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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A-스토리]'독도남' 박종우①런던 올림픽 후…UCL에서 볼 수 있었다

네이버구독_201006 박대성 기자, 이성필 기자 pds@spotvnews.co.kr 2020년 09월 10일 목요일
▲ 박종우(맨 앞)가 2012년 런던 올림픽 영국 연합 팀과 16강전 뒤에 포효하고 있다

[스포티비뉴스=부산, 박대성 기자 이성필 기자] 2012년 8월11일, 홍명보 감독(51, 현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이 이끄는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축구에서 한국 역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쟁처럼 치열했던 동메달결정전에서 일본을 꺾은 뒤 느닷없이 '독도 세리머니'로 전 세계 집중을 받은 이가 있다. 축구 팬들은 박종우(32, 부산 아이파크)를 '독도남'으로 기억하고 있다.

박종우는 '독도 세리머니' 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 50조 위반을 근거로 스포츠중재재판소(CAS) 판결을 기다렸다. 6개월 뒤에야 메달을 받았지만, 축구 외적인 관심에 부담이 컸다. 공교롭게도 한일전 하루 전인 10일, 이명박(79) 전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하면서 독도는 박종우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하지만, '독도남'이 아닌 '축구 선수' 박종우의 내면을 보는 것도 중요했다. 많은 활동량에 준수한 패스로 유럽의 관심까지 받은 선수였다. 구단 협상에서 어긋나 유럽행은 무산됐지만, 중국과 중동에서 느낀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올림픽 동메달 쾌거 뒤에 2014 브라질월드컵 슬픔까지, 굴곡 많은 사연을 가슴에 품고 있는 박종우, 뜨거웠던 8월 말 어느 날, 부산의 김해국제공항 인근 한 카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방어하기 위해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며 그와 마주했다.

▲ 박종우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주전 멤버로 중원을 누볐다

'별들의 전쟁 UCL'에서 박종우를 볼 수 있었다?

런던 올림픽은 박종우에게 해외 이적 기회를 선물했다. 4강 브라질전은 벤치 대기였지만, 멕시코, 스위스, 가봉을 상대하면서 국제무대 경쟁력을 입증했다. 애런 램지(30, 유벤투스), 대니 로즈(30, 뉴캐슬 유나이티드), 톰 클레버리(31, 왓포드), 다니엘 스터리지(31, 트라브존스포르), 라이언 긱스(47, 현 웨일스 감독), 크레이그 벨라미(41, 현 안더레흐트 21세 이하팀 감독)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프리머리거가 포진한 영국 연합팀에 기죽지 않았고, 유럽 구단 관심까지 받았다.

올림픽이 끝나고, 가장 적극적인 팀은 파나티나이코스(그리스)였다. 그리스 슈퍼리그 전통 강호로 리그 우승을 20회나 했다. 주춤한 시즌도 있었지만, 올림피아코스와 더불어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단골로 꼽힌다.

파나티나이코스는 박종우에게 세부적인 연봉 안을 제시했다. 즉시 전력감에 주전급 대우였다. 박종우 측과 교감은 원활했지만 구단 간 협상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개인 합의 뒤에 이적료 협상에서 무산됐다.

PSV 에인트호번(네덜란드)도 박종우에게 관심을 보였다. 파나티나이코스 관심보다 덜 했지만, 유럽 5대 리그 교두보 혹은 유럽 무대 적응에 네덜란드 무대는 적합했다. 박지성(39), 이영표(43)가 거쳤던,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팀이었다.

그러나 PSV의 관심도 이적료 문제로 결렬됐다. 파나티나이코스, PSV 유니폼을 입었다면, UCL에서 박종우를 볼 수도 있었던 셈이다. 협상 과정을 말하던 박종우는 "그리스 팀으로 거의 간다 생각했다.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아쉽다.

하지만, 그때 유럽 진출에 큰 자신이 없었다. 올림픽에서 국제무대를 경험했지만 이적은 또 달랐다. 돌이켜보면 잘 버텨냈겠느냔 생각을 가끔 한다"라고 털어냈다. 참고로 파나티나이코스는 UCL 플레이오프에서 말라가(스페인)에 1, 2차전 합계 0-2로 밀려 유로파리그(UEL)로 향했고 PSV는 UEL 본선에 직행했다. 올림픽 직후 UCL PO와 본선이 열렸으니 박종우가 실제로 한 구단에라도 갔다면 UCL, UEL 가릴 것 없이 유럽클럽대항전을 뛸 수 있었던 것이다.

▲ 중국 슈퍼리그 광저우 푸리 시절 박종우

어릴 적, TV에서 봤던 에릭손 감독을 만나다

런던 올림픽이 끝나고, 유럽행과 일본 J리그행이 있었다. 파나티나이코스가 적극적이었지만, J리그 3팀이 박종우를 원했다. 쉽게 말해 골라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박종우도 투지 있는 스타일에 J리그 특유의 패스 축구까지 입히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긍정적이었다.

운명처럼 상황은 올림픽 뒤에 급변했다. 독도 세리머니로 일본 내 여론이 좋지 않았다. 유럽행이 이적료가 맞지 않았다면, 일본행은 외적인 이슈로 물거품이 됐다. 2년이 지나고 중국 광저우 푸리에서 알맞은 제안이 왔다.

당시 푸리 감독은 스벤 예란 에릭손이었다. AS로마, 맨체스터시티, 레스터시티, 잉글랜드 대표팀 등을 지휘한 명장이었다. 에릭손 감독은 직접 박종우에게 연락했고, 적극적으로 영입을 제안했다.

"유럽행이 무산됐지만, 유럽 지도자 밑에서 배울 기회였다. 어린 시절, 2002 한일월드컵 등에서 TV로 보던 감독이 날 원했다. 또 다른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에릭손 감독을 만난 뒤에 잘 이적했다 생각했다."

박종우 축구 인생 첫 유럽 감독은 큰 울림을 줬다. 특히나 선수기용술에 감탄했다. "후반전에 누군가 투입했을 때, 분위기가 단번에 바뀌는 걸 느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건 선수지만 환경을 조성하는 건 감독의 몫이다. 정말 신기했다"라며 에릭손 감독을 돌아봤다.

현대 축구의 중심 유럽에서 아시아로 무대를 옮겼지만,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고집부리지 않는 유연한 대처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크게 화를 내지 않아도, 팀 분위기가 유지됐고 성적으로 이어졌다. 덕장의 모습이었다. "역시 명장은 명장이라는 걸 느꼈다"라는 박종우 말에서 당시의 존경심이 묻어났다.

감독과 코치진은 좋았지만, 중국 리그는 힘들었다. 박종우는 혼자가 아니었고, 임신한 아내와 함께였다. 광저우는 중국 내에서도 고온다습한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가족들은 기후와 문화 적응에 애를 먹었고, 한 달 반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다. 중국에서 홀로 싸워야 했다.

장거리 일정과 예상치 않은 변수도 힘들었다. 숙소에서 원정 호텔까지 12시간이나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비가 오면 비행기 결항은 예사였다. 박종우는 "짐만 풀어 놓고 경기장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금전적인 대우가 괜찮아도 환경이 어려웠다. 축구로 무언가 보여주려는 압박감도 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나에게 중국은 힘들었다"라며 첫 해외 이적 경험을 털어놨다.

▲ 박종우(아래, 당시 광저우)는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1년 뒤에 중동 무대로 적을 옮긴다

힘들었던 중국, 반대로 중동은 '더할 나위 없었다'

첫 해외 이적은 숨 가쁘게 지나갔다. 중국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축구에만 집중하며 투지를 불태웠다. 푸리에서 1년이 지나고, 2015년 여름 아랍에미리트(UAE)의 알 자지라SC를 통해 중동 무대에 발을 디뎠다.

중동은 상당히 좋은 기억이었다. 무엇보다 가족들이 편안하게 지냈다. 후배들에게 중동과 중국 제안이 온다면, 중동행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이유다. 여유롭고 조용한 분위기에, 유럽에서 가져온 육아와 교육 시설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유럽 축구팀들이 단기 전지훈련지로 자주 찾아 교류가 활발하고 스카우트들의 눈에 들 기회도 많은 편이다.

"중동 팀으로 이적하니 차원이 달랐다. 중국과 더위는 똑같지만, 습도가 없었다. 그늘로 가면 시원했다. 유럽과 비슷한 환경에 사람들도 품위 있었다. 중국도 돈이 많아 시스템이 좋지만, 환경적인 부분은 바꿀 수 없다. 가족들도 만족했다. 두 번째 이적이라 여유도 있었다."

당시 출장 차 UAE와 카타르에 있었던 기자도 박종우를 만나려고 했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무산됐다. 대신 그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구단 시설이 너무 좋아요. 운동하기 진짜 좋은 환경이네요. K리그 구단 관계자들이 한 번 보고 갔으면 좋겠다"라고.

환경적 어려움이 해결되자, 축구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입단 당시, PSV에서 뛰던 제페르손 파르판(36,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이탈리아 세리에A AS로마, 유벤투스에서 304경기 96골 52도움을 기록했던 미르코 부치니치(37)가 팀 동료였다. "티를 내면 안 되지만, 내가 어떻게 이 선수들과 뛰지"라던 첫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훈련장에서 부딪히고 호흡하니 이름값은 논외였다. 오히려 유럽에서 아시아에 왔지만 겸손하고 자만하지 않는 모습에 감탄했다. 수준급 선수 영입과 돈을 투자하고도 우승을 하지 못해 빨리 헤어졌지만, 그날의 우정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박종우는 알 자지라에서 홀로 분투했다. 팀은 올바르게 재편됐고 승승장구했다. 2016년 FA컵과 2016-17 아라비안 걸프 리그 우승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중동에서 기량을 인정받았고, 2017년 여름 에미리트 클럽으로 이적했다. 육아, 교육, 거주 환경, 외부적 모든 것이 좋았지만 축구적인 부담에 지쳤다. 에미리트는 중하위권 팀이었다. 강등 싸움에 진이 빠졌다. 구단은 박종우에게 연봉 보존에 1년 연장 제안을 했지만, K리그 복귀를 선택했다.

"중동 생활은 좋은 기억뿐이다. 모든 것이 유럽 시스템이었다. 아내는 중동에서 1년 연장 제안을 수락하길 원했다. 하지만 축구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한국에서 안정을 찾고 싶었다. 가끔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라도 중동에 더 있으면 좋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하긴 한다.

"런던 올림픽 뒤에 유럽행이 무산되고, 아시아 무대에서 도전을 결정했다. 유럽에서 다른 축구를 경험했다면 어떤 축구 인생이 펼쳐졌을까. 하지만 중국과 중동에서도 값진 경험을 많이 했다. 후회는 없다."

꽤 경험을 쌓아 현재는 소속팀의 중심축이 된 박종우, 분명한 것은 런던 올림픽이 그의 축구 인생 분기점이었다는 점이다.

<②편에서 계속…>
 
스포티비뉴스=부산, 박대성 기자 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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