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기현 경남FC 감독

▲ 현역 시절 설기현 감독의 별명은 브라질의 히바우두처럼 뛰었다고 평가 받아 '설바우두'였다. ⓒ대한축구협회

(편집자 주) 스포티비뉴스는 지난 7월부터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축구계 인사들를 소환해 A대표팀 경기를 중심으로 현역 시절을 회상하고 무용담(?)도 나누는 '나의 A-스토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파치' 김태영(천안시 축구단 감독)을 시작으로 '조헤아' 조현우(울산 현대) 골키퍼, '진돗개' 허정무(대전 하나시티즌 이사장), '황새' 황선홍(대전 하나시티즌 감독), '세오' 서정원(전 수원 삼성 감독), '왼발의 달인' 하석주(아주대 감독), '용대사르' 김용대(라커룸 코리아 대표)까지 만났습니다. 연재를 거듭하면서 A를 구성하는 다양한 인물을 만나달라는 독자 분들의 이메일, 댓글 등이 생각 이상으로 쏟아졌습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그 폭을 넓히려 애쓰겠습니다. 전, 현직 선수는 물론 이들의 뒷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있는 주변인까지 두루두루 만나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스포티비뉴스=신문로, 박주성 기자 이성필 기자] '설바우두' 설기현(41) 경남FC 감독은 벨기에 주필러리그 로얄 앤트워프(2000~2001년), 안더레흐트(2001~2004년)에서 프로 생활 초석을 다졌다. 앤트워프에서는 27경기 11골을 넣었고 안더레흐트에서는 94경기 21골로 쏠쏠한 활약을 했다.

잉글랜드로 무대를 옮겨 챔피언십(2부리그) 울버햄턴(2004~2006년) 76경기 10골, 프리미어리그 레딩(2006~2008년) 34경기 4골, 풀럼FC(2007~2010) 26경기 1골을 기록하며 유럽에서 절정을 맞이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프로리그 알 힐랄(2008~2009)에서 24경기 1골을 기록한 뒤 K리그를 택했다. 포항 스틸러스(2010년) 18경기 7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1년 포항 팬들로부터 연봉, 전지훈련비, 재활비, 생일케이크 가격이 포함된 '손해배상 청구서(?)' 걸개를 받으며 울산 현대에서 45경기 3골을 넣었다. 2012~2014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73경기 11골을 넣었고 2015년 전격 은퇴한 뒤 성균관대에서 지휘봉을 잡으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17년 축구대표팀 코칭스태프로 대표팀과 다시 인연을 맺은 설 감독은 성남FC 전력강화실장을 거쳐 지난해 12월 K리그2 경남FC 선장이 됐다. 유럽물을 먹은, 개방적인 지도 방식을 갖춘 설 감독이 성적에 따라 흐름이 완전히 바뀌는 경남과 궁합이 맞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경남은 돌풍의 팀이었다. 2017년 2위 부산 아이파크와 승점 11점 차이라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K리그1 승격에 성공했다. 단순히 승격 하나로 돌풍의 팀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2부 리그에서 올라온 경남은 2018년 1부 리그 상위권에서 경쟁했다. 말컹을 앞세운 공격은 매서웠고, K리그1 준우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가벼웠던 경남은 브레이크 없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9년 리그 11위로 승강 플레이오프에 추락했고, 부산에 밀려 K리그2로 강등됐다. 승격과 준우승,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까지 꿈같았던 시절은 너무나 짧게 끝났고, 다시 시련이 시작됐다. 경남은 2020시즌을 부활의 출발점으로 정하며 설 감독을 선임했다. 그렇게 경남 역사에 설 감독이 섞였다.

▲ 설기현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

감독 설기현, “제 축구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설 감독은 화려한 선수 시절과 달리 지도자 경력은 초라하다. 성균관대 감독을 하고 대표팀 코치를 잠깐 한 게 전부인 상황에서 경남을 맡았다. 프로 감독이 처음이다 보니 당연히 힘든 시간이 찾아왔다. 또 역대급 K리그2 경쟁까지 펼쳐지며 설 감독은 하루하루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해 K리그2 경쟁이 참 힘드네요. 쉽지 않습니다. 강한 팀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두 팀 정도가 상위권에 항상 있었어요. 지금은 완전히 강팀도 없고 수원, 부천, 제주, 대전, 경남까지 팽팽합니다. 거기에 승강 플레이오프가 없으니 구단들이 서로 올라가려고 엄청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FC안양, 부천FC 1995, 서울 이랜드FC 모두 승격을 꿈꾸고 있죠. 누구에나 문은 열려있는 것 같습니다.”

설 감독은 선수 시절 유럽에서 활약하며 승강제를 경험했다. 1, 2부리그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 반대로 K리그는 리그 제도만 붙였다 뜯고 다시 고치기를 반복해 매번 정통성 시비에 휘말렸다. K리그에 승강제는 먼 이야기 같았고 2012년에서야 도입, 광주FC와 상주 상무가 처음으로 강등팀이 됐다.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잔류와 강등 경쟁이 시작됐다.

“승강제가 생기면서 감독의 수명과 계약 기간이 짧아졌습니다. 그만큼 치열하다는 뜻이죠. 예전이면 시즌 후반에는 우승권이 그들만의 리그가 됐습니다. 플레이오프 경쟁까지도 그랬죠. 그 외 팀들은 리그 성적의 윤곽이 나오면 나머지 경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K리그1에는 강등이 있고, K리그2에는 승격이 있어서 끝까지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경남은 시도민구단이다. 어쩔 수 없이 정치적 구조와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단장이나 대표이사가 자주 바뀌고, 이적시장에 쓸 수 있는 돈의 규모도 크게 달라진다. 자립하지 못해서 시도민구단이 아니라 시청, 도청 구단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겉만 번지르르한 K리그의 냉정한 현실이다..

그래서 설 감독은 자신의 축구 하나만 바라보고 있다. 그게 정답이고 앞으로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단마다 그런 특징이 있죠. 저는 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겨도 의미 있는 승리를 해야 합니다. 리그는 토너먼트와 달리 한 경기, 한 경기가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방향이 중요합니다. 처음 생각했던 것에 부합하면서 결과가 나오는지가 중요합니다. 경남을 맡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죠. 항상 이런 어려움을 내 능력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핑곗거리가 없습니다. 선수 구성 뭐 그런 이야기를 할 게 아니라 어떤 안 좋은 상황이라도 제 능력으로 그걸 극복해야 하죠.”

프로에서 성적지상주의를 앞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철학 없이 승리만 바라왔던 것이 사실이다. 선수들은 '팬'보다 '승리 수당', '골 수당'에 더 욕심을 냈다. 구단 경영진은 모기업을 위해, 시도민구단을 만들어준 정치인, 행정가들을 위하는 모습에 골몰해 비판도 쏟아졌다. 그럴수록 지도자가 중심을 잘 잡고 선수단과 의미는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감동을 남겨야 한다.

“그런 게 굉장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넘어야 할 산이죠. 구단의 현실, 여러 가지 축구 외적인 문제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감독으로서 팀을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특별한 축구가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죠. 그걸 확인만 한다면 나중에 큰 자산이 될 것 같습니다. 경남이라는 좋은 팀에 와서 감독해 감사하게 생각해요. 시도민구단이지만 굉장히 좋은 환경이고 다른 시도민구단보다 좋은 팀입니다. 감독은 능력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감독으로서 내가 하려고 했던 축구를 제대로 해야 하죠. 그게 중요한 것이지 그 외 환경은 저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 설기현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

승격보다 승격할 만한 팀이 돼야 한다


설 감독이 이끄는 경남의 목표는 K리그1 승격이다. 하지만 상황이 쉽지 않다. 현재 리그 4위로 선두 제주 유나이티드와 승점이 9점이나 벌어져 있다. 4위까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에 승격의 기회가 있지만 그래도 한 단계라도 높은 곳에 올라가야 승격 가능성이 커진다. 설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지만, 축구는 쉽지 않다.

“승격은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축구에 많이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능력의 문제죠. 제가 아직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제가 원하는 부분에 도달하기 위해 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저 계속 원하는 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팀이 됐을 때 성적도 도달할 거로 생각합니다. 리그는 마라톤과 비슷해요. 처음부터 쭉 치고 나간다고 해서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하지 않아요. 뛰다가 지칠 수도 있고, 과욕을 부리다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제가 생각한 목표로 시간 내 들어갈 수 있도록 꾸준히 뛰는 것입니다. 지든 이기든 중요한 건 우리가 하고자 하는 걸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승격이 목표가 아니라 승격할 만한 팀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경남의 추락은 설 감독도 잘 알고 있다. 꾸준함이 없는 팀은 절대 좋은 팀이 아니다. 설 감독은 경남 축구의 색깔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꾸준한 모습을 보이려면 그 팀만의 특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남을 생각하면 아직 특별한 색깔이 떠오르지 않는다. 설 감독은 경남에 그 색깔을 칠하는 화가가 되기를 원한다.

"급격하게 좋아졌다가 안 좋아지는 그런 건 좋은 팀이 아닙니다. (경남도지사인 김경수) 구단주께서 말씀한 게 경쟁력 있는 팀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우리 팀의 색깔을 갖는 것이 중요해요. 대구FC처럼 '선 수비 후 역습', 전북 현대처럼 '닥공(닥치고 공격)', 강원FC처럼 '점유율 축구' 등 그런 색깔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준비한 전술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색깔을 가져야 합니다. 그걸 팀에 입히고 사람들이 기대하면서 경기장에 올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탄탄한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 설기현 감독과 선수들 ⓒ한국프로축구연맹

◆딜레마에 빠졌지만, '설기현 감독' 자신을 만드는 중

2002 한일월드컵은 한국 축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선수로 활약하면서 4강 신화를 함께 이끌었던 설 감독은 누구보다 거스 히딩크(74) 감독의 리더십을 알고 있다. 설 감독은 여기에 더해 진심이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히딩크 감독님은 정말 훌륭했고, 특별한 감독이었습니다. 우리가 접해보지 못한 것들을 보여줬죠. 선수단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밀당(밀고 당기기)도 중요한데 전 그런 걸 잘못하겠습니다.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다만, 진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수에게 내 진심을 보여주면 최선을 다할 거라고 생각해요. 되도록 좋은 말을 많이 해줘서 자신감을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도 선수 시절 감독이 진심으로 말하면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해외에서 오랜 시간 선수 생활을 했던 설 감독은 다른 국내 지도자보다 선수들에게 많은 자유를 준다. 함안 클럽 하우스에 머물지 않는 선수들은 자택에서 출퇴근 형식으로 운동을 한다. 홈경기가 있는 날에도 마찬가지다. 구단 버스에 미혼 선수들만 타고 홈구장 창원축구센터로 출근하는 파격(?)을 보이는 중이다. 과거 해외에서 설 감독이 경험하며 좋았던 부분을 경남 선수들에게도 적용하고 있다.

“간섭을 많이 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할 때 하고 끝나면 집에 보냅니다. 되도록 집에 보내려고 하죠. 잘하든 못하든 빨리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가라고 합니다. 못하면 위로받고, 잘하면 좋은 시간 보낼 수 있어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은 집에 있습니다.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저도 갇혀 있는 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최대한 자유를 보장합니다. 프로이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합니다. 진짜 훌륭한 선수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합니다.”

설 감독의 말대로 K리그는 과거 합숙하던 문화에서 많이 빠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팀 성적이 바닥을 치면 '위기감 느낀 00구단 클럽하우스서 합숙 돌입', '선참들이 숙소에서 합숙 자청'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자동으로 나온다. '유럽파' 설 감독이 들으면 아연실색할 일이다.

“구속받고 같이 뭘 하는 것을 저도 싫어했습니다. 저도 그게 오히려 제 컨디션 유지에 불편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만 해주고 나머지는 선수들이 하길 원합니다. 스스로 관리를 못 하면 독이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못하는 선수들은 관리해주려고 합니다. 우리는 홈 경기 당일, 집에서 오라고 합니다. 클럽하우스에서 자는 선수들만 버스에 타고 나머지는 자차로 옵니다. 유럽에 있을 때 1시간30분 전에 경기장에 도착해야 했는데 집에서 출발할 때 아내와 아이가 문 열고 잘하라고 배웅할 때 힘이 났습니다. 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파이팅'을 같이 말하면서 힘을 받았죠.”

이제 프로 감독 10개월 차에 접어든 '설기현 감독'은 자신을 만드는 중이다. 이상적인 지도자상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선수와 감독은 전혀 다른 분야라 그렇다. 20년 가까이 선수 생활을 했던 설기현이지만 감독 경력은 일천하다. 그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단계에 있었다.

"처음에는 특별한 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살아남는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소소한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완벽한 팀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정확한 목표가 있었는데 그게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봤을 때 좋은 팀이라고 생각하는 게 뭔지 모호해지긴 했는데 처음에 가졌던 생각들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게 리그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함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걸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냥 감독하는 것에는 절대 만족하지 않습니다. 딜레마에 빠져 있는데 큰 것보다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축구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에 있습니다. 중요한 건 쉽지 않다는 거예요. 선수 때는 죽기 살기로 뛰면 됐는데 감독 되니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선수들이 해줘야 하죠. 벤치에서 뛸 수도 없고, 그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초보 감독 설기현은 지금도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다. 역대급으로 치열한 이번 시즌이 끝난 후 설 감독은 한 뼘 더 성장하지 않을까. 10년 후 이번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를 복기하며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지고 굳건한 지도 철학이 생성되기를 기대하며. 

<끝>

▲ 설기현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티비뉴스=신문로, 박주성 기자 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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