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기괴괴 성형수'의 전병진 PD(왼쪽)와 조경훈 감독. 제공|트리플픽쳐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이제는 'K애니'다. 장편 애니메이션 '기기괴괴 성형수'(감독 조경훈, 제작 에스에스애니먼트 스튜디오애니멀)가 개봉과 함께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롯데시네마 단독 개봉에도 3일 만에 2만 관객을 넘는 한편, 흥미로운 소재와 주제의식으로 또한 주목받고 있다. 해외 영화제와 시장에서도 관심이 남다르다. 초청이 확정된 해외 영화제만 12개요, 아시아 각국과 오세아니아에서 속속 개봉을 앞뒀다. 

'기기괴괴 성형수'는 '레전드'로 평가받는 오성대 작가의 네이버 웹툰 '기기괴괴' 중 '성형수'가 원작. 얼굴에 바르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대로 외모를 바꿀 수 있는 기적의 물 '성형수'를 소재로 삼은 이 기묘하고도 괴기스런 이야기는 웹툰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터. 하지만 성인 관객을 타깃으로 한 장편 애니메이션, 그것도 호러라는 낯선 장르를 앞세운 '기기괴괴 성형수'가 지금껏 걸어온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사드 사태로 막힌 중국 시장도 막막함을 더했던 터. 

제작사 스튜디오애니멀의 대표이기도 한 조경훈 감독, 프로듀서인 에스에스 애니먼트 전병진 PD는 원작의 힘, 그리고 애니메이션 '기기괴괴 성형수'의 가능성을 믿고 지난한 길을 걸어 오늘에 온 두 주역이다. '기기괴괴 성형수'가 드디어 개봉해 한국 관객과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지금 이 상황을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예상치 못했다는 두 사람을 함께 만났다. 그들에게 들은 '기기괴괴 성형수' 이야기, 그리고 '기기괴괴 성형수'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랬다.

▲ '기기괴괴 성형수'의 전병진 PD. 제공|트리플픽쳐스

-인기 네이버 웹툰 '기기괴괴'가 원작이다. '기기괴괴 성형수'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출발했나.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기획할 때는 항상 내수시장이 작다 해서 해외시장 어떻게 하냐 맞든 틀리든 솔루션 제시를 해줘야 한다. 당시 중국이 답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2013년도 차이나모바일이라는 텔레콤 회사에서 3G폰 시대 만화 서비스를 시범 사업으로 시작했다. 1년여 분석했더니 중국 소비자들의 축이 2개더라. 섹시한 로맨틱 코미디와 공포호러괴담. 전자는 중국 수위가 가볍다보니 다른 나라에서 확장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호러괴담 쪽으로 국내 만화를 찾았다. 대부분 경험담이나 떠도는 이야기를 만화화한 게 대부분이었는데 오성대 작가 '기기괴괴'는 오리지널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네이버 인기웹툰이기도 했고 독특하고 재밌더라. 스토리 텔링도, 작가 역량도 뛰어났다. 연재 첫 작품부터 일정 정도까지 나온 에피소드 중 10개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갖는 형태로 계약했다. 그것이 2015년 3월이다."(전병진 PD)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중에서도 '성형수' 편을 골라 처음으로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기기괴괴' 기획 때는 원작 웹툰처럼 옴니버스형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생각했다. 제작비도 가볍게. 그런데 중국에 '기기괴괴'가 소기되고 '성형수'가 엄청나게 이슈가 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게 2015년 7월이다. 자연스럽게 '성형수'가 중심 축에 왔다. 극장판으로 제작하고 프로젝트 규모도 키웠다. 이미지만 보여줘도 다 아는 이야기였고, 기획서 들고 중국 측과도 미팅하던 와중이었는데 그만 사드가 터졌다. 한한령이 터지니 중국에서 인기있는 아이템이라는 게 리스크가 되더라. 외부 투자자금 조달도 어려웠고, 기획이 슬림해졌다. 에스에스애니먼트, 스튜디오 애니멀이 제작을 끌어오면서 영진위 장편애니메이션제작지원사업 등으로 제작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전병진 PD)

▲ '기기괴괴 성형수'의 조경훈 감독. 제공|트리플픽쳐스
-스튜디오애니멀 대표인 조경훈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전병진 PD님이 기획을 하셨고 저는 옆에서 제작자로서 시리즈 논의를 했다. 처음부터 감독으로 참여한 건 아니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대표이자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거다. 문제는 상황이 꼬이다보니 이 작품을 핸들링할 수 있는 감독을 선임하는 게 어려웠다. 예산, 장르적 특성 등을 감안하다보니 제안했지만 고사한 분들도 계셨다. 스스로 공포영화 마니아이기도 하고 누구보다 애착이 있고 원작 또한 좋아하다보니 프로듀서에서 본격적으로 감독으로 나서게 됐다. 그러면서 접근방식을 달리 해서 원하는 스타일로 갔다.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쳤지만 힘든 게 있긴 했다. 회사 대표이기도 하면서 감독이다보니 머리 속에서 이해관계가 상충했다. 한편으로는 필요에 따라서 결정을 빠르게 할 수 있더라. 훌륭한 파트별 감독님들이 계셔서 기술적 면은 의존하면서 흐름과 관점, 감성에 집중할 수 있었다."(조경훈 감독)

"기획한 제 입장에선 스튜디오 대표가 감독이 된 건 장점이었다. 퀄리티를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감독이 높여줬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이런 일이 드물지 않다. '뽀로로'의 아이코닉스 경우도 대표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사실상 감독 역할도 한다. '언더독' 오성윤 감독도 프로듀서 출신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특수성 때문에 창작을 하려고 뛰어든 프로듀서들이 감독을 하는 게 효율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과 애니메이션 프로세스 이해하고 영상에 대해서도 이해하는 분이 연출하니까. 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결과도 좋았다고 생각한다."(전병진 PD)

-웹툰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바꾸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원작이 성형수라는 소재 자체를 중심으로 두고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저희는 성형수가 서브가 되고 예지라는 주인공이 들어갔다. 예지의 사연, 예지를 둘러싼 상황을 만들어나갔다. 원작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사건 아이디어 위에 디테일을 씨실날줄로 엮었다. 그걸 통해서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은 웹툰 특성상 의도적으로 생략된 주인공의 감정선을 분명하게 띄워서 최소한 보는 사람들이 예지라는 캐릭터의 감정상태를 타고 움직일 수 있게 했다. 어떻게 보면 밉상이고 응원하기 힘든 인물이지만, 공감하지 않더라도 따라갈 수 있도록. 성형의 위험성, 부작용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이 영화에서 아름다움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본질적인 질문을 하고 싶었다. 내가 예쁘다고 에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그렇게 봐야만 예뻐진다. 시선이 강요하는 또다른 폭력성, 그런 폭력성이 얽히고 얽혀 그려진 지옥도,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인간군상의 한계를 표현하고 싶었다."(조경훈 감독)

"세 가지가 포인트다. 감정을 배제하고 단선적인 아이디어가 점프하듯 연결되는 원작에서 상황과 동기를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정서를 만들어주자. 만화적 아이디어를 영상으로 옮길 때 납득 가능한 수준을 찾아보자. 현실세계를 배경으로 한 만큼 주고받는 언어 등은 사실적으로 표현해보자. 그런 부분을 잘 소화해주신 것 같다."(전병진 PD)

▲ 애니메이션 '기기괴괴 성형수'. 제공|트리플픽쳐스

-단조로운 원작과는 다른 그림체가 눈길을 끈다. 달라진 외모의 전후를 표현하는데 사실적인 그림체와 순정만화 같은 그림체가 어우러진다.

"비주얼을 만들어낼 때 고민이 많았다. '기기괴기'가 흑백에 일부에만 컬러가 있지 않나. 애니메이션도 세피아를 깔고 포인트만 컬러로 할까 제안했는데 오성대 작가님이 그럼 너무 상업적인 데서 멀어진다고 하시더라.(웃음) 포인트만 원작 그림체가 매력있기는 한데 꽉 차 있지는 않아서 감정을 표현하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몇가지 안들을 놓고 진행했다. 연상호 감독의 룩이라고 할까. 사실적인 룩과 일본 애니메이션 룩의 중간형을 잡고 싶다 생각하고 여러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테스트를 거쳤다. 전체적 아트를 담당한 감독님이 그 중간 형태를 잘 잡아주셨다. 3D로 만들어지는 작품이다보니까 모델링에도 정말 공을 많이 들였다. 예지 과거 중간 예뻐진 단계 공을 많이 들였다.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 모두를 종합해 만들어졌다."(조경훈 감독)

-고어 장르물로의 성격도 있는데 구체적 묘사는 아니다. 장르물 팬들의 평가가 다를 것 같다.

"웹툰이 더 세다. 그대로 살려서 갔다면 더 재밌게 갈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결론은 나지 않지만 중국시장과 선이 닿아있어서 까다로운 심의 기준을 수용한 부분도 일부 있다. 100% 수용할 수 없지만 최소화해 접점을 찾으려 했다. 결과적으로는 15세 이상으로 받을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전화위복인 것도 같다."(전병진 PD)

"고어, 공포 묘사가 아쉽다는 일부가 있는 반면,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이야기는 아침드라마 같은데 고어적 표현은 탈 조선급'이란 평가도 받았다. 비주얼 묘사를 보는 분이 있고, 다루고 있는 개념이나 설정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니까 더 끔찍하게 다가오기도 하는 것 같다. 해외팬들은 엉망진창 노골적인 묘사도 더 익숙한데 이런 개념에 열광하시기도 하더라. 노골적 묘사보다 이런 상황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조경훈 감독)

▲ 애니메이션 '기기괴괴 성형수'. 제공|트리플픽쳐스
-아름다워지기 전과 후를 다룬 상황이나 캐릭터 등을 단순화해 극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과연 사람이 예쁘다 못생겼다는 기준이 뭘까. 그것이 중심이다. 외눈박이 외계인의 기준에서는 눈 두 개 달린 사람이 징그러울 것이다. 우리는 바퀴벌레에 기겁하지만 형태를 따지면 게나 가재가 더 징그럽게 생기지 않았나. 인간이란 굉장히 편견 덩어리고, 몸과 얼굴을 볼 땐 극단이다. 세부적 기준이 디테일하기까지 하다. 그런 기준이 인간에게 강요하는 폭력이 중요한 화두라고 말씀드렸다. 성형수가 이야기의 매개가 되긴 하지만, 미를 해체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저만의 기준으로 그걸 사용하는 궁극의 괴물이 있다. 그에겐 완전히 다른 기준으로 미(美)를 바라본다. 드라이브를 걸던 예지가 한큐에 무너진다. 미의 기준이란 얼마나 무의미한가. 극단적이지만 무의미하고 또한 절망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만 해도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자신이 없다."(조경훈 감독)

-주인공 예지를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설정했다.

"화장 장면이 3번 나운다. 지훈의 얼굴을 복도에서 화장해주고, 지훈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하고, 마지막에는 지훈이 메이크업을 해준다. 완전히 다른 성격의 메이크업이다. 예지는 사랑을 받고 싶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스스로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는 처절한 절규다. 인정을 받기는 하지만 끔찍하다. 아이러니에서 나오는 공포가 있다."(조경훈 감독)

-예지가 성형수를 써서 외모가 바뀌면 목소리도 완전히 바뀐다.

"목소리는 한 사람이 연기한 것이다. 성우 디렉션 때 과거 예지, 달라진 예지의 목소리가 안 변한다 했다. 그런데 더빙 디렉터의 눈은 달랐다. 목소리가 변한다더라. 살이 많이 빠지면 목소리가 바뀐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하더라. 리얼하게 그린다 해도 화면의 비주얼에 따라 목소리도 따라간다. 안 맞으면 몰입을 해치기도 한다고 하더라. 만화적 과장이 있긴 하지만 얇고 고운 목소리를 그대로 대입하면 사람들이 못 받아들인다고도 하고. 이게 참 굴레였다. 처음엔 더 극단적이었는데 나름대로 타협한 결과물이다. 어려운 지점이더라. 화면과 목소리를 붙이며 디렉터 말씀이 맞구나 싶었다. 우리도 선입견의 벽을 못 넘은 거구나 했다."(조경훈 감독)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다. 여러 영화제에 초청됐고 해외 시장에서도 반응이 좋다고 들었다.

"해외영화제 반응을 영상통화로 들어보니 의도했던 장면에 의도대로 반응해 주시는구나 했다. 이 원작이 가진 아이디어의 힘이 첫번째라면, 소재와 장르 자체가 희소하다는 점도 주목받는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소개할 때 예시를 들 작품이 20여년 전 나온 일본 콘 사토시 감독의 '퍼펙트 블루'밖에 없더라. 호러 장르 애니메이션이라는 걸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12개 영화제 초청이 확정됐는데 베니스 초청이 불발된 점이 아쉽기는 하다. 현재 해외 5개국에 선판매됐는데 동남아에선 잘 알려진 IP고, 대만에서는 경쟁이 붙어서 처음 제시한 가격보다 4배 넘게 계약됐다. 17일 개봉 예정이고 싱가포르, 홍콩, 호주, 뉴질랜드도 9월중 개봉하려 한다. 한국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한국과 동시기 해외에서 개봉하는 건 최초 사례가 아닐까 한다. 일본에서도 관심을 갖고 협상 중인데, 좋은 소식을 기대하고 있다."(전병진 PD)

▲ '기기괴괴 성형수'의 전병진 PD(왼쪽)와 조경훈 감독. 제공|트리플픽쳐스
-한국에서도 분위기가 좋다.

"힘들게 제작한 작품이다. 이런 상황이 불과 몇개월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너무 많은 거절을 당했다. 그러다보니 안된다는 세뇌를 당했다. 스스로 기대치가 바닥이었지만 그거 하나는 믿었다. 만든 작품이 재미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장르적 미덕에 충실하다. 조심스러운 상황이지만 한 명이라도 더 와서 봐주셨으면 좋겠다."(조경훈 감독)

"애니메이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그것도 가족용 아닌 15세 이상이 타깃인 영화의 성공사례가 없다. 그래서 리스크가 더 커 보였다. 배급사 투자사를 만나면 좋은 소리보다 좋지 않은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던 게, 오랫동안 만들었고 다 아는데도 보고 있으면 계속 보게 됐다. 다 알아도 보고 또 보는데 이 작품이 왜 안되는 걸까 생각했다. 일반시사 이후 반응이 오기 시작했는데 그러며 '역시'하고 생각했다. 종합적으로 의미있는 성과가 나오길 바란다. 이후 나오는 작품을 위해 초석이 됐으면 좋겠다."(전병진 PD)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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