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15시즌, 프리미어리그 9라운드 애스턴빌라전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보인 뒤 '맨유 전설' 게리 네빌(왼쪽)이 윤석영(오른쪽)을 칭찬했다

[스포티비뉴스=부산, 박대성 기자 이성필 기자] 2013년 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도전한 수비수가 있었다. 2002 한일 월드컵부터 왼쪽 풀백 대들보였던 이영표(43)가 뛰었던 도시, 영국 런던으로 날아가 세계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돌고 돌아 K리그에 돌아왔지만, 도전만으로 의미가 컸다.

윤석영(30)은 17세 이하(U-17)부터 청소년 대표팀에서 차근차근 성장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거쳐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주역이 됐다. '축구 종가' 런던에서 열린 올림픽 뒤 퀸즈 파크 레인저스(이하 QPR)에 입단해 유럽 무대를 경험했다.

한국 대표팀 왼쪽 측면 수비수로 계보를 잇겠다는 사명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작용했다. 이영표의 은퇴 후 왼쪽 측면은 무주공산이었다. 누군가는 성장해줘야 한다는 기대가 컸고 윤석영이 그 주인공이었다. 유럽 무대에 도전한다는 소식에 더 큰 성장을 해주기를 기대했다.

세계적인 무대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주전 경쟁에서 애를 먹었고, 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챔피언십(2부리그) 돈캐스터 로버스, 찰턴 애슬래틱 임대로 힘겨운 생활을 보냈다. 2016년 브뢴비(덴마크)에서 2017년 가시와 레이솔(일본)로 아시아 무대에 돌아오기까지 느낀 점이 많았을 것이다.

2018년 FC서울 임대를 시작으로, 올해 1월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을 통해 국내로 복귀한 윤석영, 결코 쉽지 않았던 유럽 무대, 당시에는 말할 수 없었던 깊은 속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열정으로 뜨거웠던 그 날처럼, 마지막 더위를 태우던 8월의 끝자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며 부산의 한 카페에서 윤석영을 만났다.

▲ 맨체스터 시티는 2012년 런던 올림픽 4강 브라질전 뒤에 윤석영을 영입하려고 했다

맨체스터 시티, 윤석영 영입 위해 한국까지 왔다

반짝반짝 빛나던 윤석영은 유럽이 노리던 재능이었다. 런던 올림픽 활약 전에도 독일 분데스리가 한 팀에서 영입 제안이 왔다. 오로지 축구가 잘하고 싶었고, 독일 팀으로 이적하고 싶었다. 하지만 구단 간 협상에서 이적료가 맞지 않아 불발됐다.

런던 올림픽 활약은 윤석영의 가치를 더 올렸다. 홍명보호 주전 왼쪽 수비수로 조별리그 3경기부터 3·4위전 한일전까지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뛰었다. '축구 종가' 중심에서의 맹활약은 맨시티 눈길까지 사로잡았다.

맨시티는 2008년 아랍에미리트(UAE) 거부 셰이크 만수르 인수로 프리미어리그(PL)를 넘어 유럽 제패를 꿈꾸는 팀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런던 올림픽 직전인 2011-12 시즌에는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 아래서 44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2012년 8월, 맨시티는 한국-브라질 4강전이 끝나고 윤석영에게 영입 제안을 했다. 관심 정도에서 끝나리라 생각했는데, 직접 한국까지 날아와 문의했다. 부친과 에이전트 면담을 했지만, 임대 조건으로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에 전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을 위해 이란 원정을 떠났어요. 맨시티 단장이 직접 아버지께 영입을 말했죠. 맨시티에 영입한 뒤 다른 유럽 팀에 임대를 보내고 싶다고 했어요. 아버지께서 안 된다고 거절하셔서 무산됐어요. 돌아보면 아까운 제안 중 하나였죠."

▲ 해리 레드냅 감독은 윤석영을 좀처럼 기용하지 않았다

PL 무대에 도전장, 레드냅 감독이 날 싫어하나?

윤석영은 유럽 무대를 원했지만, QPR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자유계약선수(FA) 대상이 아니라면, 이적은 구단간 합이 맞아야 한다. 많은 제안 중에서 전남 드래곤즈와 QPR 사이에 이해관계가 형성됐다.

전남은 2012년 치열한 강등 싸움을 하고 있었다. QPR과 도장을 찍었는데, 핵심 선수를 중요한 순간에 내줄 수 없었다. 윤석영에게 겨울까지만 뛰어달라고 요청했고, 2013년 1월 런던으로 떠나게 됐다.

쉽지 않았다. 해리 레드냅 감독은 윤석영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팀은 강등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파비우, 아스널에서 아르망 트라오레가 이적했다. 왼쪽 풀백에 공백이 생기면 중앙 수비 클린트 힐에게 임무를 맡겼다. 리그 최종전까지 그라운드는 커녕 벤치에도 앉지 못했다.

"여기로 왔으면 안 됐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기회가 없었다."

윤석영은 "레드냅 감독이 아시아인에 안 좋은 기억이 있을 수도 있다. (박)지성이 형도 부임하자마자 주장 완장을 빼앗겼다"라며 고개를 떨궜다. 왼쪽 풀백이 부상 뒤에 돌아오면 23세 이하(U-23) 팀으로 가서 훈련하라는 경우도 있었다. 토트넘 홋스퍼에서 왼쪽 측면 수비수 아수-에코토까지 데려왔다.

런던까지 와서 좌절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주전 경쟁에 사력을 다했다. 훈련장에 들어가기도, 축구화 끈도 묶기 싫었지만 참고 뛰었다. 2013-14시즌 초반에는 돈캐스터 로버스 임대를 다녀오기도 했다.

후반기에 임대에서 복귀했다. 윤석영의 투지에 레드냅 감독 생각은 바뀌었고, 챔피언십 27라운드 셰필드 유나이티드전부터 서서히 기회를 얻었다. 리그 최종전 반슬리전에서 득점포를 신고하며 잉글랜드 무대 첫 골 맛을 봤다.

▲ 윤석영(왼쪽)은 2014-15시즌 9라운드 애스턴 빌라전에서 '맨유 전설' 네빌에게 칭찬을 받았다

꿈만 같던 PL 무대, '맨유 전설' 네빌 칭찬받다

QPR은 승격 플레이오프를 통해 PL에 돌아왔다. 하지만 끝자락에 뛰었다고 주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윤석영은 레드냅 감독에게 "어떤 결정을 하든 존중한다. 1분 1초라도 기회가 오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마음을 전달했다.

물론 레드냅 감독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오고 싶었던 팀도 아니었기에 집중력은 흩어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시즌 초반에 벤치 멤버였지만, 2014-15시즌 8라운드 리버풀전 풀타임으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

리그 9라운드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설까지 칭찬했다. 풀백이지만 유효 슈팅과 프리킥에서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다. 네빌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나보다 나은 선수였다. 모든 플레이에 에너지가 넘쳤고 단점이 없었다"라며 박수를 보냈다. 윤석영은 "너무 좋았다. 정말 그렇게 말했을까 싶어 영상을 다시 봤다. 진짜 그렇게 했더라. 너무 감사했다"라고 감격했다.

2015년 2월, 레드냅 감독이 떠나고 크리스 램지 대행에서도 붙박이 주전이었다. PL 23경기에 출전했지만, 팀은 강등권에서 맴돌았다. 1년 동안 PL에서 활약한 뒤에 또 챔피언십으로 떨어지게 됐다.

QPR은 모래알 팀이었다. 과거에 이름 있던 선수들을 모았지만, 팀플레이가 부족했다. 분명 선수단은 괜찮았는데 살림꾼이 없었다. 윤석영은 2015-16시즌에도 좀처럼 기용 받지 못했고, 겨울 이적 시장에서 찰튼 애슬래틱으로 임대를 떠났다.

찰튼에서 꽤 괜찮은 모습을 보였고, QPR이 1년 연장 제안을 했다. 1년 더 챔피언십에서 뛰면서 기회를 보려고 했다. 몇몇 챔피언십 팀도 윤석영에게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강화된 영국 워크퍼밋으로 무산됐고, 덴마크 브뢴비로 떠나게 됐다.

한참 좋았던 2014-15시즌 중반에는 세세뇽의 태클로 발목 부상, 한 달 반 회복 뒤에 골키퍼와 충돌로 뇌진탕까지 당했다. 여기에 연달아 감독이 바뀌면 제대로 기회를 받지 못했다. 정말 롤러코스터 같던, 돌아보면 다사다난했던 영국 도전이었다.

후회는 없었다. 윤석영 가슴에는 아픔보다 뿌듯함이 있었다. "언제 PL을 뛰어보겠나. 난 운이 좋았다.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QPR에서 모든 계약을 채웠다. 마지막 시즌을 치르고 계약 종료 되자 정말 뿌듯했다. PL에서 뛰던 시절은 행복했다"라는 말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②편에 계속…>

스포티비뉴스=부산, 박대성 기자 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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