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팀 막내에서 어엿한 '캡틴'으로 성장한 손흥민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부산, 박대성 기자 이성필 기자] 한국 축구에서 '2012 런던 올림픽 세대'는 4강을 경험한 '2002 한일 월드컵 세대' 다음으로 중요하다는 평가가 늘 따라붙었다.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획득했고 2009년 이집트에서 열렸던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 세대 일부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런던을 거쳐 2014 브라질월드컵까지 홍명보(51, 현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 감독과 함께 성장했기 때문이다.

앞뒤로 연속성 있게 운영된 런던 세대들은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동메달 기쁨을 접어두고, 1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면 더 그랬다.

당시 한국 축구는 혼돈의 시기였다. A대표팀이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에서 충격적인 패배로 비난의 홍수를 피하지 못했다. 2011년 11월15일, 당시 FIFA 랭킹 146위 레바논에 1-2로 덜미를 잡혔다. 

한국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레바논과 한 조였다. 2010 남아공월드컵 지역 예선을 무패로 통과했기에 무난한 결과를 예상했다. 하지만 '레바논 쇼크'에 여론은 들끓었고, 대한축구협회는 12월7일 조광래 감독(66, 현 대구FC 사장)을 전격 경질했다.

축구협회는 최강희 감독(61, 상하이 선화 감독)을 소방수로 낙점했다. 하지만, 최 감독이 원하지 않았던 자리였고 최종예선이 끝나면 지휘 중이었던 전북 현대 복귀로 절충안을 찾았다.

최 감독은 선임 후 런던 올림픽과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했던 박종우(31)를 대표팀에 차출됐다. 첫 선발은 2012년 10월 이란과 최종예선 4차전이었다. 악명높은 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데뷔전을 치른 것, 10만 명에 가까웠던 남성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 압박을 뒤로하고 기성용(31, FC서울) 포지션 파트너로 선발로 나서 77분 동안 뛰었지만 0-1 패배를 막지 못했다.

'더러운 축구'를 구사하던 카를로스 케이로스(67, 현 콜롬비아 감독) 감독과 이란 앞에 너무 착하게 맞선 결과였다. 박종우도 나름대로 신경전에 말리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전반 38분 경고를 받았다. 관중석에서 날아오는 돌과 야유가 선물이었다. 

▲ 주전 멤버는 아니었지만, '런던 올림픽 세대' 박종우(오른쪽)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세계의 벽을 실감했다

찬란했던 런던 올림픽의 기억은 사라지고 월드컵의 벽은 높았다

한국은 우여곡절 끝에 2위(승점 14점)로 본선에 진출했다. 최 감독은 약속대로 전북에 돌아갔다. 월드컵까지 1년 남은 상황. '런던 올림픽 신화' 홍명보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짧은 기간에 대회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 수년간 발맞춘 런던 세대들이 대거 대표팀에 합류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런던 세대에 이근호(35, 울산 현대), 손흥민(27, 토트넘 홋스퍼)이 추가된 정도 아니냐는 비판까지 일었다. 짧은 준비 기간에 대표팀 발탁은 소속팀 활약에 좌우될 거라는 원칙도 흔들렸다. 월드컵 직전 미국 마이애미 전지훈련 컨디션도 온전치 않았다. 황열병 주사 접종 시기가 늦어 선수들의 몸은 무거웠다.

"홍 감독님의 장점은 선수를 하나로 모으는데 있었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런던 올림픽 선수들이 많이 뽑혔다고 생각한다. 모든 건 결과론적인 것 같다. 우리가 성적을 냈다면 문제없었을 것이다. 준비 기간은 짧았고 기대는 컸다."

불안한 기운에도 출발은 괜찮았다. 아마존 입구 도시로 불렸던 쿠이아바에서 열린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 후반 23분, 이근호가 역습에서 과감하게 시도한 중거리 슈팅이 '기름 손' 이고르 아킨페예프(34, CSKA 모스크바) 손에 맞고 골망을 흔들었다. 6분 뒤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37, 은퇴)에게 실점했지만 1-1 무승부는 나쁘지 않았다.

승점 1점을 얻은 기쁨은 잠시였다. 벼락치기 준비는 복병에 먹잇감이 됐다.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1승 제물이라 여겼던 '북아프리카 다크호스' 알제리에 충격적인 패배를 맛봤다. 경기 전 바히드 할릴호지치(68) 감독 경질설, 팀 내 불화설이 돌았다.

하루 전 공식 기자회견에서는 할릴호치지 감독이 알제리 취재진과 선수 선발을 놓고 설전까지 벌였다. 누가 봐도 금이 가던 '당나라 부대'였다. 그렇지만, 연속성이 없었던 한국을 폭격했다. 전반에만 3골을 몰아쳤다. 손흥민이 후반 15분, 구자철이 27분 골을 넣으며 불씨를 살렸지만, 결과는 2-4 완패였다.

런던 세대는 차원이 다른 월드컵에서 고개를 떨궈야 했다. 상파울루에서 치른 벨기에전은 '세계의 벽' 정점이었다.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본 박종우조차 혀를 내둘 정도였다. 전반 45분 스테번 드루프(32, 로얄 안트워프)가 김신욱(32, 상하이 선화)의 발을 밟아 퇴장당했다.

승리에 유리한 조건이었지만, 티보 쿠르투아(28, 레알 마드리드)가 골문을 지키고 드리에스 메르텐스(32, 나폴리), 얀 베르통헌(33, 벤피카), 마루앙 펠라이니(33, 산동 루넝), 에덴 아자르(29, 레알 마드리드), 케빈 데 브라이너(29, 맨체스터 시티), 무사 뎀벨레(32, 광저우 푸리) 등 당시 유럽 각국 리그를 휘젓던 벨기에 황금 세대를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브라질월드컵은 철저한 준비없이 세계에 도전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가슴 아픈 교훈을 남긴 대회였다.

"벤치에서 봤지만, 세계의 벽이 높다고 느꼈다. 벨기에전에서 확실히 그랬다. 피지컬부터 달랐다. 키가 큰 편이었던 (기)성용이가 100% 점프로 볼을 따내려고 하는데, 펠라이니는 그냥 서서 가슴 트래핑을 하더라. 후반전, 옆에서 에당 아자르가 몸을 푸는데 스피드가 다르더라. 그냥 달리는데 잔디가 파였다. 세계의 벽은 정말 높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박종우(왼쪽)와 김신욱(오른쪽)이 '대표팀 막내 시절' 손흥민(가운데)과 환하게 웃고 있다 ⓒ박종우 제공

2014년 '막내' 손흥민, 2018년 '캡틴' 손흥민

박종우는 런던올림픽 주전이었지만, A대표팀과 큰 인연이 없었다. 2010년 부산 아이파크 입단 뒤 프로 경력 10년 동안 평가전 12회, 월드컵 지역 예선 2회, 동아시안컵(2013년) 1회 출전이 전부였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 간헐적으로 뽑히면서 다양한 동료들과 호흡했다, 홍 감독의 부름에 월드컵 막바지 준비, 본선에 합류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 점검에 박차를 가하던 2017년에는 신태용(50) 감독이 유럽 원정 2연전(러시아, 모로코)에 박종우를 차출했다.

꾸준하진 않지만, '막내' 손흥민에게서 어엿한 '중심' 손흥민을 지켜봤다. 박종우는 "올림픽 준비 당시에는 (손)흥민이라는 아이를 몰랐다. '유명세'로는 현재의 이강인(19, 발렌시아CF) 정도도 아니었던 거로 기억한다. 그저 해외에서 뛰는 어린 친구 정도로 기억했다. A대표팀에서 처음 만난 건 최강희 감독님이 이끌던 시절이다. 그때도 완전 막내였다. 예전으로 따지면 허정무(65) 감독님이 남아공월드컵에 갔을 당시 대표팀 내 막내였던 이승렬(31)과 김보경(31, 전북 현대)을 보는 느낌"이라며 첫 만남을 떠올렸다.

손흥민은 브라질 월드컵 1년 뒤 레버쿠젠(독일)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프리미어리그(PL) 데뷔전은 힘겨웠지만, 치열한 경쟁을 이겨냈고 토트넘과 프리미어리그 대표 선수로 성장했다. 박종우가 대표팀에 돌아왔던 2017년 10월, 손흥민은 2016-17시즌 47경기 21골 9골로 상승세였다. 

대표팀에 없어선 안 될 선수로 성장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내가 뭐라고 (손)흥민이를 평가하겠나"라며 손사래를 치던 박종우는 "정말 좋은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본 흥민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옆에서 꾸준히 보지는 못했지만, 태도는 같았다. 쾌활하게 장난도 치고, 진지한 이야기를 들을 줄 안다. 확실히 해외에서 다국적 사람을 만나니까 인간관계를 잘 맺는 것 같다"라고 미소지었다.

손흥민은 함부르크에서 78경기 20골 3도움, 레버쿠젠에서 87경기 29골 11도움, 토트넘에서 229경기 85골 47도움을 기록했다. 2019년 11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크르베나 즈베즈다(세르비아) 원정에서 멀티골로 유럽 무대 통산 123골을 터트리며 전설 차범근(67, 121골)을 넘었다. 이제는 모든 순간이 한국 축구의 역사다.

장난치던 막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로 성장에 뿌듯한 박종우다. 그는 "이제는 모든 분이 알고 계신다. 감히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했다. 종종 연락하지만, A대표팀에 같이 있던 시간이 많지 않아 경기를 말하지 않았다. 선배로서 항상 응원한다. 손흥민이 잘 돼야 후배들도 길을 따라간다"며 박수를 보냈다.

칭찬하면서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손흥민이 유럽에서 활약할수록, 대표팀에 거는 기대는 커진다. 축구 팬들은 PL이나 UCL에서의 경기력을 대표팀에서 보여주길 원한다. 압박이 상상을 초월할 수밖에 없다.

"소속팀과 대표팀은 정말 다를 것이다. 2014년에는 자기 것만 해도 모든 사람이 칭찬했다. 지금은 모든 걸 제어 해야 한다. 정말 힘들 것이다. 기대치가 높기에 경기력이 안 나오면 모든 화살이 날아온다."

런던 올림픽 후 파나티나이코스(그리스), PSV에인트호번(네덜란드)에 갈 수 있었던, 유럽 축구 리그에서 손흥민과 같이 뛰었을지도 모를 박종우는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지지 말고, 조금은 여유롭게 활약하길 원했다.

"2017년에 만났을 때도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국가 대표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지만, 이제는 조금 내려놓고 그라운드를 누볐으면 한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멀리서 냉정하고 냉철하게,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진다면 분명 더 좋은 퍼포먼스가 나올 것이다. 흥민이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 런던 올림픽 동메달 직후 기성용(왼쪽), 구자철(오른쪽)과 기뻐한 박종우, 런던 세대는 축구 재단 설립을 구상 중이다. ⓒ박종우 제공

▲ 2012년, 숙적 일본을 꺾고 동메달 확정. 올림픽 대표팀이 팬들에게 만세 삼창 세리머니를 했다. 등번호 15번이 박종우다.

런던 올림픽 세대들은 한국 축구에 보답하고 싶다

런던 올림픽 세대들은 한국 축구사(史)를 다시 썼다. 한일월드컵 4강 신화가 있었다면, 런던에서 동메달 역사가 탄생했다. 런던 세대들은 축구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반드시 돌려주려고 한다.

현재까지도 꾸준히 교류하고 있다. 박종우는 중동 시절에 기성용, 구자철 등 유럽파와 시간을 보냈다. 중동 리그가 유럽처럼 추춘제라 가능했다. K리그 복귀 뒤에는 유럽파를 만나지 못했다. 겨울에 시즌이 끝나면 런던 올림픽 모임이 있는데 유럽은 한참 시즌 중이었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 보는데 반쪽 모임이었다. 홍 감독님께서,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동료들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고 하시더라. 너희들은 연령대 대표팀이었고, 2002 월드컵처럼 큰 업적을 만들었으니 꾸준히 모임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런던 세대들은 재단을 만들어 유소년 축구 발전에 보탬이 되고픈 마음이 크다. 아직은 현역이라 재능 기부도 생각하고 있다. 작년 겨울부터 이야기했는데 모두가 긍정적이었고, 구체적인 그림까지 그렸다.

지난 7월, '대들보' 기성용의 국내로 돌아오면서 재단 준비 작업에 탄력을 받았다. 1~2년 안에 큰 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런던 세대는 좋은 선례로 귀감이 되고 싶었고, 가까운 미래에 후배들이 이어갔으면 했다.

"올림픽 뒤에 많은 축하를 받았다. 축구 인생에서도 큰 이득을 봤다.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이라도 베풀고 싶다.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라는 박종우 말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경기력으로 보면 제2의 전성기가 온 것 같은 올해, 박종우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까.  
 
스포티비뉴스=부산, 박대성 기자 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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