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수고 나승엽이 21일 롯데와 전격 계약을 맺었다. 기존 미국 진출의 꿈을 접고 롯데 유니폼을 입기로 했다.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인천, 고봉준 기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5개월이었다. 덕수고 3학년 내야수 나승엽(18)의 롯데 자이언츠행이 그랬다.

롯데는 21일 인천 SK 와이번스전을 앞두고 나승엽과 신인선수 계약을 공식발표했다. 계약금은 5억 원. 1차지명으로 영입한 장안고 포수 손성빈의 계약금이 1억5000만 원, 2차지명 1라운드로 호명한 강릉고 좌완투수 김진욱의 계약금이 3억7000만 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파격적인 대우였다.

롯데를 비롯한 KBO리그 역대 신인선수 계약을 돌아봐도 상당한 액수다. 롯데에선 2004년 5억3000만 원을 받은 김수화 다음으로 많은 금액이고, 야수 중에선 역대 최고액이다. 또, KBO리그 야수를 통틀어도 1999년 두산 베어스 강혁의 5억 원과 최다 타이다. 고졸 야수로는 2018년 kt 위즈 강백호의 4억5000만 원을 뛰어넘는 최대 액수다.

물론 하루아침 정해진 규모는 아니었다. 넓은 무대를 꿈꾸는 선수와 이를 잡으려는 구단 사이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계약서 뒤편 숨어 있었다.

◆6월 : 나승엽의 미국행 결심
나승엽은 덕수고 진학 후 미국행의 꿈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1~2학년 미국에서 경험한 스프링캠프를 통해 선진야구를 동경하게 됐다. 당장의 실력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현지에서 부딪히면서 뛰어보겠다는 포부를 차츰 키웠다.

그리고 이 꿈은 3학년 들어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자신을 오랫동안 눈여겨보던 메이저리그 구단과 적극적인 교감을 나누면서였다. KBO리그로 데뷔하면 1차지명이나 2차지명 상위 순번이라는 안전한 길이 보장돼 있었지만, 더 넓은 무대를 향한 꿈을 놓칠 수 없었다. 물론 만족스러운 조건도 이때 도출됐다.

▲ 미국이 아닌 KBO리그에서 함께 뛰게 된 덕수고 나승엽(왼쪽)과 장재영. ⓒ한희재 기자
비슷한 기간 덕수고 동기 장재영(18·키움 히어로즈)이 미국행을 포기하고 KBO리그 데뷔를 공표했지만, 나승엽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남은 고교야구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이즈음 롯데 역시 나승엽의 미국행 결심을 전해 듣게 됐다. 지난해 최하위를 기록한 롯데는 올해부터 달라진 규정을 따라 연고지는 물론 전국 지역 유망주를 1차지명에서 택할 수 있었다. 1순위 후보는 역시 나승엽. 그러나 롯데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나승엽의 미국행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았다. 코로나19로 각 구단 사정이 여의치 못하고, 마이너리그가 열리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8월 : 나승엽의 1차지명 불참 선언
그러나 나승엽이 7월 미국행을 공식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급 유망주를 잃을 처지가 된 롯데는 부랴부랴 나승엽 설득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선수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8월 24일 진행된 2021년도 KBO 신인 드래프트 1차지명을 앞두고 해외 진출 의사를 확고히 했다. KBO로 먼저 연락을 취해 혹시 모를 혼란스러운 상황을 방지했다.

결국 롯데는 1차지명에서 나승엽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지난해 8위를 기록해 롯데처럼 전국구 1차지명이 가능했던 삼성 라이온즈가 고민 없이 연고지 유망주인 대구상원고 좌완투수 이승현을 호명한 점과는 대비가 됐다.

◆9월 : 롯데의 깜짝 2차지명
이렇게 정리되는 듯 보였던 이슈는 그러나 쉽게 종결되지 않았다. 나승엽의 2차지명 가능성이 야구계 안팎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다. 몇몇 구단이 혹시 모를 계약 무산 가능성을 고려하고 나승엽을 지명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결국 KBO는 9월 21일 열린 2차지명을 앞두고 나승엽 측에게 해외 진출 의사를 물었다. 물론 답변은 같았다. 선수 측에게 전례에도 없던 명문화된 서류를 요구할 만큼 10개 구단으로선 초미의 관심사가 나승엽 선발 여부였다.

뚜껑을 연 결과, 나승엽의 이름을 호명한 구단은 다름 아닌 롯데였다. 1라운드 김진욱 다음인 2라운드 순번. 1차지명 유력후보로 일찌감치 나승엽을 점찍었지만, 미국행 선언으로 카드를 바꿨던 롯데는 지명권을 하나 버릴 수 있는 위험 부담을 감수하기로 했다.

◆10월 : 나승엽의 롯데행 성사
이후 롯데는 나승엽 설득을 위해 총력을 쏟았다. 구단으로선 지명권 하나 이상의 가치가 걸린 만큼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스카우트팀 관계자들이 발 벗고 나선 가운데 나승엽의 마음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 내년 역시 마이너리그 진행이 불확실하고, 현지 체류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 롯데 신인선수가 된 손성빈과 김진욱, 나승엽(왼쪽부터). ⓒ롯데 자이언츠, 곽혜미 기자, 한희재 기자
결국 나승엽은 시선을 돌렸다. 이후 롯데와 협상 테이블이 차려졌고, 몇 차례 담판을 거쳐 5억 원으로 계약금이 조율됐다. 앞서 호명된 손성빈과 김진욱의 계약금보다 많은 액수. 순리적으로는 맞지 않지만, 미국 진출 시 보장된 약 10억 원의 계약금을 고려한 금액이었다.

그리고 KBO가 정한 신인선수 계약 마감기한인 21일 최종 사인이 이뤄지면서 나승엽은 롯데 유니폼을 입게 됐다. 나승엽과 롯데 모두 만족할 만한 윈윈 계약은 이렇게 성사됐다.

스포티비뉴스=인천, 고봉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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