학, 영양학, 운동 생리학, 운동 학습 등과 같은 학문을 공부해야 한다. 오성환 박사는 인간의 몸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완벽히 이해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훈련 프로그램 몇가지를 던져주고 수강생들을 돌려보내는것 보다, 메커니즘을 이해하기위해 도움을 주고나면 코치들 스스로가 좋은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것이 오성환 박사의 생각이었다.

이후 이어지는 수업에서는 자신이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논문을 찾고 그 논문의 공신력과 인용지수를 파악하여 좋은 논문을 찾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논문은 어떻게 연구 되었는지 그 방법론과 변수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피지컬 코치들은 자신이 알고싶은 싶은 부분에서의 정확한 연구 방법론이 반영된 논문을 찾아야 한다는것이다.

이어 주창화 호남대학교 축구학과 교수의 운동 생리학 강의가 시작되었다. 전반적으로 대학교의 체육학과 혹은 스포츠 과학과에서 몇 학기 동안 이루어지는 강의를 2시간만에 배워야하는 내용이다보니 진도도 빠르고 수준이 높았다. 이날 강습에 참석한 한 코치는 "피지컬 코치들이 알아야 하는 기초적인 학문들은 코스에 들어와서 배운다는 생각보다는 이미 사전에 공부가 잘 된 상태에서 들어와서 다시 복습하고 이론을 정확하게 머릿속에 적립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코스에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근육의 종류, 근 수축, 골격근, 효소, 단백질 합성 및 세포의 구조 등도 교육했다.

▲ 압박도 과학이다 ⓒ대한축구협회


♦︎ 훈련을 며칠 쉬어야 체력이 떨어질까? 

지도자들이 궁금했던 것은 '회복의 극대화'였다. 주창화 교수는 "3~4일정도 훈련이 없을경우에 바로 체력적으로 하강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정신적인 회복을 위해 2주 혹은 3주 동안 휴가를 줄 수 있지만 휴가기간에 일주일에 3~4회, 20~30분 고강도 훈련을 하라고 선수들에게 지시해야된다"고 설명했다.

정태석 박사의 해부학 강의도 이번 코스의 한 부분이었다. 피지컬 코치들이 신체훈련을 시키거나 그 방법론을 공부할 때 인간의 몸의 각 구조와 위치, 명칭을 모른다면 그것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 코치는 "기초적인 부분이지만 코스에서 가르치는 해부학적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사전에 미리 공부해 오는것이 필요하다"며 다음 강습에 참가를 준비하는 지도자들에게 조언했다.

오성환 박사는 코디네이션에 대한 부분을 강의실에서 이론으로 가르쳤고 그 이후에 현장 실기로서 피치위에서도 가르쳤다. 오성환 박사가 설명한 코디네이션의 정의는 신체활동시 "중추신경계의 근육간의 상호작용" 이었다. 이것을 지도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기위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것"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코디네이션 훈련은 예를들어 패스를 할 때 양손에 테니스공을 들고 할 수 도 있고, 패스게임을 할 때 사각형 안에 장애물을 두거나, 접근 불가 지역을 만들 어서 그 공간으로는 패스도 못하고 선수들도 이동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또한 한쪽 눈을 가리게 할 수 도있고, 공을 더 작은 공을 사용할 수 도있다. 이 모든 조건들을 다 같이 사용할 수 도있다. 이렇게 생각할 부분이 동시에 많아지게되면 그만큼 뇌는 다양한 방면에서 생각해야되며 인지능력, 즉 코디네이션 능력이 향상된다는것이다.

17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되는 본 강습회는 21일 회복이라는 주제를 마지막으로 모든 수업을 마쳤다. 이제 10월 20월 21일 시험을 앞두고 있다. 시험날이 오기 전까지 강사가 준 과제와 시험을 준비해야한다.

한국의 경우에 올해 KFA 피트니스 레벨1 코스가 열렸고 내년부터는 AFC 피트니스 레벨1 코스도 열린다. 현재 상황에서 AFC 레벨2 까지 존재하는 이 코스는 향후 몇년안에 법으로 제정되어서 각 팀에 피지컬 코치로 등록을 하려면 이 자격증이 필요하게 된다.

축구계에 코치들은 이미 많은 숫자가 포진하고 있어 포화상태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레드오션인 축구 산업에서 전력분석관, 피지컬 코치같은 포지션은 아직 자리가 좀더 많이있고 블루오션인 상태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양질의 피지컬 코치를 양성하고 기회를 주기 위해 올해 한번 더 코스를 개설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물론 사전지식 없이 코스에 지원한다면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이번 강습을 모두 소화한 지도자는 "지원자들은 미리 사전에 스포츠과학 분야의 학문을 많이 공부하고 들어가기를 추천한다. 그렇지 않다면 코스에 들어가서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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