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종이꽃'. 제공|로드픽쳐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영화 '종이꽃'(감독 고훈)은 장례에서 관과 상여를 장식하는 종이로 접은 꽃에서 제목을 따 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살랑거리는 음악을 깔고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종이꽃을 비추며 시작한다. 무거운 이야기를 그저 무겁게 다루지 않겠다는 산뜻한 첫인사다.

주인공 성길(안성기)은 평생 망자를 위해 종이꽃을 접어 온 장의사다. 꾹 닫은 입, 주름진 굳은 얼굴엔 체념이 서려 있다. 사고로 불구가 된 뒤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아들 지혁(김혜성)은 늘 죽어버리겠다며 가슴을 헤집고, 일은 대형 상조회사에 번번이 밀리니 허름한 반지하를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그는 상조회사와 가맹점 계약을 맺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딸과 사는 싱글맘 은숙(유진)이 옆집으로 이사온다. 이상하리만치 수다스럽고 잘 웃는 그녀가 성길은 못미덥지만, 일자리를 구한다며 간병인마다 나가떨아진 지혁을 본인이 돌보겠다니 한번 맡겨보기로 한다. 낙천적인 그녀와 당돌한 그녀의 딸은 조금씩 부자의 삶을 바꿔놓는다. 

'종이꽃'은 저마다 상처를 안고 사는 세 사람의 이야기다. 도처가 죽음이다. 허나 서로를 보듬으며 삶의 의미를 찾는 이들을 통해 사람이 사람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직하게 표현된 주제의식, 몇몇 설정이나 에피소드가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직한 힘이 함께 있다.

"돈 받은만큼" "돈 되는 만큼"이 우선인 대기업의 논리는 늘 정성을 다해 망자를 기려 온 성길과 번번이 충돌한다. 감독은 죽은 자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거듭해 물으며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상기시킨다. 그러며 무심한 척, 꿋꿋이 버티어 서로를 보듬는 이들에게 말간 생기를 입혀놓았다. 아픔 가운데 피어나는 아스라한 긍정의 기운, 그만 먹먹해지고 마는 '종이꽃'의 미덕이다. 

▲ 영화 '종이꽃'. 제공|로드픽쳐스
늙은 장의사로 분한 안성기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인다. 그는 말하지 못한 아픔을 꾹 삼킨 채 묵묵히 길을 가는 까칠하고 고집스러운 남자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려보인다. 수없이 연습했을 게 분명한, 손짓 한 번에 꽃 한 송이를 접어내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프로페셔널을 표현하면서, 모든 생명을 가엾게 여기는 따뜻한 성정을 자연스럽게 입혔다. 안성기의 품격이 그대로 느껴진다.  

11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유진은 묘한 긍정으로 가득한 씩씩한 여인을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오랜만에 만나는 김혜성도 반갑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초청작인 '종이꽃'은 '어멍' 고훈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제53회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백금상)을 수상하는 한편 안성기에게 첫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이기도 하다.

10월 22일 개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03분.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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