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부차기에서 호아킨의 눈을 읽고 만든 이운재의 선방
▲ 최은성(현 상하이 선화 코치)에게 축하 받는 이운재

[스포티비뉴스=용인, 박주성 기자 이성필 기자스페인전 4번째 키커, 호아킨 산체스(39, 레알 베티스)의 불안한 눈빛 이어진 이운재(47)의 선방 그리고 미소. 우리 모두는 찬란했던 2002년 여름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월드컵에서 보여준 안정적인 활약으로 이운재는 한국을 대표하는 골키퍼가 됐다. 이운재 이전에 최인영(58), '꽁지머리' 김병지(50) 등 여러 골키퍼가 있었지만 큰 무대에서 떨지 않고 골문을 든든히 지킨 이운재는 2002년의 기적과 함께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이운재는 한국의 골키퍼 역사상 가장 많은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다. 1994년 미국월드컵, 2002년 한일월드컵, 2006년 독일월드컵, 2010년 남아공월드컵까지 무려 4번이나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전 세계를 봐도 이렇게 많은 대회에 나선 골키퍼는 찾기 어렵다.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한 9월 초 용인의 조용한 산속 카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며 그와 만났다.

▲ 김병지와 이운재(오른쪽)

죽기 살기로 뛴 이운재, 붙박이 주전 김병지를 넘다!

거스 히딩크(74) 감독은 2001년 한국의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한국은 김병지가 붙박이 골키퍼였다. 이운재도 수원 삼성 소속으로 0점대 실점률로 팀의 우승을 이끈 훌륭한 골키퍼였지만 대표팀에서는 김병지가 굳건했다. 이운재는 박종환(82), 차범근(67) 감독에게 선택을 받지 못한 평범한 골키퍼였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온 후 이운재는 전면에 나서게 됐다. 히딩크 감독은 안정적인 수비형 골키퍼를 선호했는데 김병지는 드리블을 시도하는 등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며 불안한 모습을 종종 노출했다. 특히 2001년 1월 홍콩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와 평가전에서 김병지는 무리한 드리블로 실점을 위기를 내주며 히딩크 감독의 신뢰를 잃었다. 작고한 핌 베어벡 코치가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하던 장면은 축구 축구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주전 골키퍼 자리는 이운재가 차지하게 된다.

“사실 기회는 저에게 먼저 왔어요. 홍콩에 가서 대회를 했는데 첫 경기에 제가 뛰었죠. 그 다음 경기에 김병지 골키퍼가 나갔습니다. 그 경기에 나는 벤치에도 없었고, 관중석에 있었고 (김)용대가 후보에 있었죠. 정말 죽기 살기로 했었습니다. 내 기회를 만들기 위해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보여주려고 했어요.”

“또 히딩크 감독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기 위해 노력했고, 그걸 또 만들려고 했습니다. 난 선택을 받는 입장이에요. 그럼 그 감독의 입맛에 맞게 해야죠. 히딩크 감독은 안정적인 걸 많이 요구했습니다. 지금은 골키퍼가 빌드업을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그냥 멀리 차라고 했습니다. 감독이 그걸 좋아하면 안정성 있게 하면 그만입니다. 난 감독의 선택을 따르면 됩니다. 만약, 히딩크 감독이 빌드업 골키퍼를 좋아했다면 또 그렇게 했을 거에요. 그걸 못하면 경기에 뛸 수 없기 때문이죠. 선수는 감독이 원하는 대로 가야 합니다.”

안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히딩크 감독 체제에서 이런 모습은 이운재 개인적으로는 분명 기회가 됐다. 이운재는 관중석에 앉아 김병지의 드리블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에게 기회가 오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기회가 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나와 생각이 다르구나’ 생각했습니다. 호텔에서 같은 방을 쓰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김)병지 형과 저의 생각은 달랐어요. 선배님은 프로 선수라면 팬들을 위한 경기를 해야 한다고 했고, 나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팀이 승리하는데 골키퍼 역할이 중요한데 그 역할을 잘하는 게 더 든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골키퍼의 첫 번째 역할이라고 말했죠. 아무리 잘해도 팀 성적이 안 좋은 것보다 내가 팀을 위해 보여준 것 없어도 팀이 좋은 결과를 내는 게 더 낫습니다. 그럼 팬들이 그 골키퍼가 운이 참 좋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죠.”


▲ 이탈리아전에서 상대 공격수들과 많이 마주했던 이운재(왼쪽) 복서로 불렸던 크리스티안 비에리(오른쪽)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한국의 역대 최고의 경기, 이탈리아전의 기적

한국 대표팀 역대 최고의 경기는 역시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이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전반 18분 크리스티안 비에리(47)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그렇게 경기는 후반 종료 직전까지 흘렀다. 그때부터 기적이 시작됐다. 후반 43분 '설바우두' 설기현(41, 현 경남FC 감독)이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고, 경기 종료 3분 전 '테리우스' 안정환(44)이 골든골을 넣으며 한국이 승리했다.

이 경기에선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동점골을 넣었던 설기현은 불과 30분 만에 영웅에서 역적이 될 뻔했다. 수비 상황에서 뒤꿈치로 공을 걷어내려고 했고, 이 공이 쇄도하던 젠나로 가투소(42, 현 나폴리 감독)에게 연결된 것이다. 순식간에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이 됐다. 하지만 가투소의 슈팅은 이운재의 슈퍼세이브에 막히며 한국은 탈락 위기에서 벗어났다.

최근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를 가진 설기현은 “기억납니다. (이)운재 형한테 욕 엄청나게 먹었습니다. 저를 죽일 듯이 쳐다봤죠. 그거 먹혔으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었어요. 운재 형이 정말 잘했었어요”라며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직접 위기를 겪었던 이운재도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말했죠. 거기서 골 먹었으면 그냥 끝이었어요. 지금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때 골이 안 들어가서 그런 겁니다. 거기서 골을 먹혔다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그 상황에서는 어떤 사람도 설기현의 행동을 잘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페널티박스 모서리에서 뒤도 안돌아보고 백힐을 한 건 잘못된 선택이었죠. 거기서 경기가 끝났다면 지금 웃으면서 말하지 못했을 거예요.”

“가투소도 잘 찼는데 그 상황에서 여유 있게 차서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뭐 있을 수는 있는데 연습에서나 가능할 겁니다. 연습에서는 못 넣어도 부담이 없기 때문이죠. 실전에서는 무조건 골대 안으로만 때리자고 생각했을 겁니다. 골대 안에만 차도 잘한 거예요. 저도 공을 보고 막은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는데 맞은 겁니다. 저도 운이 좋았습니다. 밑으로 깔아서 찼다면 실점을 했을 거예요.”

이운재는 황선홍(52)의 기습적인 프리킥 슈팅도 기억하고 있다. 연장 전반 황선홍은 프리킥 상황에서 수비의 허를 찌르는 낮은 슈팅으로 골문을 노렸다. 이탈리아 수비벽이 뛰는 그 빈틈을 노렸다. 하지만, 잔루이지 부폰(42, 유벤투스)은 대단했다. 순식간에 몸을 날려 황선홍의 슈팅을 막으며 역시 세계 최고의 골키퍼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운재는 당시 슈팅이 골이 될 줄 알았다.

“저도 들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아마 저였으면 실점했을 거 같아요. 저라면 슈팅이 그쪽으로 온다는 걸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진짜 기가 막힌 선방이었습니다. 땅으로 깔렸는데 리치가 길어서 잘 막았어요. 물론 속도가 조금 약하기는 했습니다. 땅볼로 감아 차는 건 속도가 빠를 수 없어요. 코스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 이운재의 선방

▲ 한국의 승리

스페인전 승부차기호아킨도 지금은 나이가 많죠?”

한일월드컵은 이운재를 전 국민적인 스타로 만든 대회다. 보통은 공격수가 조명 받지만, 골키퍼의 선방도 팬들의 눈을 홀렸다. 특히 가장 빛난 경기는 8강 스페인전이다. 한국과 스페인은 120분 혈투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운명의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스페인은 페르난도 이에로(52), 루벤 바라하(45), 차비 에르난데스(40)가 연이어 골망을 흔들었다. 한국도 황선홍, 박지성(39), 설기현이 침착하게 골을 넣으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스페인의 네 번째 키커 호아킨 산체스가 등장했다. 호아킨은 불안한 시선으로 골문을 바라봤고, 결국 이운재의 선방에 막혀 고개를 숙였다. 이후 한국은 안정환, 홍명보(51)가 골을 넣으며 4강에 진출했다.

“골키퍼가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경기가 대회에서 1번은 옵니다. 그게 바로 승부차기에요. 그 기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주목을 받습니다. 만약 제가 스페인전에서 못 막았다면 팀은 잘했고, 나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선방을 해서 저도 주목을 받고 있죠. 지금은 호아킨도 나이가 많을 텐데 그때는 참 어린 선수였어요.”

호아킨은 이운재가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운재가 움직이지 않고, 골문 가운데 서있자 당황한 호아킨은 부정확한 슈팅을 날렸고 이운재의 선방에 막혔다. 이운재가 호아킨을 완전히 제압한 순간이었다.

“승부차기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머릿속에 코스를 정하고 차는 유형이 있는데 코스가 좋고 공이 빠르면 다 들어갑니다. 그런데 호아킨은 내가 먼저 뛰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꺾어 차려고 했겠죠. 그런데 내가 가만히 있으니 그냥 툭 찼습니다. 그럼 코스도 정확하지 않고, 속도도 약하죠. 저는 계속 눈을 보고 있었어요. 수 싸움에서 제가 이긴 거죠. 앞선 스페인의 키커들은 다 코스를 정하고 찼습니다. 진짜 다 기막히게 들어갔어요. 그래서 네 번째 키커 호아킨은 코스만 맞추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버티고 있었는데 그런 킥이 나왔죠.”


▲ 부폰

이운재가 본 최고의 골키퍼는 부폰, “대단했어요

이운재는 한일월드컵에서 놀라운 활약을 했지만 최고의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야신상(현 골든글러브)은 받지 못했다. 야신상의 주인공은 독일의 골문을 지킨 올리버 칸(51)에게 돌아갔다. 이운재는 수상 후보로 거론됐지만 아쉽게 고배를 삼켰다. 하지만, 이운재에게 최고의 골키퍼들과 경쟁할 수 있었던 2002년 월드컵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골키퍼들의 스타일은 다 다릅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대회에서 부폰이 정말 잘했어요. 칸도 잘하기는 하지만 실력보다는 카리스마가 대단했습니다. 제 시선에서 가장 잘한 골키퍼는 부폰이었습니다. 안정적인 제 스타일과도 잘 맞는 거 같습니다. 안정적이고 골문을 잘 지키는 모습이 대단했습니다.”

이운재는 한일월드컵 이후 2006 독일월드컵에 출전했다. 그는 자신의 최고의 월드컵을 독일월드컵으로 꼽았다. 4강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낸 대회보다 16강 진출에 실패한 그 대회를 최고라고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편에서 계속>

스포티비뉴스=용인, 박주성 기자 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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