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수는 kt가 1군으로 진입한 2015년부터 지금까지 동료들과 동고동락했다. 그러나 최근 햄스트링 부상이 생기면서 22일 가을야구 진출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했다. ⓒkt 위즈
-kt 선수단의 든든한 ‘둘째 형’ 박경수
-부상으로 가을야구 확정 TV로 지켜봐
-“첫 가을야구 무대에선 꼭 함께하겠다”


[스포티비뉴스=잠실, 고봉준 기자] “2015년 처음 1군 경기를 치르던 때가 생각나더라고요.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자정을 향해 가는, 늦은 저녁 무렵. 전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만으로도 현재의 심정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기쁨과 감격 그리고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는 표정이 쉽게 그려졌다.

‘막내 구단’ kt 위즈가 두산 베어스를 17-5로 꺽고 창단 후 처음으로 가을야구 진출을 확정한 22일 잠실구장. 베테랑 중심타자 박경수(36)는 함께하지 못했다. 야구장이 아닌 집에서 동료들의 감격을 지켜봐야 했다.

◆뜻깊은 잔칫날 함께하지 못한 박경수
2015년 1군 진입 후 ‘만년 꼴찌’라는 수식어만 듣던 kt 선수들은 이날 기쁨을 만끽했다. 단 한 명만 제외였다. 박경수. kt의 중심타선을 이루는 박경수는 이달 초 햄스트링 부상이 도져 전열에서 이탈했다.

이날 경기 후 연락이 닿은 박경수는 몇 차례나 손사래를 쳤다.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인터뷰할 면목이 없다며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나 2015년 1군 진입부터 동료들과 동고동락하며 짧지 않은 세월을 보낸 베테랑은 이내 마음속 깊은 소회를 꺼내 보였다.

▲ kt 선수들이 22일 잠실 두산전에서 17-5 대승을 거둔 뒤 기뻐하고 있다. ⓒ잠실, 한희재 기자
박경수는 “사실 오늘 잠실구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있다가 경기 시작을 앞두고 웨이트트레이닝 겸 보강운동을 하기 위해 수원케이티위즈파크로 건너왔다. 그런데 야구장을 와서 TV를 켜보니 5회까지 1-3으로 우리가 지고 있는 것 아닌가. 매직넘버가 1만 남은 상황에서 마음이 조여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물을 챙기러 라커룸을 들락거리는 사이 6회 8점을 뽑으면서 역전이 됐다. 그리고 8회 또 8점을 추가하면서 쐐기를 박더라. 그제야 안심하고 남은 경기를 볼 수 있었다”고 활짝 웃었다.

박경수는 2014년 말 kt와 FA 계약을 맺고 둥지를 옮겼다. LG 트윈스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공격에서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kt로 건너온 뒤 매년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내며 중심타자로 거듭났다. 그리고 올해 역시 114경기에서 타율 0.281 13홈런 59타점으로 활약하며 kt의 고공행진을 이끌었다.

◆“상대가 우리 경기만 기다리던 2015년 떠올라”
다만 이처럼 몰라보게 향상된 박경수의 기록은 kt의 성적과 직결되지는 못했다. kt는 2015년 52승1무91패를 기록하고 최하위로 처졌다. 이어 2016년과 2017년에도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8년 9위로 한 계단 올라선 뒤 2019년 정확히 5할 승률을 기록하면서 가을야구 진출을 노렸지만, 턱밑 6위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 모든 시간을 함께한 박경수의 감회가 남다른 이유다.

▲ 2015년 3월 14일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두산과 시범경기에서 kt 박경수가 4회 솔로홈런을 때려낸 뒤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kt 위즈
박경수는 “오늘 경기를 보면서 2015년 kt가 처음 1군 무대를 밟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나머지 9개 팀들이 모두 우리만 만나기를 기다렸다. 자존심이 상할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면서 “무엇보다 당시 고생을 많이 했던 심우준과 김민혁, 문상철, 배정대 그리고 주권 등 젊은 선수들이 이제는 주축이 돼서 가을야구 진출을 이끌어줬다. 대견하고 고맙고, 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가을야구는 kt는 물론 박경수에게도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박경수는 2003년 LG 입단 이래 아직 포스트시즌을 밟아보지 못했다. 2013년에는 군 복무, 2014년에는 부상으로 가을야구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 역시 예기치 못한 악재가 박경수를 덮쳤다. 햄스트링 부상이 도진 것이다. 박경수는 이후 1군에서 이탈했지만, kt 이강철 감독은 박경수에게 경기 전까지만이라도 선수단과 동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동료들은 박경수의 이름이 적힌 패치를 모자에 달고 뛰기로 했다.

박경수는 “감독님의 부탁으로 경기 전까지 함께하고는 있지만, 정말 미안한 마음이 크다. 나름 유한준(39) 형 다음으로 둘째 형인데 아무 도움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만 보였다”면서 “그래도 (유)한준이 형부터 막내 소형준까지 나만 보면 안부를 물으면서 살갑게 챙겨준다. 고마울 따름이다”고 진심을 전했다.

◆“몸 상태 좋아져…가을야구에선 함께하겠다”
kt는 이제 가을야구 진출을 확정한 만큼 남은 경기에서 최대한 순위를 끌어올릴 계획이다. 포스트시즌에서 유리한 고지를 밟기 위함이 첫 번째 이유지만, 박경수가 온전한 컨디션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의지가 선수단 내부에서 발현되고 있다.

실제로 이날 경기 직후 취재진과 만난 주장 유한준 역시 “(박)경수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가 남은 순위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야 경수도 완벽한 컨디션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 kt 선수단이 마련한 박경수 쾌유 기원 패치가 달린 모자. ⓒkt 위즈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박경수는 “다행히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캐치볼과 티배팅 정도는 가능하다. 토요일인 24일에는 프리배팅도 소화할 예정이다”면서 “다만 스프린트와 수비가 문제다. 두 훈련을 진행할 때 통증이 없어야 온전한 복귀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음만은 벌써 가을야구를 뛰고 있는 눈치다. 박경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당장이라도 합류하고 싶지만, 부상 재발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도 우리가 3위 이내로 마친다면 수비까지 가능한 컨디션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웃었다.

끝으로 박경수는 “이제 5게임 남았다. 감독님과 코치님들 그리고 선수들 모두 고생하고 있는데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스럽다. 비록 전력에서 힘을 드리지는 못했지만, 남은 경기에서 kt가 후회 없이 마무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응원하겠다. 나 역시 빨리 회복해 가을야구에선 함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선수단에게 힘찬 메시지를 보냈다.

스포티비뉴스=잠실, 고봉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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