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에 응했던 이운재. 두 시간 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스포티비뉴스=용인, 박주성 기자 이성필 기자] 한국 축구 최고의 골키퍼 이운재(47)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상대하며 엄청난 선방을 보여줬다. 그가 상대한 골키퍼만 봐도 보도 일그너(53), 예지 두덱(47), 잔루이지 부폰(42, 유벤투스), 이케르 카시야스(39), 올리버 칸(51), 파비앵 바르테즈(49) 등 당대 최고들만 마주했다.

필드 플레이어도 마찬가지, 위르겐 클린스만(56)부터 루이스 피구(48),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46), 크리스티안 비에리(47), 프란체스코 토티(44), 페르난도 모리엔테스(44), 미하엘 발락(44), 지네딘 지단(48), 티에리 앙리(43) 등 골 감각이 뛰어났던 공격수와 미드필더만 상대했다. 

그런 이운재는 현재 한국 축구의 중심인 손흥민(28, 토트넘 홋스퍼)을 굉장히 위협적인 선수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그를 상대한 경험은 없지만, 골키퍼 입장에서 손흥민의 슈팅을 보면 얼마나 막기 어려운 슈팅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이운재는 현재 대표팀에 있는 공격수 중 손흥민을 골키퍼가 가장 어려워할 선수로 꼽았다.

“손흥민이 최고예요. 감아서 차는 것도 위협적이지만 왼발, 오른발을 자유자재로 씁니다. 축구 선수들은 대부분 한 발만 써요. 황의조(28, 지롱댕 보르도)는 항상 감아 차 거의 분석이 됩니다. 황의조는 대표팀에서 데리고 있었는데 저도 ‘너 항상 이쪽으로만 슈팅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손흥민은 왼발, 오른발 모두 과감하게 때려요. 골키퍼 입장에선 정말 힘들죠.”

이운재는 손흥민의 전매특허인 왼발 감아 차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명 ‘손흥민 존’으로 불리는데 페널티박스 모서리에서 반대편 골문을 보고 감아서 때리는 슈팅을 말한다. 골키퍼 입장에서는 공이 나갔다가 골문 안쪽으로 급격히 휘어 들어가 굉장히 난감한 슈팅이다.


▲ 2018 러시아월드컵 멕시코와 조별리그 2차전 만회골을 만드는 손흥민의 슈팅

“공이 바깥으로 돌아서 갑니다. 안쪽으로 오면 각이 잡히는데 크게 먼 곳에서 안으로 돌아서 들어오면 뛰어도 안 됩니다. 거기에 양발잡이라면 상황 판단이 복잡해지죠. 그래도 경기 전에 이 선수는 어떤 킥을 하고, 저 선수는 어떤 킥을 하는지 분석하고 미팅을 합니다. 그래도 손흥민 같은 킥은 정말 막기 어렵죠.”

이운재는 프리미어리그(PL)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하는 손흥민이 대표팀에만 오면 어려움을 겪는 이유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분석했다. 토트넘과 달리 대표팀에서는 너무 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트넘에서는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지만, 대표팀에서는 수비부터 경기 조율, 공격까지 혼자 많은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손흥민은 유럽에서 잘합니다. 정말 기가 막히죠. 그런데 대표팀에선 그렇지 않아요.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등 이런 팀들과 경기를 하면 쉽지 않죠. 그 이유는 PL에서는 골만 넣으면 됩니다. 선수들이 좋아서 패스도 아주 정확히 오죠. 하지만 대표팀에서는 그런 패스가 오기가 쉽지 않고, 손흥민이 수비까지 내려옵니다. 이는 아르헨티나를 이끄는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도 마찬가지예요.”

아시아권에서 한국은 상위권 팀이다. 일본, 호주 정도를 제외하면 상대 전략이 '선 수비 후 역습'인 것은 당연하다. 2019 카타르 아시안컵 8강 탈락도 상대의 이런 전략을 깨지 못했기 때문이다. 손흥민에게는 2~3중의 방어가 붙는다. 마찬가지로 메시도 월드컵에서 상대의 집중 견제를 당하니 아르헨티나도 우승권에 가기 어려워진다.

“제가 감독이라도 메시, 손흥민 같은 에이스가 있으면 수비 잘하는 선수에게 그 선수만 무조건 막으라고 할 겁니다. 그렇게 10대10으로 경기한다고 생각하면 되죠. 애매하면 태클까지 해버리는 겁니다. 예전 한일전 때 차범근(67) 감독은 최성용(44)에게 일본의 나카타 히데도시(43)를 꽁꽁 묶으라고 지시했어요. 그러니 일본은 팀플레이가 안 되더라고요. 제가 감독으로 손흥민을 상대한다고 하면 지구력이 좋은 선수에게 손흥민만 따라다니라고 할 겁니다. 그럼 승산이 있죠.”

▲ 이운재 ⓒ수원 삼성
▲ 무너지는 수원 ⓒ한국프로축구연맹

위기의 수원, 안타까운 이운재의 애정 넘치는 충언

수원 삼성은 과거 ‘레알 수원’으로 불릴 만큼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강팀이었다. K리그에서 4번이나 우승을 차지했고 FA컵에서는 5번으로 역대 최다 우승팀의 기록을 갖고 있다.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도 2번이나 정상에 오를 만큼 수원은 K리그를 대표하는 구단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원의 영광은 사라져갔다. 모기업이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이관되면서 투자 축소가 이뤄진 상황도 오래됐다. 전북 현대의 성장에 질투만 하다가 시간을 보냈다. 대구FC가 흥행구단으로 올라서는 것을 지켜만 봤고 울산 현대의 과감한 투자를 부러워했으며 내실을 다진 포항 스틸러스만 바라봤다. 자구책을 마련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성과가 나온 것이 보이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이번 시즌 수원은 승점 24점으로 9위다. 최하위 부산 아이파크와 불과 3점 차이다. 단 1경기의 결과로 최하위로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운재와 현역 시절을 같이 보냈던 전설 박건하(49) 감독을 긴급 수혈해 위기를 돌파 중이지만, 이제는 우승이 아니라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팀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수원의 전설' 이운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많은 말을 했지만, 가장 핵심만 정리하면 이렇다. 

“안타까운 게 아닙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어요. 돈을 쓰고 안 쓰고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구단 스스로 고정관념을 깨트려야 합니다."

이운재는 수원의 유스 기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수원은 권창훈(26, SC프라이부르크)이라는 특급 유망주를 발굴했다. 하지만 이후 수원에서는 특별한 유스 선수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기대를 받았던 공격수 김건희(25), 오현규(19) 등은 상주 상무에서 기량이 만개했거나 성장 중이다. 팀이 유스를 강조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권창훈 이후 좋은 선수가 나오지 않는 것은 일단 선수들의 능력이라고 봅니다. 또 선수가 능력이 있는데 코칭스태프에서 믿고 활용하는 여부도 중요하죠. 권창훈도 처음부터 잘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서정원(50) 감독이 믿고 계속해서 출전 기회를 주니까 그런 스타가 만들어진 것이죠. 유스 선수들도 수원이라는 팀이 계속해서 이렇게 된다면 떠나고 싶어 할 것 같습니다.”

이운재는 수원이 K리그2로 강등될 경우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아직 리그가 남아 있지만, 충분히 강등이라는 사상 최악의 시나리오가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파이널 라운드 그룹B(7~12위)는 혼돈에 빠져있다. 7위 강원FC부터 12위 부산까지 어떤 팀도 잔류를 확신할 수 없다. 4경기가 남아 있는 상황, 모든 팀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수원이 2부 리그로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유스 선수들로 운영이 되겠죠. 염기훈(37), 양상민(36) 등 베테랑들은 은퇴할 것 같고 중간급 선수들은 다 팀을 떠날 겁니다. 자동으로 유스팀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언제 승격할지 모르죠. 지금 2부 리그 팀들을 보면 만만치 않습니다. 제주 유나이티드, 대전 하나시티즌, 전남 드래곤즈, 경남FC, 수원FC 등 이런 구단들이 있어요. 거기서 수원이 K리그1으로 올라올 수 있을까요? 수원은 자금이 없으면 거기에 맞게 선수단을 운영해야 하는데 그런 계획이 보이지 않아요. 그냥 자금을 적게 지출하면 자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이운재

골키퍼의 유럽 진출, “저도 기회가 있었죠”

이운재는 1996년 수원 삼성에서 프로로 데뷔했다. 2011년까지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수원에서 보냈고 2000년과 2001년 군 복무 때문에 상무에 다녀왔다. 선수 생활의 마무리였던 2011년과 2012년을 전남 드래곤즈에서 보냈고 2012년 12월 길고 길었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며 장갑을 벗었다.

무려 15년 동안 수원의 골문을 지킨 이운재다. 하지만 해외로 떠날 기회도 있었다. 이운재는 왜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제가 요즘 선수라면 일본에 갔을 것 같습니다. 유럽에선 제의도 왔었습니다. 스페인 쪽에서 왔는데 여러분들이 이름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 그럼 팀이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서른이었는데 많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대 중반이었으면 승부를 걸었을 겁니다. 하지만 안전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30이 넘은 나이에 유럽으로 간다는 건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대신 후배들의 유럽 도전은 꼭 한 번은 있었으면 좋겠다며 응원했다. 특수 포지션이라 분명 쉽지 않은 길이지만, 기회가 온다면 어렵더라도 꼭 해보기를 권했다.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골키퍼, 상상으로도 즐겁다.

골키퍼도 경기를 뛰고 나면 몸무게가 빠질까?

현역 시절 이운재에게 붙은 수식어 중 하나가 '살과의 전쟁'이었다. 이운재는 무리하게 체중 감량을 하다 폐결핵 진단까지 받은 아찔한 경험도 있다. 운동 선수에게 호흡기 질환은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자기와의 처절한 싸움이었다. 살이 쉽게 찌는 체질을 원망하는 대신 자기 관리의 표본으로 삼았다. 그것이 이운재를 국내 유일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133경기) 골키퍼로 만들어줬다.  

“경기를 뛰면 2~3kg이 빠집니다. 필드 플레이어는 10km 이상을 뛰는데 골키퍼는 4km 정도밖에 뛰지 않아요. 그런데 골키퍼는 매 상황 100%로 해야 하죠. 99%도 안 됩니다. 크로스 상황이 오면 시작은 무조건 100%입니다. 선수들에게 말하고, 또 공에 집중하면서 여러 가지 상황들이 많죠.”

이운재는 인터뷰 후 중국으로 떠났다. 중국 25세 이하(U-25) 대표팀 코치라 중국축구협회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갑급리그(2부리그) 네이멍구 중여우의 위탁 지휘를 요구받았다. 시즌이 끝나면 귀국해 새로운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이운재의 도전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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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용인, 박주성 기자 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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